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선을 찾았던 서양인 중에는 조선과 조선인에 우호적인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었다. 특히 미국인 선교사들의 인식이 심각했었는데, 덕분에 당시 미국 정부도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일본의 조선강점을 용인하는 정책을 펴게 되기도 했었다. 아직 미개한 조선인에게는 문명화된 일본인의 보호와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며, 따라서 아직 자립할 능력이 안되는 조선을 일본이 지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이때 미국인 선교사들은 물론 조선에 부정적이던 서양인들이 조선을 묘사하며 쓴 표현들이 꽤 흥미롭다.

 

"조선인들은 더럽고 게으르며 거짓말을 잘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지 않은가? 아마 듣기보다 주로 하는 편들일 것이다. 대개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에 대해서. 불과 얼마전까지 중국인을 향해서도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않게 내뱉고는 했었다. 그러므로 저들은 가난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저리도 지지리 못사는 것이다. 그것은 인종적, 혹은 민족적 특성에 의한 것으로 지금 우리가 남들보다 잘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 전까지 일본인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이기도 하다. 해방이 되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른바 재일동포들에 대한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이 그랬었다. 조선인들은 더럽고 게으르며 거짓말을 잘한다. 도덕적으로 아직 열등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존재이기에 조금만 방심하면 일본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를 이들이다.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인식은 곧 식민지시절, 그리고 해방 이후 한반도인에 대한 인식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말에는 민족개조론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사실 시작은 구한말부터였었다. 문명화된 일본을 부러워하며 조선도 일본처럼 되자. 조선인도 일본인처럼 되자. 심지어 그런 정도를 넘어 조선과 조선인의 것이라면 아예 부정하고 거부하며 오로지 일본의 그것만을 받아들이려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인처럼, 아니 아예 일본인이 되는 것이야 말로 조선인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 문명인으로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조선인들은 일본인처럼 되어야 하고 스스로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 누가 그런 말들을 지껄였을까? 아예 솔선수범하여 행동으로 실천하던 이들도 있었다. 일본식 집에서, 일본식 옷을 입고, 오로지 일본말만을 쓰며, 일본의 음식들을 먹는다.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해방 이후 미군정에 협력하며 다시 한반도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한 마디로 처음부터 자신들은 다른 조선인들과 다른 존재였던 것이었다. 아직 미개하고 야만적인 다른 대부분의 조선인들에 비해 자신들은 일찌감치 일본의 문명을 받아들인 문명인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물러난 뒤에는 미국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신들이야 말로 아직 미개하고 야만적인 상태에 있는 조선인들을 계몽하고 계도하여 문명인으로 개화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존재들인 것이다. 아예 같은 민족도 아니었다. 같은 국민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해방공간에서,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심지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약탈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다. 이념을 떠나 자신과 같은 동등한 인격체로도 여기지 않았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박정희의 근대화정책일 것이다. 아직 남아있던 모든 조선적인 전통과 관습들을 철저히 부정하고 배제하며 서구의 - 그보다는 서구의 문명을 앞서 받아들인 일본을 본받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  우리가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이끌어 왔었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아주 역사가 유구한 것이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당시는 물론 내가 한참 자란 뒤에도 여러 미디어들을 통해, 아니 심지어 정규교육과정에서도 거의 주입하다시피 보고 듣던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본인이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다. 딱 구한말 조선인을 보던 인식을 뒤집은 것이라 보면 된다. 일본인은 청결하고 부지런하며 정직하다.  자기일에 충실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예절을 다한다. 달리 말하면 한국인은 그렇지 못하니 일본의 그것을 배워야만 한다. 아직 한국은 선진국이 되려면 한참 멀었고 한국인들의 의식도 선진국의 시민이 되기에는 한참 못미친다. 오래전 네이버의 엔조이재팬이라는 곳에서도 그래서 일본인이나 이른바 일빠라 불리는 한국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하며 쓰던 표현 가운데 민도라는 것이 있었다. 한 마디로 국민의 수준이다. 국민의 수준이 한국은 아직 일본보다 한참 미치지 못한다. 아직 한국인은 일본인을 배우며 따라가야 한다. 그 연장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투면 분명 잘못은 한국인에게 있을 것이다.

