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유방이 수천년동안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여겨져 온 이유는 바로 덕德에 있었다. 다른 말로 그릇이다.


싸움실력으로만 따지면 항우가 더 뛰어났다. 싸우면 이기고 부딪히면 깨뜨렸다. 하지만 유방에게는 한신과 소하, 장량과 같은 뛰어난 신하들이 있었다.


고작 범증 하나도 제대로 품지 못했던 항우와 달리 진평이나 팽월, 영포 등 항우에게서 전향한 이들 또한 모두 품어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군주인 것이다. 군주란 군림하는 자다. 모든 이를 지배하며 그들을 다스리는 존재다. 그런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를 품을 수 있는 그릇이다.


아무리 하는 행동이 이기적이고 천박해도, 특별히 지식이나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그 그릇이 천하를 품어 안을 수 있으면 그는 곧 군주의 자격이 있다.


민주화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혼자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각이 있고, 당장 청와대의 참모진들이 있다. 


아니 당장 경기도만 해도 성남시에서 했던 것처럼 도지사 혼자서 독단으로만 도정을 이끌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품고 아우르며 그들의 사이를 조율하면서 최선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한다. 리더십이다. 그릇인 것이다.


유시민 작가도 전에 방송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내가 이재명이 사실은 도지사도 버겁지 않을까 여겼던 이유이기도 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을 보라. 수많은 반대자들이 있었다. 반대를 넘어서 혐오하고 증오하던 이들마저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적이 있었던가. 아, 한 번 있었다. 안철수. 진짜 그런 점에서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끝까지 항우에 충성하던 이들마저 품으려 했었다. 심지어 그들을 품기 위해 자신과 적대하던 항우의 시신을 내주어 장례까지 치르게 해주었었다. 천하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하고 도지사라면 경기도정을 책임져야만 한다. 그 안에 자신에 반대하는, 혹은 적대하는 모든 사람들도 품에 안을 수 있어야 한다. 끝까지 거부하더라도 그들마저 자신의 편이라 여길 수 있어야 한다.


한 편으로 박근혜와 닮았다. 삼국지에서 공손찬이 그와 비슷했었다.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비관한 나머지 항상 주변을 적대하며 자신을 과시하기에만 급급했다. 멀리 보는 전략 하나 없이, 하북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서도 사람들을 품지 못한 탓에 끝내 원소에게 패해서 후사조차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동문수학했던 유비마저 그 곁을 떠나고 말았겠는가.


자신을 반대하던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했다. 하물며 국민을 대신해 자신에게 묻는 언론에 대해서도 그렇게 날선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거짓이어도 상관없다. 차라리 기만일지라도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여유를 그 자리에서 보여줬어야 했었다. 굳이 겸손은 바라지 않는다. 자기 잘못이라 낮추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어찌되었거나 자기는 승자고 도정을 이끌 사람이다. 경기도민 모두의 편이 되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을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원래 그런 인간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이렇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자리도 사람도 가릴 줄 모르는 것인가 혐오감마저 든다.


어쩌면 도지사는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도정에 있어 도지사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실생활은 일선 시장이나 군수의 영향이 크고, 더 큰 영역에서는 국정에 기대는 바가 크다. 그 안에서 조율만 잘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능력까지는 필요치 않다. 그러나 만에 하나 대통령에 도전하려 한다면 바로 그 부분이 걸릴 것이다.


대통령후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 보는 것 같아도 국민들은 오랜 시간에 거쳐 대통령에 도전할만한 인물들을 눈여겨보고 평가한다. 과연 이재명은 대통령에 걸맞는 인물인가. 능력은 몰라도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을 화합케 할 대통령으로서 적합한 인물인가.


그냥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알았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것이고 몰랐던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재명의 적은 이재명 자신이다. 불행했던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도지사도 사실 매우 버겁다. 그 사실을 이재명 자신만 모른다.


자수성가의 함정이다. 성공의 경험이 자신을 그 경험 안에 가둔다. 자존감까지 바닥이라 그것에 절대의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적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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