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 임기 동안 아마 지지율이 10% 남짓 나오고 했을 것이다. 그나마 임기말에 열린우리당도 탈당하고 한미FTA도 추진하면서 보수층으로부터 지지율을 회복해서 20% 좀 넘게 나왔었던 것 같다.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하여튼 오만 놈들이 다 노무현을 까던 시절이라 그렇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당선되고 서청원이 방송에서 극좌파 정권이라 공격한 적이 있었다. 김대중도 빨갱이인데 노무현은 그보다 더한 빨갱이다. 더구나 학력도 고졸이었다. 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자칭 진보들 가운데서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학력을 문제삼아 비웃고 조롱하던 놈들이 쌔고 쌨었다. 전여옥이 어느 언론사에 기고하면서 그래도 대학은 나온 대통령을 갖고 싶다고 썼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화진영 내부에서도 원래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던 지역이 부산이었다는 점 때문에 수도권에서 활동했던 그 주류들로부터 배척받고 있었다. 노무현이란 개인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가 컸었기에 대통령도 되었고 열린우리당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 이 사회 주류들에게는 처음부터 비토를 넘어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대통령이 임기말에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사실상 내쫓긴 것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과 대통령과의 관계는 한심 그 자체였었다. 오죽하면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노무현 지지자들 - 노빠들 다수가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더 혐오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대통령이 뭔가 하려 하면 여당에서 힘을 실어주고 해야 할 텐데, 워낙 대통령보다 더 잘났다는 인간들이 많았다 보니 허구헌날 대통령 들이받기가 일상이었었다. 김근태는 아예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 싸움을 걸었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기사는 열린우리당 소속 정치인의 입을 빌어 기사로 나오고는 했었다. 자기가 속해 있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자기가 원하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거나 행동을 요구하는 것도 어려워서 매번 곤란을 겪고는 했었다. 그때 열린우리당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할 수 있었던 인물은 기껏해야 유시민 한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 사실 그때 친노라 해봐야 노무현의 측근들은 총선에서도 거의 공천을 받지 못했었고, 뱃지를 달았던 인물도 유시민 한 사람 정도가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후 열린우리당과 다시 합당하며서 지금 민주당의 또 하나 뿌리가 되었던 당시 민주당은 아예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던 주체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제, 그러면 당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안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에 우호적이었던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말했다시피 열린우리당에서 아예 쫓겨났었다니까. 대통령 지지율 낮으니 당의 지지율에 도움 안된다고 정동영과 김한길이 손잡고 압박해서 탈당하도록 강요했었다. 그런데 여당에서 내쫓기고 나니 지지율이 오히려 오르고 있었으니 누가 발목을 잡았는가는 명확할 것이다. 당에서 내쫓은 정도가 아니라 이후 정동영을 비롯한 당의 주류들은 당에서 노무현이란 존재를 지우고 노무현 정부와 선을 긋는데 아주 열심이었었다. 그래서 정동영에게 당시 붙여졌던 별명이 정곶감이었다. 좋은 것만 빼먹고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다. 자기들과 노무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이나 실책들에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잘못한 것이지 자기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러고서 아예 열린우리당도 깨버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었다. 민주당을 개혁하겠다며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던 그 정동영이 앞장서서. 그런데 하물며 정권이 바뀌고 이명박이 검찰을 움직여 노무현 전대통령을 수사하고자 했을 때 과연 몇이나 그의 곁을 지켰었을까?

 

