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진심어린 조언이란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저 툭 한 마디 내뱉고 돌아서는 것은 걱정도 충고도 아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런데 왜 그런 번거로운 짓들을 사람들은 하는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거라도 실제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자신이 대단 존재라 여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나로 인해 상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고 어떻게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만으로 자신은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심리도 그와 비슷하다. 아니 대부분 오로지 상대를 걱정하고 사회의 정의와 미래를 생각해서 굳이 그런 리플들을 달려는 것이니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상대가 반박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즐긴다. 어쩔 줄 몰라하며 위축되는 모습을 즐긴다. 우월감이다. 그만큼 내가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 곤란해하는 것은 당사자만이 아니다. 그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 가운데 상대의 주위를 이용해서 상대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된다. 걱정해서가 아니다. 함께 고민해주는 것도 아니다. 가학성이다. 그 순간 만큼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된다.


과연 명절이라고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려주는 사람들치고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있던가. 다만 얼마라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던가, 아니면 취업에 도움이 되도록 자기가 먼저 발벗고 힘써주던가, 재미있는 건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굳이 말로 이래라 저래라 다그치는 경우가 그리 없다는 점이다. 정히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럴 능력이 된다면 나서서 도와줄 뿐 되도 않는 말로 위세를 떨려 하지 않는다. 말 많은 것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해 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도리어 탓을 한다. 너 때문이다. 네가 문제다. 명분쌓기이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걱정해주었는데. 내가 그렇게 진심으로 조언도 해주었는데. 그러므로 더이상 내가 너를 도울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다.


어설프게 아는 친척들이 그래서 더 짜증나고 불쾌하다.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거나. 진짜 가까운 사이라면 말 한 마디도 쉽게 내뱉지 않으려 한다. 명절이라고 어중이떠중이 다 모이는 탓이다. 오지랖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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