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게 회의란 의무일까? 권리일까? 국회의원이란 국회를 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들을 뜻하는 것일까? 국회를 열고 일해야 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노래야 자기 하고 싶을 때 부르는 것이지만 더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 이를 가수라 말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공인이란 공적인 책임을 지는 이들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과연 가수가 공인일까? 국회의원이 공인일까?

매일 소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한 가수가 있다. 그렇게 계약서까지 쓰고 돈까지 꼬박꼬박 받아가는데 정작 자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아예 노래부르는 것을 거부한다. 국회의원이 선거에 나가 유세를 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유권자를 대신해서 국회에서 일하겠다고 하는 선언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회에서 이런 일들을 할 테니 나를 뽑아달라.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이 아예 국회조차 열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로 한국 보수의 민낯이다. 아니 한국 기득권의 민낯이다. 모든 것을 사유화하려 한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언론은 언론의 자유를 사유화하고, 기업들은 주주들을 무시하 채 창업주의 혈족을 중심으로 세습하려 한다. 심지어 독립적이고 공정해야 할 사법부마저 대법원장과 소수 법관들의 이익을 위해 재판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국회를 열고 법안과 예산을 심사하는 것은 국회의원 자신들이기에 그것을 무기삼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어야겠다.

국정조사와 추경은 별개일 것이다. 장관경질과 본회의 개회 역시 전혀 별개인 것이다. 국정조사를 하든 안하든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을 살펴야 하고, 장관을 경질하든 말든 법이 정한 회기 안에 입법부로서 법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국정조사와 장관경질은 그와 상관없는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위해 그마저 볼모잡는 것은 과연 민주주의의 원칙이 맞는가. 하지만 기왕 주어진 권한이니까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알뜰하게 사용하겠다.

그래서 지지율이 30%나 나오는 것이다. 민주당이 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이용할 것은 철저히 이용한다.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한다. 추경이 반드시 필요하고 법안들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면 자유당 없이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저와 같은 자유한국당의 민낯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속셈은 아닌가. 추경심사에 조건을 달고, 본회의 개회에도 조건을 앞세운다. 자신들이 국회를 열어 일하고 말고는 자신들의 권한이지 의무나 책임은 아니다. 누구도 강제할 수 없고 강요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자유인들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인 모양이다.

벌써 몇 달이나 지난 강원도의 화재는 사소해 보일 정도로 국가적인 위기가 코앞에 닥친 상황인 것이다. 당장 얼마나 큰 피해가 한국 경제와 사회에 미칠 지 모르는 지금 한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건을 내걸고 거래부터 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왜 문제이고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생각할 머리마저 없는 모양이다. 누가 저들을 저곳에 데려다 놓았을까? 누가 저들을 저만한 막중한 책임이 지워진 자리에 올려놓은 것일까?

조선중기 당쟁이 극심하던 동안이도 정작 전란이 닥치고 기근이 생기면 일단 조정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한 뒤 싸워도 싸웠던 것이었다. 저 유명한 예송논쟁 역시 대기근이 발생한 와중에 구휼할 것 하고 대책 세울 것 세우며 병행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긴 워낙 가진 컨텐츠가 없으니 그렇게 마냥 우기며 반대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존재감이 있다.

그냥 한심한 것이다. 화도 나지 않는다. 민주당의 무능을 탓하기에는 바른미래당을 믿을 수 없다. 바른미래당이 확실하게 협력해야 자유한국당 없이 뭐든 처리할 수 있다. 결국은 사람좋은 얼굴을 한 공범자라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면 국민의 선의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민주주의란 것이라. 그래서 나경원은 뻔뻔할 수 있다. 날도 더운데 찬물도 뜨겁기만 하다. 정치혐오가 아닌 한국 보수에 대한 혐오다. 당연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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