당시 민주노동당 출신들이야 원래 한나라당이랑 손잡고 어쩌고 하던 놈들이니 돌아볼 필요도 없다. 한겨레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놈현관장사라는 아주 섹시한 제목을 뽑아서 유시민을 열받게 한 바 있었다. 내가 경향일보를 당시 즐겨 읽었던 이유도 노무현을 참 잘 깠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이 수사받던 당시에는 진짜 와 인간적으로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선일보보다도 더 모멸적으로 비하하고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수도 없이 쏟아냈던 곳이 바로 경향일보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 역시 그때 노무현을 많이 비판하던 입장이었으니까. 문재인과 비슷하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물인 것은 맞는데 대통령으로서 나와 많은 부분에서 입장이자 지향이 다르다. 도저히 내가 지지할 수 없는 정책들을 많이 펴고 있다. 결과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지율도 10% 좀 넘게 나왔던 것인데 과연 당시 노무현 욕 한 번 안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한 번 당시 노무현에 대해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발언을 모두 뒤집어 보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노무현이 죽고 나니까 죄다 친노더라. 노무현이 그렇게 떠나고 국민들이 그를 추모하고 있으니 갑자기 전에 없던 친노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고 대통령후보가 되었던 무렵 청와대에서 한 자리 했으면 죄다 친노라고 나오던 것과 비슷하다. 이철희가 문재인을 지지해서 정무수석이 되었던 것이 아니듯이 그냥 청와대에 자리가 있으니 갔었을 뿐인 인사들마저 죄다 친노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전대통령을 등에 업은 채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들 노무현 전대통령 수사받고 언론에 의해 전국민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했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오죽하면 대북송검특검으로 원한이 있었을 박지원이 검찰의 정치수사에 대해 노무현 전대통령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이후 재평가받고 있었겠는가. 고작 그런 정도였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그의 곁을 지켰던 측근이랄 수 있는 인물은 유시민을 비롯해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데 뭔 민주당에 이리 노무현 좋다는 인사가 많은가. 고민정은 그때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더라?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40% 좀 넘게 나오니 당시 기준으로 무려 20%넘는 지지자들이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최소 방관자적인 입장에 있던 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주 오래전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조리돌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그때 노무현 전대통령 욕한 것 다 헤집어 찾으면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언론이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물론이고 한겨레와 경향이 노무현 가지고 지랄하면 진짜 염치도 양심도 없는 것이다. 괜히 노무현 죽고 한겨레 편집부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는 말이 도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는 곁에 아무도 없더니만 죽고 이름을 등에 업을 수 있으니 그렇게 측근들이 넘쳐난다. 노무현 팔아서 정치하던 놈들이 나중에 문재인을 파는데 그런 놈들이 정작 대선에서는 아예 지라고 손놓고 있었으니 웃기는 것이다. 그놈들이 과연 진짜 노무현을 좋아하고 문재인을 따라서 친노이고 친문이었겠는가.

 

아무튼 오죽하면 당시 가장 인기있는 유행어 중 하나였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하다못해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것도 노무현이 대통령이라서였다. 그만큼 인기없는 대통령이었고, 그때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조롱과 비아냥을 쏟아냈어도 그만큼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 역시 대통령으로서 욕을 먹는 것도 자신의 정치적인 책임 중 하나라 여기던 인물이었고. 욕할 사람이 없으면 대통령이라도 욕해야지. 그렇다고 모든 정책을 잘 폈느냐면 그것도 아니니 반대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시간이 너무 흐른 때문이다. 집단적인 기억상실증일 것인가. 언론이 노무현 폄하발언이라며 지랄하는 꼴이 더 웃긴다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 새끼들은 진짜 양심도 염치도 없다. 그러니 언론종사자다. 좋은 기자는 역시 뒈진 기자새끼들 뿐이다. 

정당이란 결사체다. 자연적인 집단이 아니다. 동일한 정치적 성형과 지향과 목적인 가지는 개인들이 모여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하고자 인위적으로 모인 집단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당의 구성원 가운데 그 원래 취지인 공동의 지향과 목적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간단하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정의연의 회원이 위안부는 없다고 주장한다. 혹은 여성단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인구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행과 일부다처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남성인권단체에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를 위해 남성이 더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보수정당에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여럿 영입되어 배지도 달고 했었음에도 지금 그 이름조차 아예 잊혀지고 만 이유와 같을 것이다. 아무리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경제발전을 위해 그린벨트고 천연기념물이고 다 밀어버리고 콘크리트로 쳐발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간을 환경단체에 남겨둘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별로인데 보수유권자나 혹은 보수적인 중도층이 보기에 괜찮다면 원래 그런 쪽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과는 오히려 전혀 맞지 않고 보수정당에 더 걸맞는 인재이기에 그리 보이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에서 그렇게 말많고 시끄럽던 조경태가 국민의힘 가서 얼마나 조용한가 보라. 자기와 맞는 곳을 찾아가면 자연스럽게 불평과 불만도 사라지고 더 자기가 소속한 정당에 충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처음부터 자신과 맞지 않는 곳에 있었기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분란도 일으키고는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더 좋아하는 쪽으로 옮겨가면 된다.

 

당장 금태섭이나 양향자만 봐도 좋게 나간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을 나가고 나서 얼마나 편하게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지내고 있는가 말이다. 하는 말이며 행동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그만큼 더 편해지고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이 원하던대로 보수에서 떨어져나온 이준석과 합류해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더이상 민주당 이름 걸고 자기들을 화나게 하는 말이며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고, 나간 당사자들도 누구로부터 크게 비난받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으니 좋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해당 정치인의 말이며 행동들이 마음에 들었다면 마땅히 그를 영입해 데려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인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는 싫어하는데 보수 지지자가 좋아하는 이를 괜히 민주당에 남겨두기보다 서로가 좋도록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행복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보수지지자들이 좋아하기에 외연을 위해서도 남겨두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다양성을 위해 용인해야 한다. 좋아하기는 보수지지자들이 더 좋아하는데 외연과 다양성을 위해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희생하며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말이다.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민주당인 것도 아니었고, 민주당이란 정체성이 평생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도 아니며, 민주당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정당의 가입과 탈퇴에 전적인 자유가 주어지고 있다. 누가 언제 어느 정당에 입당하고 탈당할 것인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누구도 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 일정한 제약을 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차피 보수지지자들이 더 좋아하는 정치인이지 않은가.

