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제가 한창 이슈가 되었던 무렵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듣게 되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으면 주 100시간도 넘게 일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이번 서울대 청소노동자 죽음과 관련해서 서울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과 맥락이 거의 유사하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으면 그만큼 더 노력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안되면 더 적은 시간만 일해서 더 적은 돈만 벌면 되는 것이다. 최저임금 역시 자기가 그 돈 받고 도저히 살기 어려울 것 같으면 누구도 하지 않으려 할 테고, 그래도 돈이 필요하면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을 테니 그 또한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니까 노동자에게 얼마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예우하는가와 상관없이 그래도 견딜만하니 사람들은 일을 할 테고 그러므로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뛰쳐나가지 않는 이상 그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런 일 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학교 다닐 때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아 학력도 낮고 기술도 없고 그러므로 남들보다 더 어렵게 고통받으며 힘든 삶을 영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기 싫어서 자기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도 하고 시험도 치르는 것 아니던가.

 

이준석이 해고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나 윤석열의 120시간 노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사실상 저들의 지지층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이유다. 특히 이미 저들을 지지하는 20대 청년남성들은 오히려 더 그들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에 동의하며 열광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죽음에 대한 서울대 재학생들의 반응부터가 그 증거인 것이다. 그래도 할 만 하니 청소노동자들도 버티며 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어떻게 대했든 사용자인 서울대측의 책임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것을 일일이 규제하고 강제해서 기회를 빼앗는 것이야 말로 불공정이고 악이다.

 

시급 100원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루 23시간 일하고 1시간 휴식을 주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쉽게 일자리를 얻을 테고 자기 노력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해고를 자유롭게 하면 그만큼 무능한 자들이 잘려나간 자리에 새로운 더 능력있고 열정있는 이들이 채용될 수 있다. 실력이 있으면 더 높은 급여에 더 적은 시간만 일하면서도 안정된 직장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그 대가를 치르며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을 후회하게 된다. 결국 모두가 노력해서 세상은 더 나아진다.

 

그래서다. 그래서 정의당도 한겨레도 원래 윤석열을 지지했던 것이다.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대체휴일도 모두 정의당이나 한겨레는 반대하고 있었다. 아쉽고 부족한 것이 있어 반대했다지만 결국 최저임금이 오르고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대체휴일도 노동자들이 더 많이 쉬는 것에 결과적으로 반대한 자체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 역시 추가근무로 받게 될 수당이 아쉬워서 표현만 다를 뿐 반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국민의힘과 조선일보가 윤석열을 버리는가 싶으면서 태도를 바로 바꾸게 되었지만. 그를 위해 김학의를 재수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이성윤을 검찰의 논리로 비난까지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이준석이나 윤석열의 저 믿기지 않는 발언이야 말로 민주당에 덧씌워진 20대의 불공정 프레임의 정체인 것이다. 아마 여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 낮은 최저임금으로 더 쉽게 취업할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자유롭게 일하면서 부족한 수입을 채울 수 있도록 한다. 그래야 가난한 이들도 잘 살 수 있다. 배우지 못하고 실력이 없는 이들도 살아갈 수 있다. 나름대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인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공정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준석이나 윤석열의 발언에 대해 심지어 자칭진보들조차 전혀 아무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저들 발언들에 대해 자칭 진보가 민주당에 그랬던 것처럼 강하게 반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지지자들이 바라는 말이니까. 진짜 정의라 믿고 발언하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의 기준이 그만큼 다른 것이다. 더 적은 시간만 더 대우받으며 일해도 충분히 모두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공정과 정의는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공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비정규직이 차별받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불공정이다. 그토록 공정을 외치던 서울대 재학생들이 청소노동자의 죽음에 침묵하는 이유다. 차라리 견디지 못하겠으면 그만두면 되는 것이지 괜히 죽어서 자기들에게 피해만 끼쳤다는 것이 저들의 진짜 속내일 것이니.

 

미디어가 저리 만들었다 보면 된다. 한창 미디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시기이기도 하다. 본능과 직관으로 세상을 단순화시켜 보게 되는 시절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할 말은 없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병신이 아니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