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청군이 산해관을 넘을 당시까지만 해도 명의 국력은 청 이상이었었다. 아니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점령한 뒤에조차 아직 남아 있는 명의 전력은 청을 넘어서고 있었다. 실제 이후 명의 잔당을 토벌하는데 가장 크게 역할을 했던 것은 청의 팔기군이 아닌 항복한 명군으로 이루어진 녹영병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명은 청에 멸망하고 말았는가. 아니 일개 농민반란세력인 이자성에게 북경을 함락당하고 말았는가. 


임진왜란 당시 신립도 굳이 탄금대에서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전력을 유지한 채 퇴각하여 한양이나 선조가 몽진한 뒤 한강과 임진강 방어에 나섰다면 최소한 김명원과 한응인의 어리석은 결정에 방어군이 녹아나는 상황은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후방에서 계속해서 군이 조직되고 있었으므로 삼남에서 모인 수 만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던 용인전투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신립은 탄금대에서 겨우 모은 중앙의 기병마저 모두 소진해 버렸고 신립의 전사소식은 조정을 일거에 패닉으로 몰아넣게 된다. 그러면 어째서 신립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 것일까?


싸움에서 지면 죽는다.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벌을 받는다. 그래서 만일 김명원에게 임진강 전투에서 패전한 책임을 물었다면 평양성 함락 이후 조선군의 재건은 어쩌면 더 늦어졌을 지 모른다. 평양성에 이어 한양성을 되찾기 위한 전력을 구축할 때도 김명원은 류성룡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김성일 역시 일본의 침략의도를 과소평가한 잘못은 있지만 임진왜란 이후 특히 일본군에 점령되었던 경상우도의 행정과 군사를 재건하고 민심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었다. 이일 역시 거의 보이는 것이 일본군에 패주하는 모습이었지만 적절한 장계로 조정이 빠른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만에 하나 잘못된 장계로 신각에게 벌을 주어야 했을 때 죽음이 아닌 다른 형태였다면 어땠을까? 이순신도 하마트면 녹둔도에서의 패전을 이유로 백의종군이 아니라 목숨까지 내놓을 뻔 했었다.


한 번 지는 정도야 병가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다 보면 이기는 것이고, 지면서 이기는 방법도 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특히 중국문화권에서 싸움에서 진 장수에 대한 벌은 매우 가혹했다.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음에도 졌다는 이유만으로 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심지어 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그냥 알아서 도망부터 치는 경우도 상당했었다. 어차피 돌아가봐야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테니 그냥 도망쳐 버리자. 그냥 적에게 투항해 버리자. 그렇게 산해관이 열리기 전에도 많은 명나라의 유력장수들이 청에 투항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대로 조정에 돌아가봐야 좋은 꼴 보기는 어렵다. 실제 오삼계 전에도 청의 고관 가운데는 그렇게 항복한 명나라 장수들이 적지 않았었다.


과연 책임을 지는 방법이 죽음 뿐인가. 과연 책임을 진다는 것이 자리를 내놓는 것 뿐인가. 박진은 몇 번이나 적을 앞에 두고 도주한 바 있지만 경상우도를 되찾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었다. 오히려 패전한 만큼 적과 싸운 경험을 가진 필요한 인재일 수 있는 것이다. 패전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다면 방법을 찾아 다음에는 승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저 당장 기분 좋자고 매번 실수하고 실패할 때마다 벌을 준다면 누가 최선을 다하려 하겠는가.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관료주의라는 것이다. 너무 조직에서 엄격하게 책임을 물으니 어떻게든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조직이 경직되고 활력을 잃는다.


조금 실수해도 좋다. 조금 실패해도 좋다. 그것이 단지 과정이라면. 그저 잠시의 실수이고 실패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만한 경험을 가진 인재를 다시 구하기란 쉽지 않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경험을 쌓아가기란 그보다 더 어렵다. 지금까지 함께 해 온 만큼 반성하고 주의한다면 지금보다 얼마든지 더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냥 민정수석이 아니다. 그냥 청와대 보좌진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출발부터 조국 수석은 문재인의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새로 임명된 민정수석은 조국보다 더 잘 할 것인가.


자리를 내놓고 나가는 것도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이라며 자리를 내놓고 하야한다 생각해 보라. 난리도 아니다. 아무리 미워도 이해찬이 갑자기 당대표를 내놓고 물러나면 민주당 역시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역시 지금 가장 자신의 자리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일 수밖에 없다. 더 잘하려 노력해야지 책임이랍시고 내팽개치고 도망쳐서야 말이 되는가.


더 잘하면 된다.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면 된다. 차라리 무한정한 믿음이 질책보다 더 아프게 다가올 수 있다. 그만큼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었다. 대통령에게 부담이 지워졌다. 그런데도 느끼는 것이 없다면 그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다. 장하성과 김동연이 경질된 것이 비단 정책의 실패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이유인 것이다.


뭣만 하면 그만두라. 내려가라. 잘라내라. 말은 쉽다. 그런데 현실이 그리 말처럼 쉬운가. 민주당 소속 경기도지사를 출당시킨다. 그래서 경기도지사가 정부와 반대편에 서게 된다면. 경기도지사직을 잃었는데 보궐선거에서 상대당 인물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면.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당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하물며 잘난 인간들이 너무 많은 정치야. 머리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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