 

보수지지자들이 더 좋아하는 박용진을 민주당에 남겨두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주장에 코웃음을 치는 이유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리 싫어하는 말과 행동만 보여 왔는데 민주주의니까 끌어안아야 한다. 민주주의니까 당원 전체의 의사로 최소한 책임과 권한이 있는 위치에는 올리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보수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정치인들만 열심히 편들고 있는 한겨레는 과연 진보언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보수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이 좋아할만한 사실들만 가지고 민주당을 비판하는데 열심인데 그것을 진보적인 성향에 의한 것이라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외국인혐오와 여성혐오, 특정세대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이준석의 정치마저 찬양하던 곳이 바로 한겨레인 것이다. 이제는 마땅히 한겨레도 보수로 놓아 주어야 한다. 경향일보야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친검찰 친기득권 성향을 인증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에 바라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었던 것이기도 했다. 이후 선거 때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진보정당 투표가 나타난 이유였다. 그러니까 보다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이 보수일변도인 거대양당과 정부를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도 보수정당을 지지할 수는 없으니 민주당을 지지하기는 하는데 하는 짓거리가 너무 한심하다. 심지어 박근혜가 당대표로 있는 동안 정당의 시스템 자체만 놓고 보면 한나당,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더 선진적으로 여겨질 정도였었다. 보수정당의 대안으로서 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책과 법안들을 앞세워 대한민국에 또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허구헌날 끌려만 다니다 기회만 되면 야합하기에 바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오히려 중도적인 입장에서 두 거대양당을 조율해야 할 대통령이 앞장서서 개혁아젠다를 던지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야합해서 그를 막아서는 상황이 거의 반복되다시피 했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개혁들은 오히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의해 거의 저지되고 정작 대통령만 극단적이라는 오명 아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었다. 저런 새끼들을 내가 지지해야 하는가? 그래서 보다 선명한 진보적인 정책들을 앞세운 진보정당에 기대를 걸고 표를 주는 사람들도 나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민주노동당이 정작 국회로 들어와서 누구와 손을 잡았더라?

 

민주당 지지층의 진보정당 투표는 노무현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진보정당에 대한 순진할 정도의 기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당시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이 꽤 나오기도 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면 보수정당에 맞서 이 나라를 보다 진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대안이 생기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존재가 민주당을 보다 진보적으로, 나아가 한나라당과 차별되는 보수로 자리잡도록 해 줄 것이다. 그런데 그 민주노동당이 수구인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아마 아직도 진보에 기대를 걸고 있는 대부분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추락에 대해 노무현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으니 진보정당들도 지지율이 추락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후 진보정당들은 그때의 지지율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진보정당에 투표해도 이 사회의 진보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그나마 심상정과 노회찬이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을 때든 새롭게 기대를 가지기도 했었다. 유시민까지 합류해서 통합진보당을 만들었을 때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나고 있었다. 주사파놈들과 결별하고 다시 정의당으로 떨어져 나왔을 때도 유시민이 있으니 그래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그러나 결과는 공수처법에 반대하고, 문재인 탄핵을 언급하며, 국민의힘을 노동존중의 정당이라 찬양하는 국민의힘 전위대의 모습인 것이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이성윤 고검장의 승진에 반대하고, 수명 다한 원전을 가동중단시켰다고 국정감사에서 따지겠다는 것이 당시 정의당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 단축도, 대체공휴일도, 중대재해법도, 모두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고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만 공격했었다. 중대재해법을 두고 그렇게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던 놈들이 정작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찬양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라. 2022년 대선에서도 심상정과 정의당은 오로지 이재명만 공격했을 뿐 윤석열 당시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유권자로서 이런 모습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게 되었을까?

 