 

흔히 반일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조금 나아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이라 불렀었다. 일본은 혐한이라 말한다. 반일과 혐한의 차이는 굳이 말로 풀어쓰지 않아도 대부분 알 것이다. 반대하는 것이고 혐오하는 것이다. 저 위의 문장 가운데도 있다. 미개하고 야만적인 조선과 조선인의 것들을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경멸하고 혐오한 것이었다. 그마저도 불경하다. 감히 한국이 반일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본이 혐한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그마저도 한국인의 잘못인 양 한국인의 반성을 촉구하는 듯한 말들을 쏟아낸다. 일본은 잘못하지 않는다. 이미 앞서 문명화를 이룬 선진국인 일본은 절대 국제적인 규범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더 성실하고 철저하다. 그러니까 만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면 먼저 한국이 잘못한 것은 없을까.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객관인 것이다. 이성이고 합리다. 괜히 그들을 토착왜구라 부르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딱 구한말,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들이자며 주장하던 이들의 논리가 딱 저랬었다. 일본은 문명국이다. 일본은 선진국이며 강대국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아직 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한국보다 우선해서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주관에 빠져들지 않기에 객관적이며, 국제질서에 더 가까운 선진국이자 강대국의 입장이기에 합리적이다. 심지어 일본인 가운데서도 한국의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음에도 오로지 일본이야 말로 문명국으로서 보편의 규범에 가까울 것이기에 일본이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이야 말로 한국인을 극복한 진정한 한국인들이다. 역겨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실제 발단이 되었던 강제징용배상판결만 하더라도 정작 당사자인 신일본주금은 판결대로 배상금을 지급하고자 했었다. 그리 많은 돈도 아니고 굳이 한국국민들과 감정까지 상해가며 거부할 명분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압력을 행사해 끝까지 저지한 것이 바로 일본정부였었다. 과연 판결내용이 비합리적이었으면 당사자인 일본기업이 당시 그런 판단을 내렸었을까. 하지만 일본 정부의 강제가 결국 한국인들에게마저 객관이 되고 합리가 되고 이성이 된다. 그러므로 일본을 거스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을 분노케 만드는 행동은 반일이며 잘못된 행동인 것이다.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일본이 요구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의 빌미가 된다. 과연 저들은 한국인인가.

 

동일집단이라는 것은 공감을 전제하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어지간히 다투는 사안이면 이쪽의 편을 든다. 아니 설사 현행범으로 잡힌 경우라도 당사자가 무죄를 주장하면 무죄를 믿어주고 싶은 것이 가족이고, 친구고, 동료고, 어찌되었든 우리들인 것이다. 단 하나의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견해가 공존하는 가운데 오로지 한 쪽의 주장만을 그것도 누군가를 희생시켜가며 쫓아야 하는 이유란 무엇인가. 위안부 희생자도 강제징용 피해자도 모두 무시하고 이루고자 하는 정의란 과연 어떤 것인가. 그들을 존중해야 할 이유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참고로 저 위에 쓰인 더럽고 게으르고 거짓말을 잘한다는 말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며 그들의 열등함을 주장할 때도 쓰인 표현들이다. 아마도 자신들은 대부분 어리석은 한국인들과 다르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한 다른 한국인들에 비해 자신들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인가. 언론이라면 그래도 한 사회에서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일 것이다. 정치인과 지식인 가운데서도 그런 주장들을 내뱉는 이들이 이리 많다. 아직 식민지배의 잔재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역사의 첫단추를 잘못꿴 댓가라 하겠다. 한심하고 역겹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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