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이 좀 있다면 아이아코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전성기 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곧 구조조정을 잘한다는 뜻이었다. 노동자를 해고해서 인건비 지출을 줄이고 그 만큼을 이익으로 남겨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준다. 당연히 주주들이 보기에 최고의 경영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인력을 대책없이 줄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상당수가 숙련된 노동자들이고 때로는 당장 이익을 낼 수 없는 개발부서의 인력들까지 포함된 경우가 적지 않다.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로 흔히 지적되는 부분이다. 실제 아마 삼성이 크라이슬러 같은 주주가 절대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는 없었을지 모른다. 완전 도박이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 모두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실제 상당기간 삼성전자는 아무 실적도 내지 못하고 돈만 까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회사의 미래를 건 투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국내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는 해외자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기업의 이익 가운데 배당을 늘려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다. 당연히 그래서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익이 줄면 자신들은 주식을 팔고 다른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찾아가면 된다. 엄밀히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 아니다.

가끔 민주주의란 제도의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왕조국가에서는 백 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어차피 중간에 왕조가 바뀌거나 하는 일이 없다면 자신의 피를 이은 후손일 테니 크게 문제가 없다면 자기가 의도한대로 이어받아 진행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우를 보더라도 선대의 유훈은 특히 계승의 정통성을 권력의 근원으로 삼는 왕조국가에서 헌법보다 더한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 그에 반해 민주주의 국가는 어떤가.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고, 무엇보다 새로운 정책을 시도해보려 해도 국민이 참고 기다려주지 않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얼마전 KBS의 최경영기자가 언론의 경제보도에 대해 비판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과연 언론 뿐인가. 언론만 참지 못하고 중간에 어깃장부터 놓는가. 조금만 불편해도 조금만 어려워져도 바로 우는 소리부터 내는 것은 국민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피해입고 내가 성가셔지는 일이 생기면 바로 반발부터 하고 만다. 차라리 지금까지 해 온 그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최저임금만 해도 그렇다. 최저임금 자체보다도 그로 인한 논란들이 너무 시끄럽고 번거롭다. 그냥 전처럼 되돌리자. 그래서 그런 원인을 제공한 정부를 비판한다. 다시 아무일없이 예전처럼. 그러고보면 유럽의 선진국들도 덕분에 고인물을 넘어 썩은 물이란 소리를 듣는다. 가까운 일본도 근본적인 변화 없이 시간만 끌다가 지금의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멀리 내다보고 현재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견딜만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만한 지식도 사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로지 드러난 현상만을, 자기 앞에 놓인 현실만을 보고서 바로 판단한다. 그래서 브렉시트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도 나온 것 아니던가. 브렉시트가 의미하는 바도 모르고 선동에 넘어가서 투표하고는 뒤늦게 후회한다. 그렇다고 그런 국민의 요구를 거부하기에는 그들이 행사하는 한 표가 정치인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 자칫 민주주의가 중의정치로 빠지고 마는 이유다. 국민이 바라니까. 국민이 요구하니까. 그러므로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자신의 권력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문재인 정부의 성과제일주의를 보며 슬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정책들이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미 한계에 이른 한국 사회와 경제의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멀지만 그러나 확실한 무언가 대책들이 나오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여론을 이기지는 못했다. 국민이 바란대로. 국민이 요구하는대로. 장기적인 정책들은 포기하더라도 당장 보이는 성과를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문제는 개인이 잘못한 탓이다. 원인도 해결방법도 명확하다. 그러니까 개인이 알아서 잘하면 된다. 20대가 차라리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려는 이유다. 그들과 주장하는 바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그에 비해 민주당은 정의당만은 아니더라도 워낙 하고자 하는 것들이 많으니.

사실 한국 사회와 경제는 벌써 오래전부터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기업의 경쟁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따른 대립과 갈등마저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면 답은 무언가. 최소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을 터다. 그런데도 결국에 걸음을 멈추고 눈을 뒤로 돌려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식물국가다. 그렇게 국가는 서서히 안에서부터 허물어져간다. 최강대국 미국이 처음부터 저리 수많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었겠는가. 트럼프가 당선된 것을 비웃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 미국 내부의 모순들을 주목한다. 하지만 트럼프마저 구조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대중의 인기를 모을 수 있는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처방들에만 의존한다. 그래서 트럼프도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다.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 텐데.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도. 하지만 야당의 반발은 거세고 국민의 여론은 그보다도 더 사납다. 위기의 순간에 한 발을 내딛기가 그렇게 무섭고 힘들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으니까. 차라리 플라톤처럼 완벽한 초인의 철인통치를 바라게 되는 것은 그만큼 내가 일상에 지쳐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도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안철수로, 문재인으로 바람을 쫓아 나부낀 것인지 모른다. 문재인이라면 다 해 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대해 회의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대중에 대해 실망하면서부터다. 정확히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게 되면서부터다. 민주주의란 어쩌면 인간의 본능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민주주의란 제도를 추구해야 하는지 모른다. 가장 최악의 정치제도지만 그러나 더 나은 다른 체제가 나타날 때까지는 그나마 대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히틀러로 하여금 유럽을 전쟁의 포화속으로 몰아넣게 만든 당사자들이 다름아닌 독일의 국민들임을 잊지 않으며. 미국의 경제를 저 모양으로 만든 것도 다름아닌 미국인 자신의 선택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책의 책임이란 것이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생각만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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