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이면 공포고 2인칭이면 비극이고 3인칭이면 희극이다. 아, 내가 만든 말이다. 내가 코미디를 잘 보지 못하는 이유다. 지나치게 이입해 버리는 탓이다. 한참 이입하다 보면 이게 코미디인지 공포물인지. 당장 대표적인 바보캐릭터인 영구와 맹구가 나 자신이라 생각해 보라. 혹은 내 가족이다. 웃을 수 있을까? 자 자신이 그러고 있고 혹은 가족이 그리하고 있는데 마치 남의 일처럼 마냥 웃고 있을 수만 있을까?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것도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실수로 가방에서 돈이 빠져나와 허공에 뿌려진다면 자신이나 주변의 일이 아닐 때 신기하게 여기며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나 혹은 가까운 누군가가 넘어졌는데도 오히려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큰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크게 넘어지지도 않았고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 돈은 날아가는데 기껏 천 원 짜리 몇 장이다. 한 수 억 버는 사람이라면 만 원 짜리 몇 장 정도는 그냥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말해 특정한 대상에 대해 마음껏 조롱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내 일이 아니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도 한 나라의 정치인이다. 무려 원내 1야당의 대변인이다.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자신도 국회의원이 되었을 것이고, 그런 국민의 지지가 모여서 당도 국회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야당으로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국민의 뜻과 이익을 대변하라고 굳이 투표까지 해가며 그들을 그리로 보냈을 터였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의 일이 남의 일인가? 국가의 일이 상관없는 남의 일이기만 할 것인가? 나라 경제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데 웃을 수 있는 것은 어느 나라 정치인일까? 아니 심지어 상관없는 남의 나라라 할지라도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쉽게 비웃거나 조롱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대외여건의 악화로 하방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말에 한 사람만 신난 것 같다.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한 편으로 솔직한 사람이다. 정치인을 하기에는 너무 순진하다. 정치인이야 말로 진정한 사이코패스여야 한다. 슬프지 않아도 학습으로 슬퍼해야 하는 것을 알고, 아프지 않아도 경험으로 아파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계산과 훈련을 통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일도 필요하다면 누구보다 더 깊이 공감하며 앞장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남의 일이다. 내 일이 아니다. 세월호 당시도 그랬다. 당시 정부와 여당의 어느 누구도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다. 결국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실언같은 발언이야 말로 정부의 여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경제가 어렵다는데 '우짤긴데?' 그게 그리 신나할 일인가? 하지만 정작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마중물로 그나마 타협해서 내놓은 추경조차 통과시키지 않으려 버티고 있는 것이 자유한국당인 것이다.

 

당장 언론을 봐도 알 수 있다. 미중무역전쟁도 신나고, 그 와중에 서로 경쟁하듯 한국정부와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도 신나고, 덕분에 한국경제가 더 어려워지는 것도 신난다. 가만 보수지나 경제지를 읽어 보면 논조라는 것이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그것 보라며 통쾌해하는 듯한 표현이나 수사들이 더 많이 눈에 뜨인다. 나라 경제가 망해도 현정부만 무너뜨릴 수 있으면. 현정부만 곤란케 할 수 있으면. 노동문제에서 조금 후퇴하더라도 현정부에게 상처만 입힐 수 있기를 바라는 진보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와 자신을 분리하면서 정작 정부가 맡은 책임과 자신까지 분리하고 만다. 정부가 맡은 국정에 대한 책임에 대해 자신을 분리하는 사이 국가와도 자신을 분리하게 된다. 그게 바로 이 나라 보수의 민낯인 것이다. 내가 정권을 잡지 못하면 이 나라따위 망해도 상관없다. 물론 자신들이 정권을 잡아도 그다지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민경욱 대변인의 저 발언이야 말로 그동안 꾸준히 자유한국당이 한국경제, 아니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입장이자 태도였고 자유한국당을 지원하는 보수언론들이 주장해 온 논조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지는 않은데 저리 노골적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자유한국당도 안에서 당황하고 있지 않을까. 말은 맞는데 너무 눈치없이 솔직하다. 느끼는 사람은 새삼스럽지도 않을 테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저 막말이라 여길 테고.

 

보통사람의 반응이란 나라 경제가 어렵다면 어떻게야 하나 먼저 걱정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해야 할 까 고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정책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최대한 협력해서 당장의 위기는 벗어나야겠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대부분 야당들도 그런 식으로 위기상황에는 전적으로 정부에 협력한다. 그것이 장차 정권을 쥐게 될 책임있는 정당으로서 당연히 보여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내 일이라 슬픈 것이다. 아픈 것이기도 하고.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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