조국신당의 돌풍은 바로 그같은 기존의 진보정당에 대한 실망의 결과인 것이다. 보다 선명한 것을 바란다. 보다 분명한 것을 바란다. 그를 통해 대한민국을 보다 선명하고 분명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대안을 요구한다. 그래서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같은 중도적인 위치의 정당들이 지리멸렬하고 마는 것이다. 중용에 대해서 쓰면서 말했었지만 중도란 반드시 둘 사이의 중간을 가리키지 않는다.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또다른 지점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선명함과 분명함을 요구한다. 그쪽이 더 이해하기에도 받아들이기에도 쉽고 편하다. 돌이켜보면 그런 이유에서 국민의힘의 돌풍 역시 안철수가 주장한 새정치라는 아젠다가 큰 역할을 했을 터였다. 차라리 윤석열 정부에 대해 보다 분명한, 거대정당으로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들을 아예 생각지 않는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와 입장들이 시민들의 흥미를 잡아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라면 최소한 다른 정당에서와 같은 답답함은 없겠다. 특히 민주당에 만족하지 못하는 보다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지금 조국신당에 대한 돌풍이라고 여길만한 시민들의 거센 지지는 어쩌면 원래는 정의당에게로 갔어야 지지일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이다. 보다 왼쪽에서 보다 선명한 위치에서 보수정당과 맞서서 민주당을 보다 분명한 방향으로 이끌었어야 할 대안세력으로써 정의당이 누렸을 수 있는 지위를 지금 조국신당이 누리고 있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동안 민주당에 대한 답답함이나 목마름이 컸었는데 다른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지지해야 했던 유권자들이 다른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어째서 정의당은 그같은 선택에서 제외되고 있었는가. 민주당 2중대 싫다고 국민의힘 전위대 역할을 하던 과거를 돌이켜보라는 것이다. 이 사회를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진보정당이 수구적인 정당에 힘을 실어주며 그나마 이루어지던 알량한 진보마저 다시 원점으로, 아니 아예 후퇴토록 만들고 말았다. 그런 정당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조국신당의 약진을 보면서 진보정당들이 반성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당에 대해 더 선명한 진보적인 색채를 띄기를 바라는 지지자들이 어째서 진보정당을 그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가. 그나마 비례에는 진보정당에 표를 주던 유권자들이 아예 민주당이 주도한 연합정당에조차 표를 주기를 주저하고 있는가. 저 새끼들은 진보가 아니다.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오히려 해악만 끼치는 놈들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 진보들을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자칭을 붙여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자칭 대신 2찍이다. 수구진보다. 수구를 지지하고 수구를 지향하는 진보다. 심상정, 홍세화, 김규항, 강준만, 진중권, 기타등등등등... 그런 놈들을 지지하느니 차라리 조국신당을 지지하겠다. 모른다면 병신이고 안다면 씹새끼들이다. 물론 대부분은 병신씹새끼들일 것이다. 더불어 병신쌍년들이거나.

 

어째서 대중은 조국의 신당이 열광하는가. 어째서 심지어 조국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는 결과까지 보이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선거에서는 연대하되 민주당과 합당은 없다는 조국의 천명은 크게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민주당이 아닌 다른 대안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민주당에 불만족하던 지지자들을 위한 대안일 터다. 오랜 기다림이다. 2찍 진보새끼들만 모른다. 자신들이 뭘 버리고 뭘 차냈는지. 한심한 것들이다.

중학교 때 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 가운데 화백제도가 민주주의의 시초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맥락으로 보며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래 의회라는 자체가 한 집단을 대표할만한 유력자들의 협의기구에서 출발했었으니까.

 

당장 로마의 원로원부터 그랬을 것이다. 원로원을 이루는 대다수는 결국 로마를 이루는 여러 집단들에 대한 태표성을 가지는 유력가문의 인물들이었다. 로마의 시민들이 투표해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 태생이 그러하니 자연스럽게 그같은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었다. 이후 등장한 여러 나라들의 의회도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삼부회도 결국 귀족과 성직자, 그리고 부유한 상공인들에 의한 자기들만의 리그였고,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아예 제후와 도시의 대표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의회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영국에서도 제한된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의해 어차피 될 사람만 되는 자리가 바로 의회의원이란 것이었다. 비슷하게 지금 일본 자민당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이다. 누구의 아들이라서, 누구의 사위라서, 어디의 영주이고 시장이라서, 얼마만한 땅과 자본이 있어서, 그리고 그들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입법과 행정감시가 이루어지는 곳이 의회라는 공간이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같은 소수의 기득권이 독점하고 있던 의회의 권한을 시민들이 조금씩 빼앗아오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부유한 도시의 부르주아들이, 그보다는 가난했던 더 많은 중산층 부르주아들이, 그리고 도시의 노동자와 농민들과 마침내는 여성들까지. 그러면서 더 많은 참정권을 가진 유권자들에 의해 그들의 요구에 맞는 인물들이 선출되는 과정으로 선거라는 제도도 바뀌어갔었다. 일정한 재산이 없어도, 타고난 신분이 없어도, 남다른 지위에 오르지 않고서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같은 시민들에 의해 선택받을 수 있다. 그렇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을까.

