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역적 동탁을 몰아내고 황제를 구하겠다며 모인 17로 제후군은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만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었다. 하긴 그보다 수백년 전 전국시대에도 압도적인 힘으로 동진해오는 진을 상대로 여섯나라가 뭉친 바 있었지만 역시 아무 성과도 없이 분열만 심해졌을 뿐이다. 왜?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행동의 동기란 다름아닌 '이익'일 터였다. 당장 자기 손에 쥐게 될 이익도 이익이지만, 가만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잃게 될 것을 지키는 것도 이익이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적이 되고,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면 그만큼 간절해진다. 하지만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다. 아무리 밉고 싫다고 내가 대신 손해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원래 하나의 구조화된 집단이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희생이나 헌신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아니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더 가지는 사람이 나오면 그만큼 다른 사람은 덜 가지게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의 상식인 것이다. 그마저도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겪으며 누군가 더 가지고 덜 가지는 일 없이 똑같이 나누었다 할지라도 사람의 욕심까지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더 가지고 싶다면 덜 가진 것이 될 테니 다른 누군가가 덜 가지고 싶어 자신의 것을 양보하지 않는 한 다툼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덜 가지기 위해 양보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전혀 달갑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그것을 어찌 다잡고 이끌어갈 수 있는가.


머리가 필요하다. 손발도 필요하다. 가슴도 필요하다. 그런데 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두가 머리다. 하나로 뭉쳐놓으니 누군가는 머리가 되고 누군가는 손발이 되어야 한다. 당연히 누군가 계속 머리이고자 한다면 몸은 하나인데 머리만 여럿인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만다. 대부분의 연합이나 동맹이 내부의 문제로 분열하는 과정이 거의 그렇다. 본전생각이 난다. 원래 자신의 신분을 떠올리고 만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누군가 압도적인 힘으로 모두를 찍어누를 수 있다면 문제는 오히려 적어질 수 있다. 강제로 손발로 만들어 부려도 감히 거부도 반발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존재한다면 억지로라도 희생과 헌신, 양보를 강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미 더이상 수평적인 동맹이나 연합이라 말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수직적 구조 안에 있는 것이 된다.


이를테면 일본 전국시대 말 전국의 다이묘들이 각각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이시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각각 동군과 서군이 되어 세키가하라에서 맞붙었을 때도 동군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머리 하나 뿐이었다면 서군에는 이시다 미쓰나리 말고도 심지어 그보다 더 큰 머리까지 여럿 더 있었던 점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력에서는 오히려 서군이 더 우세했음에도 동군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머리 하나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반면 서군은 이시다 미쓰나리라는 명목상의 머리에도 불구하고 다이묘들이 제각각 자기 사정이나 입장에 따라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싸움 도중 배신하고 창머리를 돌리는 이들마저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소진의 합종책이 장의의 연횡책에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마는 이유였다. 고만고만한 여섯이 뭉쳐봐야 진을 막는 이상 다른 이익이 없지만 진이라는 확실한 강자만 쫓는다면 그로부터 작더라도 이익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만고만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가장 강한 하나는 어떤 약속을 해도 그 약속을 현실로 이루어줄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지의 반동탁동맹도 그래서 결국 제각기 뿔뿔이 흩어진 뒤에는 서쪽으로 천도하며 힘이 약해진 동탁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들이 적잖이 나타나고 있었다. 괜히 알토란같은 자기 사람 자기 물자를 소모해가며 동탁과 싸우기보다 동탁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동탁이 가진 황제와 조정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는 것이 더 이익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명분보다는 역시 현실이었다.


말이야 좋다. 반문빅텐트. 문재인 말고 다 모여라. 문재인을 따르는 친문 말고 다 모여서 하나로 뭉치자. 그런데 무엇을 위해 뭘로 뭉칠 것인가? 문재인이 대통령되는 것을 막는다고 당장 자기 손에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쥐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어찌 문재인이 대통령되는 것은 막는다 할지라도 전혀 엉뚱한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문재인이 대통령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안되고 분명 손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결과 자신과 연합한 다른 정당 다른 정파에서 대통령을 내고 정권을 잡았는데 역시나 자신들에게 이익이 없고 손해만 있다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일까. 누군가는 대통령도 내고 여당이 되어 마음껏 전리품을 누릴 텐데 누군가는 그것을 손가락만 빨며 지켜봐야만 한다. 사전에 어떻게 전리품을 나눌까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DJP연합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인의 약속은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는가 하면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문재인이 싫어서. 문재인이 미워서. 차라리 문재인이 대통령되면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절박함이라도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절박함이 있다면 먼저 자기가 희생과 양보를 말했을 것이다. 먼저 자기를 굽히고 낮추며 다른 이들의 도움을 구하려 했을 것이다. 자기들도 대통령도 내고 싶고 정권도 잡고 싶은데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니 고만한 약자들끼리 모여서 한 번 힘을 모아보자. 그렇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여당이 될 것인가. 그리고 정부의 구성이나 정권과 함께 손에 넣게 될 여러 이익들을 어떻게 서로 불평없이 나눌 것인가. 될 리가 없다. 하물며 그들은 서로 이념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른데다 한때 서로 대립하던 서로의 머리였다. 


그런 허튼 소리들을 입에 담는 것은 역시 약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욕심은 많은데 당장 수단이 부족하다. 가지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러기 위한 수단이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 손을 빌리려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려 한다. 하지만 그 말은 곧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요청에 의해 손을 잡아주려 해도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무엇이 자기에게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손을 잡았으면서 정작 손잡은 상대를 자기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다. 자기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막을수도 바로잡을 수도 없다. 자기의 의지를 떠난 그것을 과연 동맹이라 연합이라, 혹은 빅텐트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가면 따라가는대로 어차피 결과는 같다. 자기의 역할이나 몫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말 뿐이다. 말밖에 할 것이 없으니 그냥 말만 하는 것이다.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선택은 전혀 다르다.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이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무어라도 하고 싶은 처절한 발버둥인 셈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기에 그렇게라도 부여잡고 비집으려 애써본다. 그래봐야 의미없는 몸짓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것들 떼거지로 모인다고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미가 있을까. 문재인에 적대적인 언론마저 그들은 쩌리라 여기며 대단하게 다루고 있지 않은데. 그나마 진보언론 몇이 뭐라도 있는 양 기웃거릴 뿐. 역시나 이들 또한 아무것도 없는 한심한 처지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비루한 절박함이다.


얼마전까지 민주당 경선룰을 두고 손잡고 공동행보를 보인 박모씨와 김모씨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이재명은 그들과는 결이 달랐다. 안희정도 달랐다. 그들에게는 가능성이 있었다.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척 해보여야 한다. 그래도 야권 대선주자로서의 한가닥 남은 자존심이다.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고집이라도 부려봐야 한다.


몇몇 언론들만 불을 지피고 있다. 몇몇 세상의 관심에서 벗어난 역외인사들만이 한 마디씩 담그고 있다. 발까지 담근 것은 참 없어 보이는 것이다. 차마 가련해서 비판도 하지 못하겠다.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들끼리만 시끄럽고 심각하다.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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