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 왕정이 무너진 이유가 있었다. 원래 신들이 하는 짓거리란 당시 권력자가 하던 짓거리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신이란 지고의 권위와 권능을 가진 존재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인 그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인가 상상할 때 결국 참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에서 역시 막강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 권력자의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도 최고신이라 할 수 있는 하늘의 신 옥황상제의 모습을 보면 가장 이상적인 당시 중국 황제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옥황상제가 머무는 천상의 모습부터가 당시 중국 황궁 자체였었다.


하여튼 이런 막장이 없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혈족살인에, 근친상간에, 자기들끼리만 그러는 것도 아니라 인간세계에서까지 온갖 해악을 미치고 있다. 당장 제우스만도 그나마 유혹에 성공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가 유인에 납치에 결국은 강간이었다. 제우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포세이돈도 만만치 않았고, 헤르메스를 비롯 그리스의 신들이 세상에 남긴 수많은 사생아들이 그렇게 신들의 강제와 억압에 의해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신화 후반 신들의 이야기에서 인간인 영웅들의 이야기로 넘어왔을 때 더 확실해진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영웅 헤라클레스가 오이칼리아를 멸망시키고 이올레를 납치해 오는 장면이나,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아마존의 여왕을 납치하고 아직 어린 나이였던 헬레네를 납치했다가 도리어 아테네가 함락당한 이야기등은 당시 그리스 지배층의 파렴치를 그대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하긴 도덕이란 자체가 고도의 사유체계이고 보면 고대의 군주들이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이기는 했을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여신 아테네보다 수를 잘 놓았다는 이유만으로 거미가 되었고, 미다스는 아폴론이 아닌 판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귀가 당나귀귀로 변했었다. 이같은 신들의 막장성이 그리스에서 철학이 발달한 이유가 되고 있기도 했었다.


2. 고대 그리스의 왕가는 세습보다는 추대가 더 흔했고, 그럼에도 대부분 왕가가 서로 인척관계로 이어져 있었다. 당장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가멤논만 하더라도 자신이 미케네의 왕이면서 동생인 메넬라오스가 스파르타의 왕이기도 했었다. 오이디푸스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만 보더라도 반드시 혈연을 매개로 왕위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고대 그리스에서 영웅전설이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인 반면, 이들 영웅들 역시 씨줄과 날줄로 서로 혈연으로 엮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당시 그리스 지배층의 모습을 어렴풋 유추해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미니멀한 중세 유럽의 귀족사회나 일본의 무사계급과 닮지 않았을까. 그런 체계없는 계승 또한 고대 그리스의 권력이 보여주는 파렴치함의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왕위란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인류역사에서 그것은 상식이었다.


3. 고대 그리스에서 양치기와 어부는 지배층에 속한 관직에 더 가까웠다. 하긴 고대사회에서 모든 생산수단은 전제군주의 것이었고 따라서 그것을 관리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특권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오이디푸스의 전설만 하더라도 아버지인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내다버릴 때 그 명령을 따른 것도 양치기였었고, 그 양치기가 버린 오이디푸스를 주워서 코린토스의 왕 폴뤼보스에게 데려간 것도 바로 양치기였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역시 양치기로 있다가 여신들의 다툼의 심판을 맡고 헬레나를 아내로 얻고 있었다. 한 편 바다에 버려진 페르세우스 모자를 구한 것이 세리포스의 어부 딕티스였는데, 바로 세리포스의 왕 폴리덱티스의 동생이었었다. 페르세우스에 의해 폴리덱티스가 돌이 되자 뒤를 이어 왕이 되기도 한다. 