 

군사독재시절에도 국회는 있었다. 대통령도 어찌되었거나 간선제나마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권자로서 시민의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시민들의 정치적인 의사 역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7년 6월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시민들이 요구한 것도 대통령 직선제로 바꾸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은 것에 대한 항거였었다. 내가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 내가 내 손으로 주권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 그를 위해 우리 선배들을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가며 독재정권과 싸웠던 것이었다. 내가 지금 86그룹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그렇게 싸웠던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전에도 말한 것처럼 원래 민주당의 역사는 토호의 역사였다. 지역유지들이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만든 것이 민주당의 전신인 한민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이승만도 뛰쳐나가 자유당을 만들어야 했었다. 그런 것을 용납 못하겠다고 조봉암과 함께 나가서 진보당을 만들었던 젊은 정치인들도 나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당의 주류는 그런 지방의 유력자인 지주와 자본가들이었고, 그들이 선택한 후보들 역시 조봉암이나 장면, 윤보선 같은 자기들과 같은 부류들이었다. 괜히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아니었다. 이후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중앙의 강력한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의 그러한 경향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았었다. 김대중과 김영삼도 결국은 그러한 토호들과의 결탁을 통해 군사독재와 싸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어째서 김영삼의 선택에 부산경남이 한 번에 넘어가고, 김대중과 호남이 운명을 같이하다시피 했는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여기에 민주화에 지분이 있는 인사들까지 더해졌다. 내가 민주당에 지분이 있고 민주화에 지분이 있으니 민주당은 내 당이다.

 

이른바 수박의 뿌리인 것이다. 예전에는 안개모라 불렸다. 안정적인 개혁을 위한 모임의 준말이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을 고비마다 막아서고 나섰던 이들이다. 결국에는 나중에 민주당과의 재합당을 주도하고 당권파가 되어 민주당의 분열을 야기하던 놈들이다. 나 아니면 당도 없다. 내가 아니면 민주당도 없다. 사실상 기득권을 지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보수정당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민주당의 토호와 같은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단지 민주화에 지분이 있다는 이유로 자기 영역을 보장받은 이른바 86그룹들이 더해졌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내 당이다. 어느 순간 지지자를 개좆으로 알기 시작한 게 아니라 원래 처음부터 민주당에 있어 지지자란 개좆이었다는 것이다. 민주화에 자기들이 공이 있는데 감히 다른 정당을 찍을 수 있겠는가. 자기들 아닌 보수정당에 표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원래 자기들 것이라 당연하게 여기고 그저 공천만 받으면 된다고 쉽게 여겼던 것이었다.

 

한겨레와 경향 등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의 개혁에 부정적인 이유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라고 보면 된다. 아마 한 번 썼을 것이다. 어째서 저들은 민주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이 되는 것에 저토록 적대적인 것인가. 자기들에게도 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지분을 자기들도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있어 당원과 지지자란 그런 자신들을 위해 표를 주는 대상이자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당원과 지지자들이 아예 당의 주인행세를 하려 한다. 자기들을 배제한 채 자기들 뜻대로 당을 움직이려 한다.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노무현 때부터 저들은 노무현과 유시민이 주장했던 상향식 민주주의에 대해 적대적이었었다. 저들이 아직도 노무현과 유시민, 그리고 문재인에 이어 이재명까지 원수처럼 증오하는 이유일 것이다. 저놈들이 자기들의 민주당을 빼앗아가려 한다.

 

말하자면 원래 민주당이 당원의 것이었다가 수박들에 의해 빼앗긴 것이 아니라 원래 수박들의 것이었던 것을 당원들이 빼앗아 가져오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지역 유지인 누구의 아들이란 이유로 당연하게 의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무지렁이 노동자 농민들이 자기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을 공천해서 당선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이 지역의 의원 자리는 자기들 집안의, 혹은 자기들과 동류의 것이었는데 엉뚱한 사람이 와서 빼앗아가려 한다. 당연하게 피가 흘렀다. 수도 없이 죽고 죄인이 되어 쫓겨 다녀야 했었다. 전쟁도 일어났었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로서 자신이 지지할 정당에 대해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기에 정당이 자신이 의도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실력을 행사해야겠다. 그 결과 정당은 유권자인 당원과 지지자의 것이 된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빼앗기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한 혼란이었던 것이다. 노무현부터 시작된 20년 넘는 민주당 내부의 투쟁은. 

 

