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벌써 전부터 주장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가 직접 사가지고 오는 교통비보다 택배비가 더 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가 되었기에 용산 가서 부품들을 한꺼번에 사들고 올까 생각하다가도 택배비와 교통비를 단순하게 놓고 비교하니 결론은 너무 명확하다. 시간도 돈도 택배로 주문하는 쪽이 더 싸다. 그러고보면 내가 용산까지 직접 가서 무언가를 사 온 것이 도대체 언제였는지.

 

과연 내가 용산까지 가서 직접 컴퓨부부품을 사들고 오면 교통비만 쓰겠는가 하는 것이다. 왕복하는데 대충 2시간, 여기에 부피도 무게도 상당할 부품들을 들고오는 데 들어가는 수고란 것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교통비만 비교해서 택배비가 더 싸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인 계산인가. 아무리 다량의 물품을 한 번에 배송하기에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하더라도 택배기사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수고에 대한 비용은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착취라 부른다. 그러면 그렇게 계산하지 않은 비용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러고보면 최저임금인상과 관련한 논란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불편하다. 나와 사회와 국가의 경제에 피해가 올 수 있다. 정작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들은 생활조차 어려운 현실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자신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그들이 희생해야만 한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인한 저소득층의 일자리감소는 걱정하는데 빚을 내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활조차 어려운 현실은 일부러 외면한다. 선택적 걱정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는 항상 의도가 숨어있게 마련이다. 무엇이겠는가. 노동자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 어차피 자신은 최저임금 대상자도 아닐 테니까. 최소한 앞으로는 대상자가 아니어야 할 테니까.

 

택배회사도 이익을 남겨야 한다. 이익을 남겨야 택배기사와 물류인력들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직원들도 먹여살리고 투자자들에게도 돈을 나눠줄 수 있다. 그나마 알량한 택배비에서 택배회사가 가져갈 몫까지 제외하면 얼마가 남겠는가. 그래서 물류센터 일이란 다른 일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 그저 높은 일당 바라보고 하는 일이 되어 버리고, 택배기사들은 과로사할 정도로 고된 업무에도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한 달 생활비도 안 되는 돈만을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학대에 가까운 고된 업무 가운데 정작 그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형편없을 정도다.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가. 바로 소비자들이.

 

자유시장경제가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이다. 더구나 시장에서 평가되는 재화가 인간과 직접 관계된 것일수록 그 합리성은 더욱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어차피 소비자들은 다른 개인의 생존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굳이 자기와 상관없는 다른 누군가의 생활에 대해서까지 신경쓸 이유가 없다. 인간이 사라진 시장에서 결정된 시장가격이란 항상 가혹하고 잔인하다. 과연 지금 당장 최저임금제가 폐지되고 시장에 의해 멋대로 인건비를 결정하라 했을 때 자신은 얼마의 월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내가 편하니까. 내가 싸게 쓸 수 있으니까. 그래야 하니까. 그리고 그만큼 다른 누군가는 더 수고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대중의 착취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비단 택배만이 아니다. 음식배달을 하는 이들은 어떨까. 어째서 그들은 목숨까지 내건 채 신호를 무시하며 도로를 폭주해야 하는 것인가. 음식값에 배달비를 얼마간 더했더니 난리가 났다. 이미 음식값에는 그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대료와 도구와 장비와 인건비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배달을 한다면 그만큼의 돈이 추가되어야 한다. 아니면 직접 찾아가 사들고 오거나 홀에서 먹는 사람은 바가지를 쓴 것이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사정까지 자기들이 신경쓸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그저 편하게 집에서 더 싼 값에 받아먹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확장되어 간다. 건설업은 어떨까? 제조업은 어떨까? 대기업 노동자들은 어떨까? 그래서 만일 자신이 필요해서 사용자와 쟁의라도 하려 할 때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언론이 항상 노조의 반대편에서 노동자를 적대하는 기사를 쓰는데도 여전히 믿는 대중들이 더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택배기사들의, 그리고 음식배달원들의 입장에 대해 오히려 외면하며 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나와 이 사회와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너희가 조금 더 참으라. 너희가 조금 더 희생하라. 그렇게 사회의 대부분은 정당한 자신의 권리마저 다른 개인들에 의해 억눌린 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이 아닌 그런 타인들을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의 삶마저 저당잡혀야 하는 것이다.

 

올해만 벌써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른다. 하긴 우체국만일까. 다른 현장에서도 수도 없이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비용을 따진다. 그로 인한 수고를 따진다. 그때문에 겪을 대중의 불편과 지불해야 할 비용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도 일어났던 것 아닌가. 제천화재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이유가 무엇이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만 더 불편하고 조금 더 비용을 치르자 하면 반대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들인 것이다. 그렇게 아끼고 아낀 결과가 이렇게 현실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가지는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택배기사들이 친절해지기 바라는가? 자신이 주문한 상품이 전혀 문제없이 아무 손상없이 배송될 수 있기를 바라는가. 그런데 뭐가 어디서 어떻게 배송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량 가운데 도대체 얼마나 기사들은 신경을 써 줄 수 있을 것인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배송하고도 손이 쥐어지는 돈이 얼마 없는데 얼마나 더 성의를 가지고 고객들의 물건들에 신경을 써 줄 수 있을 것 같은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가성비란 말을 믿지 않는다. 모든 제품은 딱 지불한 만큼의 가치를 갖는다. 장기적으로 시장이 그렇게 만들어간다. 내가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자신이 받게 될 상품이나 서비스도 그 정도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혹시라도 자기가 어떤 이유로든 그런 일을 하게 될 떠 더 확실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자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자기와는 상관없겠지.

 

잠시 택배 못받아도 상관없다. 컴퓨터 업그레이드 못해도 상관없다. 하긴 컴퓨터 쪽은 우체국 택배를 거의 안 쓰기는 한다. 택배회사에서 파업을 하거나 하면 그래서 그냥 마음을 비우고 가까운 마트를 찾는다. 택배비가 더 비싸지면 그때는 대충 살펴서 직접 나가 사오는 것이 싼 것 같으면 그래도 되는 것이다. 어차피 받는 돈이 같다면 일이라도 더 편해지는 것이 옳다. 같은 인간인 때문이다. 같은 이 사회의 구성원들일 테고.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란 일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노동자 자신이 가지는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인간으로서 노동자 자신이 살아남고 또 살아가기 위한 비용이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 없이는 생산도 없다. 당연히 소비도 이루어질 수 없다. 도대체 대가 없는 격무에 목숨까지 잃는 이들이 나오게 하면서까지 택배비를 아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무엇인가.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아끼는 것이 미덕이다. 한심해지는 이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