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는 결국 민주주의란 주권자인 국민이 또다른 주권자인 군주를 선출하는 제도이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대신하여 전적으로 자신을 지켜줄 절대적인 존재를 갈구하게 된다. 그것은 우두머리 원숭이를 중심으로 무리지음으로써 맹수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야 했던 아주 오랜 본능의 흔적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회자되는 말이 있다.

 

"그분이 다 해 주실 거야."

 

선거때마다 새인물을 통한 새바람이 부는 이유인 것이다. 이미 검증된 정치인이란 그냥 인간이다. 단점도 약점도 모두 드러난 그저 자신들과 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는 초월적인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있는대로 자신들의 바람과 욕망을 투사하여 우상으로 만든다. 노무현의 바람이 멈춘 것도 그래서 김영삼을 찾아가 자신이 그로부터 받은 시계를 자랑하면서부터였다. 우상은 인간의 때가 묻어서는 안된다. 초경을 시작하면 여신으로 섬겨지던 소녀들은 가차없이 버려진다. 남들과 다르기에, 오히려 기성 정치인들과 다르기에, 그래서 그 무지와 어색함마저도 선지자에 어울리는 순수함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제는 질린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자신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아서 다 이루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 문제 없이, 어떤 논란도 혼란도 없이, 누구도 양보하거나 희생할 필요 없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유권자들은 보수적이면서 한 편으로 진보적이다. 개혁을 바라지만 안정을 바란다. 안정을 바라지만 개혁을 바란다. 전대통령이 말한 증세없는 복지와 같은 것이다. 변화는 바라지만 그로 인한 혼란이나 부작용까지 감수할 생각이 없다. 어떻게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위해 자신이 양보하거나 희생할 생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까지 대통령이 알아서 다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 자신들이 기껏 지지도 하고 표도 주었던 것이다. 차라리 혈통으로 계승되는 전제왕주의 군주였다면 어느 정도 포기하는 부분도 있었을 테지만 하필 자신들이 지지해서 만들어준 대통령이기에 그 바람과 요구는 끝이 없어진다.

 

최저임금과 관련한 논란만 하더라도 그렇다. 내 월급은 올라야 한다. 당연히 내 월급은 내가 일한 만큼, 내가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오르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다. 경제가 안 좋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월급만 올리고 다른 사람들 월급은 올리지 말라. 내 월급을 올려주는 최저임금인상은 지지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최저임금인상은 안된다. 그래서 나오는 논리가 속도조절론이다. 그러면 얼마를 올리면 최저임금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사라질까. 그러면 부작용이 없을 만큼 최저임금을 적게 올리면 불만은 사라질 것인가. 물론 그런 것들까지 모두 감수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직업일 것이다. 대통령이란 그런 부당한 요구에도 모두 응해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이미 법으로 남성 직장인들의 육아휴직도 상당부분 보장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하며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사기업까지 그 적용범위가 확대되는 중이다. 물론 시작은 어렵다. 남들 다 안 쓰는데 혼자서 쓰겠다고 나서기가 꺼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육아휴직을 쓰게 될 경우 혹시 모를 불이익이나 손해를 감수하기 싫다. 혹은 다른 사람이 육아휴직을 씀으로 인해 겪게 될 불편함과 불리함을 받아들이기 싫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권장하는 남성의 육아휴직은 현실을 모르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아예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면 모른다. 벌써 많은 곳에서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는데 자신들만 스스로가 만든 한계 안에 갇힌 채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재정을 늘리거나 하면 그마저도 반대한다. 혹시라도 내가 세금을 더 내게 되지 않을까. 혹시라도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그래서 불평불만 뿐이다. 증세하지 않고 복지만 늘리라. 복지는 늘리지 말고 사회안전망부터 갖추라. 고용을 늘리기 위해 기업이 해고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해달라.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대기업의 규제를 풀어달라. 개혁은 해야 하지만 안정적이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 가면서 세상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노동자의 임금에 대한 태도와 같은 것이다. 내수도 더 커져야 하고 노동자의 임금도 올라야 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치러야 할 비용까지 올라서는 안된다. 그들이 무당층인 이유다. 정치혐오층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상은 너무 높고 현실은 절대 그 이상을 채워 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분노로 투표한다. 분노보다는 증오와 공포로 투표한다. 그래서 대부분 안된다는 말 뿐이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그렇기 때문에 무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타락해 있다.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부터 현실과 유리되어 있으니. 그를 위해서 어디까지 희생하고 어디까지 양보하며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를 위해서 어디까지 자신은 비용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모두를 다 가질 수는 없다. 여성들을 비판할 때 하는 말이다. 결혼 할 것 다하고, 아이 낳을 것 다 낳고, 기르기까지 하면서 남성과 경쟁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남성도 그렇게 되기까지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을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논의 없이 그저 부정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벌써부터 누군가를 시작으로 육아휴직이 일상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실제 그런 직장들에 대한 사례들을 들으면서도. 그러나 남의 일이다. 그들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은 안 될 것이다. 자신들은 되어서 안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 비용도 치르지 않으면서.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 그런 바람마저 부정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현실과 다르다. 자신들이 만든 자신들의 현실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며 그 어떤 주장도 제안도 거부한 채 모든 것을 바란다. 과연 민주주의 시민의 모습인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데 정부와 정치권이 어디까지 앞서갈 수 있을까.

 

여성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출산휴가며 육아휴직을 쓰는 것마저 부정적이다. 심지어 그를 이유로 기업이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남성들이 역차별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사고의 틀이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고 불이익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신념에는 현실같은 건 상관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어디 얼마나 하는지 두고보자. 답이 없는 것이다. 이미 답은 내려져 있고 결론도 나와 있다. 이유는 그냥 뒤에 따라붙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부인이 현실을 모른다. 현실을 외면한 말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주장하는 현실이야 말로 자신들이 만든 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 먼저 한 걸음을 내딛고 뒤따라 그것이 상식이 되어 버린 회사들이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현실 또한 존재한다. 그러면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런 불편이나 불이익을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일까. 그럼에도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로 인해 현실 또한 바뀌어 간다. 의미가 없다. 그냥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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