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무당새끼들이라 하는 것이다. 무당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언가. 당신 그러다 큰 일 난다. 큰 일 날 테니 굿을 하든 부적을 쓰든 하라. 그런데 굿이든 부적이든 효과가 있다는 확신 같은 건 없다. 그냥 자기 돈벌어 먹자는 수작이다.


하여튼 뭐만 하면 최악이고 참사다. 진중하게 원인이 무어고 대책은 무엇인가 하다못해 전문가라도 찾아가서 의견을 듣기보다 그냥 자극적인 말로 감정부터 움직인다. 왜겠는가? 자기도 원인이나 대책같은 건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가 혹은 시청자가 한 번이라도 더 클릭하게 하려고 자극적인 제목만 붙이는 것이다. 혹은 자신들이 바라는 정치적 의도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기자새끼들은 기본적으로 개만도 못한 새끼들이라 개들도 싫어하는 목줄을 목숨처럼 사랑한다. 기자새끼들에게 언론의 자유란 권력의 개가 될 수 있는 자유다. 하긴 검찰도 법원도 개가 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도 반대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추경하는 것도 반대하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그러니까 결론은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낮추라. 노동시간을 늘리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하라. 사용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 그러니까 말하지 않는가. 그냥 늘 하던 소리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말고 그것들이 진짜 대안인가 한 번 고민이라도 해 보라고. 신자유주의가 끝장난 게 언제적인데 아직 그딴 소리나 반복하고 있다. 무당의 주문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진짜 그러면 해결되는 것인가.

차라리 사실을 전달할 것이면 조금 더 건조해져도 좋을 것이다. 그냥 현실이 이렇다. 드러난 지표로 현재 상황이 이렇게 안 좋다. 이런 부분들에서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이 기사를 꼼꼼히 읽을 테니까. 문제들도 알게 될 것이다. 자기가 뭔 소리 하는 지도 모른다. 기사 안에서도 앞뒤가 서로 안맞는 경우도 생긴다. 정부를 비판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방법이 문제인 것이다. 조금만 뭣해도 최악, 아니면 참사. 그놈의 최악이며 참사들의 기준도 다양하다. 30초만의 최악은 또 없을까?

서비스업이 왜 어려운가? 도소매업이 왜 이토록 힘든 것인가? 우리 동네에는 문구점이 없다. 체육사도 없다. 그 밖에 없는 것들이 많은데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산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 그러니까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다. 믿음을 말하지 말고. 그러니까 변화하는 시대에 어떻게 적응하며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그런 것이어야 한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그저 보이는 현상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뇌가 없는 것을 그런 발작적인 반응으로 대신한다. 사람이기는 한 것인지.

고용유연화란 무엇인가. 도대체 누구의 고용을 유연하게 만들자는 것인가. 40대의 고용률을 걱정하는 언론들이 고용유연화를 지지하는 이유를 듣고 싶기도 하다. 임금을 낮추면 양극화가 사라지고, 해고를 쉽게 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기적의 논리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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