유시민이 민주당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말한 이유였었다. 문재인의 혁신을 위해 수 만의 당원들이 민주당으로 몰려가야 했던 이유였었다. 그래서 수박들은 당원들이 직접 자신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대의원제라는 제도를 고집했던 것이었다. 아직 민주당은 자신들의 것이다. 자신들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지지자는 개딸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여 배제하려 한다. 당원이 당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당원독재라며 낙인찍어 거부하려 한다. 그것에 동참한 2찍 진보라는 것도 같은 무리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보라 주장하는 정의당에 어디 상향식 민주주의가 있던가. 지난 총선에서도 드러났다. 정의당에 있는 것은 소수의 패거리정치 뿐이다. 그것을 민주당에도 바란다. 민주당의 수박들도 고집한다. 그래서 기나긴 싸움이 있었고 마침내 일정부분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의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당원에 의해 공천의 여부가 다수 결정되었다. 당원을 거스른 오히려 주류인사들이 당연하게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주 발작을 한다. 당원에 의해 배제된 인사들에 대해 오히려 반대편에서 아깝다고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그로 인해 피가 흘렀다. 배제되고 도태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일 것인가. 앞서 굳이 길게 역사 이야기를 한 것이다. 소수의 유력자들에 의해 독점되던 의회권력이 시민 다수에게 개방되었던 것처럼 진정으로 공당인 민주당이 지지자의 것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혁명이라는 이유다. 피를 어쨌든 흘렸으니 유혈혁명이다. 문제삼는 놈들이야 원래 프랑스혁명도 마음에 안들어 하던 귀족놈들이 넘쳐났었으니. 그렇게 적아를 구분하면 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병신짓은 하지 말자. 당연한 다짐이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통보가 갔던 것 같다. 전에 말했듯 회사 계약직 가운데 2찍이 있다. 아마 아직 20대일 것이다. 당연히 남성이다. 왜 윤석열을 찍었느냐 물으니 여가부폐지 때문이란다. 중국과 북한이 싫어서 찍었다 그런다. 그래서 최저임금이랑 근로시간은 상관없느냐 했더니 주휴수당 폐지가 오히려 옳아 보인다 대답한다. 주휴수당 폐지되면 월수입에서 30만원 넘게 까인다 그래도 그러는 것이 공정하다는데 할 말은 없다. 문제는 나름 공기업이다 보니 정부정책에 의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는 중이라는 것.

 

두 가지 방안이 나왔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지금보다 더 줄일 것인가. 나야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게 더 좋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고 하면 수입이 줄어드니 꽤 곤란해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렇게 되면 기대한 수입을 얻지 못하니 그만두어야 할 지 모른다는 사람마저 나온다. 그러니까 뭔 소리까지 나오냐면 그렇게라도 사람을 줄이는 게 옳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결국 노조와의 협상 결과 나온 결론은 모두가 짐작한 그대로다.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 두고 가능한 인원을 더 줄여서 인건비를 아껴보자. 고용유연화를 지지하던 2찍 2030들의 주장을 비웃으며 하던 말들이 실제 현실이 된 것이다.

 

사실 정권이 바뀌기 전이었다면 그 친구도 일찌감치 무기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을 터였다. 정권 바뀌기 전에는 어지간하면 무기직으로 전환해주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때 일찌감치 무기직 된 사람들은 이번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정권 바뀌면서 회사의 정책도 바뀌어 어지간하면 무기직 전환을 안해주게 되었고 덕분에 인력감축을 위한 재계약중단  통보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대통령이 여전히 반중반북을 외치고 여가부도 폐지할 수 있다 말하는데 그 친구는 지금도 윤석열을 지지할까, 아니면 다른 정당을 선택하려 할까? 아니 지지여부를 떠나 아직도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 주휴수당과 중대재해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참 속편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자기 월급 깎이고 일하는 시간 늘어나고 해고의 위협에 항상 시달리면서도 여가부만 폐지하면 다 좋다는 것 아닌가. 당장 내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지더라도 중국과 북한에만 적대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아닌가. 이런 지지자가 있다면 정치하기도 그만큼 편해질 것이다. 나야 워낙 바라는 게 많아서.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재계약중단 대상이 되었더라도 그다지 동정하거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직장이야 많고 지금 정부 하는 것 보면서 집에 들어가면 만족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 부럽다. 세상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말 좋겠다.

중국 역사에서 역적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인물들로 망탁조의가 있었다.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과 헌제를 옹립하고 패악을 저지르며 후한의 체계를 무너뜨린 동탁, 그리고 후한의 명맥을 끊은 조조와 그 조조가 세운 조위의 명운을 끊은 사마의다. 그러면 이들 가운데 누가 후대에 가장 많은 욕을 들었는가? 다름아닌 조조다. 특히 민간에서의 조조에 대한 증오는 매우 뿌리깊어서 삼국지 연극에서 조조 배역을 맡았던 배우가 관객들에게 맞아 죽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하긴 당대에도 조조가 싫다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신야의 백성 10만 명이 유비를 따라나서기도 했었다.