결국 양과 소는 당시 군주들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었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배 또한 값비싼 수단이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당시 사회규모에서 왕이라는 존재 자체가 후대의 고대화된 사회의 군주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고대사회에서는 토지 역시 군주의 소유로써 농민들은 단지 군주의 토지를 경작하고 그로부터 필요한 식량을 얻을 뿐인 존재였었다. 농사를 짓는 씨앗까지도 그래서 모두 군주가 제공하고 있었다. 보이오티아의 왕비 이노가 전왕비인 네펠레의 자식들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밀 때 썼던 계략 가운데 하나가 농민들에게 줄 씨앗을 익혀서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익힌 씨앗에서 싹이 틀리 없으므로 큰 흉년이 들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왕은 자신의 자식들을 신의 제물로 바쳐야 했었다. 아직 생산력이 부족하던 시대의 토지란 사유재산으로서는 너무 가치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4. 싸움에서 진 적의 성기를 자르는 것은 의외로 흔한 일이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전쟁에서도 수많은 포로들이 거세된 바 있었고, 가깝게는 원명교체기에 명군에 의해 원과 그에 협력하던 이민족포로들에 대한 광범위한 거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화가 그렇게 운남에서 포로가 되어 거세당한 뒤 환관이 되었다 영락제의 측근이 된 경우였다. 처음에는 우라노스나 크로노스가 각각 아들들에게 찬탈당하고 거세까지 당한 것이 어떤 신화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궁리도 했었었다. 하지만 세계사를 보거나 지중해세계의 역사를 보았을 때 그냥 거세는 패자에 대한 일반적인 형벌에 지나지 않았다. 성기를 제거했으므로 더이상 후손을 낳을 수도 없고 남성으로써 권위를 세울수도 없다. 개인에게나 혹은 집단에게나 심각한 위협이자 모욕이다. 한 마디로 씨를 말리겠다는 말의 적극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5. 문득 석탈해 신화를 떠올릴게 되었다. 석탈해도 태어났을 때 알이었던 탓에 상자에 담겨져 바다에 버려진 바 있었다. 페르세우스 역시 어머니 다나에와 더불어 상자에 담겨 바다에 던져지고 있었다. 사생아로 태어났던 때문이었다. 비슷한 예가 신화에서는 몇 더 있는데 하나같이 결혼하지 않은 채 임신했거나 출산까지 한 경우였었다. 부정한 출생이기에 차마 산모와 아이를 죽이지는 못하고 신의 뜻에 맡겨 바다에 띄워 보낸 것은 아닐까. 생부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 신을 개입시키는 것은 그가 신에 의해서만 살 수 있는 운명의 존재이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죽었어야 할 운명에서 끝내 살아났으므로 그것은 신의 뜻이고 그들은 신의 자식들이다. 그냥 망상.


6. 포세이돈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괴물에 범죄자들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바다가 주는 이미지였을 것이다. 당시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그리스는 또한 뛰어난 해양문명이었음에도 여전히 바다는 정복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전혀 예측할 수 없이 밀어닥치는 폭풍과 비바람, 높은 파도, 무엇보다 바다를 무대로 누비는 해적들까지. 테세우스가 살해한 스키론 역시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한 편으로 살라미스의 임금 키클레우스의 딸과 결혼한 사이이기도 했는데, 심지어 전승에 따라서는 테세우스와 사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맨 위와 이어진다. 하긴 불과 얼마전까지도 지역유지에 의해 주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여행자에 대한 범죄가 저질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사회에서도 있었다. 가족의 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러 가는 차를 막아서고 돈을 갈취한 것이 그 마을 이장이었었다. 바다가 그 모든 것을 대신한다.


7. 얼마전 다시 그리스신화를 읽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굳이 다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읽으니 확실히 그 맛이 전과는 전혀 다르다. 그냥 신들이 신들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신화에 녹아든 역사 이전 그리스 사회의 모습에도 눈길이 가게 된다. 무엇보다 어째서 고대그리스에서 철학이 발달했는가 그 이유를 더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데미우르고스가 만든 가짜 세계이고 가짜 신이다. 플라톤의 그 외침은 진리는 현실의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이성으로만 알 수 있는 감춰진 진짜에 있다. 영지주의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좀 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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