조선 정조 연간에 노론의 선비 하나가 경종의 릉 앞을 말을 탄 채 지나간 일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경종은 노론의 임금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론에게는 경종에 대해 신하로써 어떤 의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경종의 릉을 지나면서 신하로서 예를 갖추지 않은 것은 정당하다. 물론 뒈졌다. 정조가 그런 걸 용납할 사람이 아니다.

사육신이 세조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국문을 받을 때 성삼문은 끝까지 세조를 전하가 아닌 대감이라 부르고 있었다. 세조는 정당하게 즉위한 왕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하로서 왕을 가리키는 호칭인 전하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하긴 그보다 먼저 중국 명나라에서는 당대의 거유 방효유가 건문제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영락제에게 '연적찬위'란 글귀를 써서 던졌다가 일가친척은 물론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이가 모두 죽임을 당하는 십족멸의 형벌을 받은 바 있었다.

정통성이란 그런 것이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악정을 저지른 끝에 신하들에게 내쫓긴 경우는 그래도 자격에 없어 내쫓겼다고 폐주라 부를지언정 한때 왕이었음을 인정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준다. 하지만 처음부터 왕이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 부당하게 왕위에 오른 - 찬탈의 경우는 다르다. 찬탈했어도 그래도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며 왕조 그 자체로써 정통성을 새로이 만드는 경우는 따로 창업이라 부르므로 경우가 다르지만, 결국 왕조라고 하는 새로운 정통을 만들지 못한 경우라면 당시나 이후나 그저 역적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마는 것이다. 사육신의 거사가 성공해서 세조가 제거되고 단종이 복위되었다면 세조는 폐주가 아닌 그냥 역적 수양대군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정통성이 없다.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했지만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 무슨 말인가.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진보진영에서 박정희나 전두환에 대해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인 것이다. 정당하게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를 지켜 선출된 대통령이 아닌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부당하게 찬탈한 권력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 혐오하고 증오했으면서도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해서는 그래도 국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통성에 대해 시비를 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문재인은 정당한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해서도 안된다.

이미 작년 한겨레는 자사 기자의 입을 빌어 그 솔직한 속내를 토로한 바 있었다. 차라리 이명박근혜 시절이 더 나았다. 홍세화 진중권 강준만 김규항 등 자칭 진보지식인들 역시 솔직하게 털어놓은 바 있었다. 이명박근혜시절보다 지금이 더 못하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겨레 기자의 첫 마디가 '덤벼라 문빠들아!'였겠는가. 미디어오늘까지 여기에 한 마디 거들었다가 욕바가지로 먹고 도망쳤던 것을 기억한다. 문재인 정부는 탄생해서는 안되는 정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자는 저들에게 비국민인 것이다. 그놈들만 아니었으면. 그 새끼들만 아니었으면. 그래서 자신들의 주독자층인 것을 알면서도 차라리 저 새끼들 떨쳐내겠다 오기까지 부렸던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정치에서 문재인 대통령가 민주당 지지자는 배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통성인 것이다. 판결문을 있는 그대로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고작 댓글 제법 단 수준 이상은 아니란 것이다. 당시 인터넷에 선거와 관련해서 올라온 게시물과 댓글이 모두 얼마였다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그런 정도의 게시글과 댓글에 선동될 만큼 민주주의의 단위이자 주체로써 유권자의 지적수준이 형편없이 낮다고 여기는 것인가. 하긴 그래서 문빠들이었던 것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지지자는 비국민이었던 것이고. 그런 열등한 존재들이 지지하는 대통령따위. 그런 열등한 인간들에 의한 여론따위. 괜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유리한 여론을 저들이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 전두환처럼 민주당 지지자를 모조리 학살하겠다 선언하면 한겨레나 정의당이나 쌍수들고 환영할 것이다. 촛불정국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친위쿠데타를 기획했다는 자인에도 저들이 아무 반응이 없는 이유다. 아니 그럼에도 여전히 오세훈을 지지했던 이유였다. 적의 적은 아군이고 저들 자칭 진보의 적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다.

그런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사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는 정통성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통성 없는 가짜 대통령이다. 아니 대통령도 아니다. 평소 생각해 온 것들이 그대로 판결과 함께 기사라는 형태로 쏟아낸다. 그래도 좋은 명분을 얻었다. 차라리 윤석열에게는 오보 냈다고 오체투지하고 신문사를 들어다 바쳤던 한겨레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그리고 지지자들에게는 서슴없이 가짜뉴스를 내고 그 가짜뉴스를 수단으로 선거에까지 개입하려 했던 그동안의 행보가 이것으로 설명된다. 반정이었던 것이다. 다시 대한민국을 정의로 돌려놓는다? 누구를 위해? 강희철이 자백한대로 이명박근혜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

이명박이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그의 공과 과를 따지며 안타까워하던 한겨레의 애끓는 칼럼을 기억한다. 박근혜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잘못을 저질렀고 그 결과 죄인의 몸이 되었지만 그래도 전직대통령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아니다. 문재인도 아니다. 저들의 입장은 한결같았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뜻이다. 솔직한 고백이다. 지겹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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