 

그러면 어째서 조조는 다른 역적들도 많은데, 어쩌면 그들이 저지른 패악과 악행이 더 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후대에 갈수록 더 욕을 들어먹은 것일까? 사실 조위가 멸망하고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그를 존중하는 분위기도 아주 없지는 않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 조위에서 서진이 나왔고, 동진으로부터 남조가 이어졌었다. 남조의 정통은 그리고 이후 북조로도 이어진다. 그 시기 조조는 조위를 사실상 건국한 무제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민간이나 재야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그 가장 큰 이유, 바로 서주에서 조조의 명령에 의해 저질러진 대학살 때문이었다. 개나 닭까지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여 죽은 이들의 시신으로 아예 강물이 막힐 정도였다 하니 그때 조조가 저지른 학살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이냐면 최소한 왕망도 왕조를 교체하고 많은 실정과 부정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수 만, 아니 수 십만에 이를지 모르는 백성을 무참히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동탁 역시 낙양에 불을 지르고 강제로 백성들을 이주시키며 약탈과 학살을 일삼았어도 그 규모가 이렇게 한 지역 전체를 씨몰살시킬 정도는 아니었었다. 사마의야 정권을 틀어쥐는 과정에서 정적들을 아예 씨몰살시키기는 했어도 백성들까지 학살한 기록은 없다. 오죽하면 그 사마의의 후손들이 세운 서진에서 역사서를 편찬했던 진수마저도 그나마 가장 순화한 표현으로 잔륙이라 기록하고 있었을 정도다. 한 마디로 잔학하게 도륙했다. 어떤 명분도 없는 단순한 인간에 대한 도살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으로 인해 조조는 자기 대에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야망을 접어야 했었다.

 

그 학살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사실상 이 사건 하나 때문에 한 지역의 군벌조차 되지 못하는 유비가 조조에 대항할 수 있는 전국구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바로 직전 황건적 잔당들에게 포위되어 있던 북해의 공융을 구하며 그 이름을 알린 바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역시 조조에 의해 대규모학살이 벌어지던 서주를 직접 구원하러 가서 실제 군을 이끌고 맞서 싸우며 이기지는 못했지만 일단 저지를 했던 점이 당시 인사들에게 더 크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당시의 누구도 서주를 구원할 생각을 못했는데 고작 평원의 승에 지나지 않았던 유비가 얼마 안되는 군사를 이끌고 공융에 의해 서주까지 구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비는 근거지 하나 없이 한 줌도 안되는 세력만으로도 전국의 유력자를 상대로 대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신야의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조조를 피해 유비를 따라나섰던 이유였다. 심지어 유비 자신조다 자기는 조조와 반대로 행동했기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말하고 있을 정도였으면 당시 조조의 악행이 천하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놈은 몰라도 조조는 안된다. 그러니 조조를 막을 다른 대안을 찾다. 그야말로 쥐뿔도 없는 유비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그런 조조의 대학살을 그럴 수 있었다며 옹호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긴 이해한다. 아마 그 나이 또래라면 아직 마오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을 무렵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오이즘을 긍정하는 서적이 서점가에 꽂혀 있던 것이 바로 90년대 초반이었다. 중국의 실상에 대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라 마오쩌둥의 공상주의혁명에 대한 환상이 특히 자유진영의 좌파들 사이에 꽤나 광범위하게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의 실패나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주장들이 꽤나 적잖이 나오고 있기도 했었다. 내가 일본만화 '창천항로'를 보면서 마오이즘을 떠올린 것도 그래서다. 만화 '창천항로'의 조조는 의심할 바 없이 마오 그 자체다. 그러므로 조조의 대학살도 조조란 인물이 보여주는 혁명성에 비추어 긍정할 부분이 없잖아 있다. 아니 그것을 잘했다 여길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가? 그런 식이라면 한국전쟁으로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봉건주의의 잔재가 사실상 사라지다시피 했으니 김일성에게도 신분제와 봉건적 질서의 타파에 큰 공이 있다 인정해주어도 되지 않겠는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국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지금 대놓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 유대인 하는 꼬라지를 보니 히틀러의 학살이 정당했다. 감정적으로 그리 말할 수는 있어도 그를 공식화하는 사람은 없다.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지금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고 있는 학살이 히틀러의 그것에 비해 전혀 못하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학살에 대해 그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비유해 쓰는 것이지 학살 자체를 정당화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 터다. 그런데 조조가 서주에서 그저 자기 아버지 죽었다고 분풀이로 저지른 학살에 대해 뭔 이유들이 그리 많은가? 

 

내가 교수직함을 가지고 있는 유튜버 임용한의 이름을 될 수 있으면 피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가진 상식으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을, 그것도 위정자가 단지 자신의 분풀이로 저지른 것을 옹호하는 사람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 학살을 저지른 놈도 미친 놈이지만 그런 학살을 옹호하는 인간도 정상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어쩌면 조조보다 크게 뒤지지 않을 학살자인 이승만을 긍정하는 놈들을 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전쟁중인데 적인 공산군과 싸우는 것보다 오히려 후방의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더 열심이었던 것이 바로 이승만이었다. 그리고 한 순간의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려 수 년 간 거의 습관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배제를 직접 지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학살된 사람 가운데 공산주의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던가? 한 사람의 공산주의자를 죽이기 위해 수 백 수 천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 행동인가? 이승만의 학살에 대해 알고 싶으면 자기 사는 동네 이름 치고 학살 치면 된다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이승만을 긍정도 아니고 추앙을 한다?

