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국 보수는 근본이 없다. 수 백 수 천 년 한 사회를 지배하다 보면 그 자체로 역사가 되고 전통이 된다. 그만한 권위와 품격도 갖추게 된다. 정확히는 지배신분으로서 피지배신분과 자신들을 구분짓던 행동양식들이 누적되며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 것을 품위라 부르는 것이다. 엄격한 예절과 절제된 행동이야 말로 그들이 남들보다 위에 군림하는 존재임을 증명해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삼국시대 이래로 천 년 넘게 이어져 온 이같은 지배의 전통이 외적 요인에 의해 깡그리 부서지고 뒤집혀 버리고 말았다. 충효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던 사대부가 침략자인 일제에 협력한 순간 그들은 지배신분으로서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제에 항거하면 일제의 탄압으로 사회적인 모든 기득권을 잃기 일쑤였다. 심지어 전통적인 사대부조차 일제강점기 그저 일제에 아부해서 출세한 시정잡배들과 다르지 않았고 실제 그 대부분은 더이상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배신분으로서의 가치와 행동양식들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과 일제강점기 일제에 부역하던 부일배들의 행동양식은 그만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전쟁을 거치며 아예 사회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다시피 했으니.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일어난 것이 권력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들이거나 혼란을 기회로 삼고 크게 부를 쌓은 졸부들이었다.


바로 한국 보수의 뿌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 진보는 지식인 집단에서 시작되었다. 당장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래도 고등교육까지 받은 엘리트들이었고, 그같은 전통은 해방 이후에도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반권위주의 투쟁을 통해 이어지게 된다. 철저히 지식인의 관점에서, 오히려 과거 전통적인 사대부들이 그랬던 것처럼 엄격하게 절제된 행동양식들을 보이며 속물적인 권력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다. 한국사회에서 유독 더 엄숙하고 고상해야 할 보수가 천박한 말과 행동을 일상으로 보이고, 더 자유분방해야 할 진보가 엄격하고 고상한 도덕과 예절을 강요받는 것은. 보수정치인이나 언론, 지식인들이 아무리 경우에 없는 막말을 쏟아내도 사회는 관대하지만, 진보적인 정치인이나 언론, 지식인들이 조금이라도 경우에 벗어난 말을 하면 온 사회의 비난이 그리로 쏠리고 만다. 보수정치인의 부정이나 비리, 범죄는 그럴 수 있는 일들로 여겨지지만 오히려 진보적이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일탈마저도 크게 여겨진다.


과연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 정치인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더러 아베의 앞잡이라 이야기했다면 과연 언론들은 무어라 떠들어대고 있었을까? 아니 언론을 말하기 전에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었을까? 오히려 5.18에 대해 막말을 하고,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더욱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유총과 관련해서 정작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학부모들을 겁박하는 행동을 보면서도 오히려 편드는 자유한국당에 대해 학부모들의 지지가 올라가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그래도 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그래서는 안된다. 왜냐면 원래 자유한국당은 그런 정당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은 그와는 다른 정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오히려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이 올라가는 반면 크게 잘못한 것이 없어도 더불어민주당은 온갖 비난을 들으며 지지율이 폭락하고 만다. 이미 그렇게 관성적으로 길들여진 것이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 보수의 뿌리가 무엇이고 어디인가에 대해서.


그래도 제 1야당의 원내대표로서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마저 비판이 아닌 인신모독성 발언으로 대통령을 욕보이려 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당연히 비판은 할 수 있다. 비난도 할 수 있다. 사실 그냥 평소의 대변인 성명 정도라면 그런 정도 말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엄격하게 품위와 예절을 지켜가며 표현도 가려서 해야 할 자리에서 굳이 대통령을 모욕하는 표현을 앞세워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다. 장담한다. 여론은 오히려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로 몰릴 것이다. 진보정당은 안되지만 보수정당은 그래도 된다. 한국 정치의 슬픈 단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평소에도 특히 보수야당 정치인이나 관련자들의 일반인들도 차마 하기 힘든 상스럽고 저질스런 발언이나 표현들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언론이나 대중의 반응, 무엇보다 해당 정당에 대한 지지율 변화를 보았었다. 민주당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들이었다. 보수정당의 정치인이 성추행을 저지르든, 뇌물을 받든, 인사청탁을 하든, 아니면 다른 범죄를 저지르든, 심지어 전국민을 분노케 했던 국정농단에 대해서도 그러나 여전히 여론은 관대하기만 하다. 어째서? 보수야당은 원래 그런 정당이었고 그런 모습들이야 말로 이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의 본모습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보수야당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해서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온당치 않다. 오히려 평소 아닌 척 하다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진보정당 관련 인사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물려야 한다. 당장 방심위의 언론에 대한 심의방향도 그렇다. 보수언론은 그럴 수 있지만 보수적이지 않은 언론은 그래서는 안된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다. 원래 한 사회의 도덕적 기준은 지배계급을 기준으로 그를 모방하며 성립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평범한 농민들이 양반들을 본받아 성리학적인 규범과 질서를 내면화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원래 출신이야 어떻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큰 부를 쌓으면 당연하게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른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를 위해 스스로 사회적 발언도 하고, 그를 위해 통큰 기부도 하면서 자신이 미국사회에서 특별한 지위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가. 우리 사회에서 그 지배층들이 보이는 모습이란. 그들이 보여주는 도덕적 기준이란. 오히려 엄숙하고 엄격한 진보가 위선이라 비난받고 정작 그들의 일탈과 부정을 비난하면서도 일상에서는 그들을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갑질이 일상화된 이유다. 특정 신분이나 계층만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딜 가나 흔히 쉽게 아무나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갑질이란 것이다. 그 갑질은 어디서 비롯되었겠는가.


역시나 이번 나경원의 발언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문제삼는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로 역풍이 불게 될 것이다. 원래 한국 사회가 그랬었다. 한국국민들의 행동방식이 그랬었다. 차라리 보수야당의 갑질을 본받으면 본받았지 진보정당의 위선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이상인 것이다. 대통령에게도 막말하는 보수정치인의 모습이란. 물론 진보정치인이 그래서는 온갖 비난과 맞서야 했을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막말이라고도 할 수 없었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발언을 굳이 헤집어 비난하며 그를 끌어내리려 했던 대중들은 그러나 반대편에서 가해지던 온갖 저질스런 모욕과 저주들에 대해서는 관대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보수의 근본을 헤집어 본다. 한국 진보의 문제점도 돌이켜 본다. 지금 한국사회를 이루고 있는 뿌리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근원이기도 하다. 어디서 시작되었고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던 것인가. 아니라 자신하는가. 저들과 같은 특권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출세해야 하고 저들과 같은 위치에 올라서야 한다. 한국인을 움직이는 단 하나 욕망이며 동기다. 슬픈 것이다. 안타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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