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이 블로그에도 있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경제모델이 있었다. 한 쪽은 복지를 원하고 한 쪽은 저임금을 원한다. 한 쪽은 모든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리게 하고 싶고, 한 쪽에서는 어떻게든 인건비를 줄여서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다. 결국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광주형 모델이다.


노동자들이 연차가 쌓일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기를 바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큼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당장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이 지출은 천정부지로 늘어나게 된다. 먹이고 입히는 것은 물론 학교에도 보내야 하고 사교육도 받게 해야 하고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면 넓은 집으로 이사도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젊은 시절 받던 임금만으로, 아니 사회에 첫발을 딛는 순간에도 그런 미래의 일을 걱정해서 충분한 임금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한 편으로 당연한 것이다. 아니면 가정을 꾸리기는 커녕 내 생활도 위태롭다.


그러면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이는 나라가 키워준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모든 것을 나라에서 책임져 준다. 뿐만 아니라 사는 집도, 혹시라도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 역시 모두 나라에서 대신 책임져 줄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는 딱 그 만큼만 빼고 기업으로부터 급여로 받으라. 기업으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그 모든 것을 대신해 줄 테니 기업은 그 만큼의 임금만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이런 게 상생인 것이다. 노동자는 어찌되었든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은 채 일할 수 있을 것이고, 기업은 노동자에게 나가는 인건비의 지출을 그만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근속연수에 따른 연공서열을 약화시킴으로써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을 강화하는 토대가 된다. 항상 노조의 편에 섰던 정의당까지 침묵하는 이유다. 이미 당시 정의당 대표였던 심상정은 최고임금제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었다.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의 격차를 줄이자. 정확히 최고임금을 제한하는 대신 최저임금을 그만큼 올려서 대부분 노동자들이 평균적인 임금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하자. 그러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즉 연차가 쌓일수록 대부분 노동자들에게 들어갈 돈은 많아질 텐데 어떻게 그들의 임금상승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혹은 지방정부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재정으로 대신 해결해 주겠다. 굳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필요가 없다.


사실 나이 먹고 일자리를 잃었을 때 다시 취업하기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연공서열일 것이다. 나이를 먹었으니 그만큼 대우해주어야 한다. 나이를 먹었으니 그만큼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채용하는 쪽에서도 부담스럽고, 일자리를 구하는 쪽에서도 제약이 많다. 그러니까 나이가 얼마든 경력이 어떻든 같은 일을 하면 일단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대우가 다르지 않게 한다. 그래도 좋은 사회안전망을 갖춘다. 그래도 좋은 사회적 배경을 만들어 준다. 선진국들에서 정리해고 한다고 우리나라에서처럼 마치 전쟁하듯 목숨걸고 싸우려 드는 경우가 드문 것도 바로 그래서다. 선진국에서도 역시 비정규직은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없다. 실직상태일 때도 정부의 지원으로 최소한의 삶은 보장받을 수 있고, 그만큼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들어가기도 어렵지 않다. 최저임금인상에 긍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최종수령액도 현실화되니 그만큼 중장년 가장들이 일을 가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당장 편의점만 해도 젊은층보다 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무엇보다 일에 익숙한 중장년 직원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래도 가족을 부양하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된다.


어차피 임금은 일하는 만큼. 자신의 노동력이 가지는 가치 만큼. 전에도 말한 바 있다. 노동가치란 인간의 가치라고. 나이 더 많다고 인간의 가치가 더 높아지거나 할 리 없다. 한 사회에서 그 구성원을 노동력으로 고용해 쓰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 걸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는 차등이 없다. 다만 숙련도라는 면에서, 혹은 그동안 오래 회사에서 일하며 누적되어 온 기여와 공로를 인정해서 약간의 대가를 더 얹어 지불할 수는 있다. 그건 별개다. 그것이 연차에 따라 몇 배까지 벌어지면 그것도 큰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방치해 온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의 뒤에 그가 부양해야 할 똑같은 인격이 여럿 딸려 있었다. 그 부분을 제거한다. 자기가 일한 만큼만 받으라. 나머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들은 정부에서 책임져 준다. 그만큼에 대해서는 굳이 더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다.


사회의 진보다. 뒤늦게 내가 광주형일자리를 지지하며 나서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라서가 아니라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심지어 노무현 정부 전부터 주장해 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사회가 나가도록 힘써야 한다. 기업과 노동자, 사회와 개인 모두를 위해서. 그러니까 어째서 항상 노조의 편만 들던 정의당이 이번에는 말을 아끼고 있는가. 그 끝에 무엇이 있는가가 보이기 때문이다. 지역도 살고 기업도 살고 국가도 살고 노동자도 사는 궁극의 길이다.


더불어 내가 현대자동차 노조의 주장에 크게 귀기울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금속노조에 속해 있다. 산별노조다. 현대자동차노조와 같이 힘있는 노조가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만들어 중소기업의 노동자들도 강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 그 제안을 거부한 것이 누구더라? 일단 같은 노동자니까 지지는 하는데 그렇다고 연대의 대상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다른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면 그보다 웃긴 것도 없다.


아무튼 나로서는 광주형 일자리를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그것이 옳다. 그것이 이 사회가 나갈 방향이어야 한다. 오랜만에 여당이 제대로 된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양보하지 않는 것은 우리 편이 아니다. 희생하지 않는 것은 우리 편이라 할 수 없다. 요구만 하는 것은 그냥 상전이다. 더 많은 책임져야 할 국민과 지지자가 있다. 민주당의 강단을 지지한다. 이번에는 밀어붙이라.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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