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언론들이 한결같이 현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비판하며 좋은 일자리에 대해 말한다. 제조업 일자리야 말로 좋은 일자리다. 제조업 이외의, 더구나 보건이나 복지 등 공공부분의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어째서?

 

오히려 묻고 싶어진다. 좋은 일자리란 어떤 일자리인가? 아마 나에게 묻는다면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으면서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자리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서 일도 쉽고 자기 시간도 많으며 무엇보다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런 기준에서 제조업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인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그러면서 한 편으로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주장들일 것이다. 노동자의 월급이 너무 많다. 일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 제조업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다. 적은 최저시급으로도 야근에 특근에 휴일근무까지 일하는 시간을 늘리며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너무 해고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제조업 노동자들도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로 이어진다. 실제 현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제조업 노동자 가운데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기업이 어려워지고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노동자의 수입이 줄어든다. 최저임금을 낮추어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늘려서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월급이 적어도 일자리만 있으면, 시급이 적어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으면, 그렇기 때문에 현정부의 노동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내 시간을 희생하며 더 일하면 되는 것인데 왜 정부에서 나서서 최저시급까지 관여하느냐. 

 

그러면 고용유연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장 기업들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한다 했을 때 가장 먼저 해고되는 것은 누구일 것인가? 월급도 적고 아직 일도 서툰 신입일까? 아니면 월급도 많고 일에도 능숙한 중장년의 경력직 노동자일까?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할 때 가장 먼저 누구부터 잘려나가는가? 인건비를 아껴야 기업이 산다면 역시나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런 경우 노동자에게도 선택의 여지란 없어진다. 진짜 적게 받고 더 많은 시간을 죽어라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는가. 아마 젊은 층에서 이런 주장에 쉽게 현혹되는 이유는 실제 그런 현실을 직접 보고 겪지 못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을 무리하게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었더니 요구가 늘어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이상 임금이나 처우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없도록 하려면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만들어 해고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지 말았어야 한다. 괜히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바로 계약이 해지되거나 재계약을 거부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꾹꾹 눌러 참아야 했었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대우에도 그저 참고 견뎌야만 했었다. 그것이 옳은 것이다. 그래야 당연한 것이다. 물론 젊은 네티즌 상당수는 자기가 그런 비정규직이 될 거라 전혀 생각도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비정규직이 되면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지 그 모든 차별도 불평등도 감수하겠다. 사람이 참 머리로는 항상 정의롭기만 하다.

 

일자리가 불안정한 비정규직 입장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불어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하니 충분한 급여와 대우를 요구하는 것도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하는 자체를 부정하며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 자체를 비판한다. 시험도 치르지 않았는데 부당하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특혜를 받았다. 현실을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칭얼거림은 그래서 때로 짜증부터 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정규직이 된 사람들 가운데 기존의 정규직처럼 승진도 하고 그에 따른 급여인상까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기껏해야 근속수당이 전부다. 무슨 장자리 하나 받으면 직무수당이 따로 붙는다. 그런 것을 정규직이랑 비교하는가. 정규직과 똑같이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마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양 악마화하고 그에 동조한다.

 

그러니까 노동자란 어떤 존재인가. 그러므로 노동자에게 일자리란 어떤 의미인가.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좋은 일자리란 어떤 일자리여야 하는가. 그런 논의에 노동자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같은 노동자끼리의 연대도 없다. 그래서 시급도 낮추고, 노동시간은 늘리고, 해고도 자유롭게 하고. 그럴 수 있는 제조업 일자리야 말로 좋은 일자리다. 공공부문은 아무래도 정부가 개입되니 쉽게 해고하기도 노동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안좋은 일자리다. 어째서 사람들은 월급도 적고 일도 만만치 않은데 그토록 공무원과 공공부문에 다투어 지원하고 있는 것인가.

 

바로 그 지점이다. 항상 말하는 노동포기처럼 어째서 사람들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조차 받지 않는 공무원에 그리 목을 매는 것인가. 사람들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러니까 어째서 제조업 일자리가 공공부문보다도 더 좋은 양질의 일자리인가 묻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대로라면. 임금도 낮춰야 하고, 노동시간도 늘려야 하고, 해고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는 일자리라면.

 

기자새끼들부터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당장 그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 자신부터 최저임금 이하로 받으며 매주 68시간동안 일하고 미국에서처럼 바로 해고할 수 있도록 바꾸면 그래도 지금과 같은 기사들을 쏟아낼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자기들과 다른 존재들이란 의미일 것이다. 다수 한가한 네티즌처럼 어차피 비정규직 노동자란 자신과 다른 존재들이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제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라면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야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일하든. 그러니까 제조업일자리는 좋고 다른 일자리는 나쁘다.

 

비정규직 총파업을 보면서 더욱 드는 생각이었다. 어째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부터 걸고넘어지는 것일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다른 요구는 더이상 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그럴 자격조차 가지지 못하는 것인가. 논리 아닌 논리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통용된다. 애초에 정규직으로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요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기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요구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적은 시급에, 더 많은 노동시간에, 해고도 쉽게 이루어지는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라니. 그리고 그런 논리에 넘어가는 노동자인 자신들이 있다. 세상은 그래서 때로 코미디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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