 

건국전쟁을 보고 역사를 제대로 알았다며 이승만을 찬양하는 놈들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를 가지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도저히 저 새끼들을 사람으로 두고 볼 수 없다. 내가 이영애를 좋아하고 가수로서 나얼도 좋아했지만 둘 모두 안중에서 치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승만이 모두 못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한 것이 있어도 국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자국민을 이념을 이유로 학살했다는 사실은, 심지어 그 숫자가 교전으로 죽은 군인의 그것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그렇게 공산주의가 위협적이어서 배제해야 했다면 재판을 통해 사실여부를 가려 법에 의해 처리했어도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한 나라의 국가원수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태도이고 실제로 지워진 책임이다.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아무튼 벌써 천 수 백 년이 지난 과거의 학살을 옹호하는 인간도 짜증나는 상황에 바로 우리 부모님 세대에 저질러진 학살을 오히려 찬양하는 놈들마저 있다는 사실이 그저 어이없을 뿐이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대학살을 찬양하는 네오나치 놈들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까? 아마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입에 담는 유대인들을 보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진짜 개좆으로 안다. 하긴 그러니까 채상병 사건도 그리 묻히는 것일 게고, 세월호와 이태원의 참사도 우습게 넘어가는 것일 게다. 2찍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 새끼들의 뇌는 과연 사람의 뇌인가? 혹시나 똥구더기가 기생해 사는 것은 아닌가?

 

요즘 좋은 일도 없는데 별 게 다 사람 짜증나게 한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저런 놈들 저따위 소리 마음대로 떠들라고 독립운동하고 민주화운동한 것은 아닐 텐데도. 오래전 개신교가 있어서 이 땅에 진보도 가능했었다는 아마도 2찍일 진보의 항변이 새삼 떠오르려 한다. 그 개신교가 진정 찬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긴 그런 현실에 침묵하는 대다수 2찍 진보들의 사고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 진짜 극좌이고 극우일지는 모르지만. 화딱지나는 요즘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원래 2찍 진보들이 국민의힘을 진짜 지지해서 그들에게 유리할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민의힘과 2찍 진보들은 애초부터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반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모든 정책에서 2찍 진보와 국민의힘은 충돌한다. 아, 단 하나 일본 관련만 빼고. 2찍 진보들이 어째서 보수언론과 함께 정의연때리이게 동참했었는가 떠올려 보면 된다. 일본이 소부장을 무기로 경제보복에 나섰을 때도 2찍 진보들은 우리 정부를 욕했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았었다. 어쩌면 이 하나가 이 서로 다른 둘의 가장 큰 접점일지도.

 

아무튼 그럼에도 어째서 선거 때는 물론 평소에도 2찍 진보들은 국민의힘과, 그리고 이전에는 그 뿌리인 정당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왔는가. 민주당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민주당이 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이후 2찍 진보들은 민주진영의 힘이 너무 강해졌다 싶으면 보수정당과 손을 잡고 그를 누르는데 모든 힘을 쏟았었다. 그를 위해서는 진보들이 추구하던 가치마저 아무렇지 않게 포기했었다. 국민의힘을 진정한 노동존중의 정당이라 찬양하며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인상에 찬성했던 자신들의 행적을 반성했던 과거의 행보들을 보라. 다른 정당도 아니고 국민의힘을, 그것도 정의당 대표가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찬양하고 있었다. 혐오정서에 편승하는 이준석을 본받으라며 점잖게 충고하더니 민주당의 주지지층인 4050 남성들을 이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며 세대포위론에 동참하기도 했었다. 어째서?

 

이번 정부 들어서도 보라. 최저임금 폐지를 주장해도, 주휴수당폐지를 주장해도, 주 69시간 노동을 주장해도, 쉬운 해고를 주장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키려 해도 정작 2찍 진보들의 주 공격대상은 어디까지나 민주당이었다. 2찍 진보들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반진보적인 행보에 한 마디라도 비판이란 걸 하는 놈들은 거의 보지 못했었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그리 탈원전을 주장하더니만 문재인 정부가 한다고 수명이 다한 원자력발전소를 정지한 것이 비리라며 현정부의 탈재생에너지정책에는 한 마디 비판도 못하고 있다. 김학의의 인권은 그렇게 생각해주던 2찍 진보들이 현정부의 정치적 수사에는 손을 거들어주느라 바쁘다. 민주노총을 간첩몰이하고 간부를 죽게 만들었어도 무엇보다 이재명의 공천이 더 문제라는 것이 한겨레인 것이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에는 언론탄압이라며 지랄하던 새끼들이 지금 정부 들어서는 조용한 것을 보라. 왜 그러겠는가? 일단 민주당을 무너뜨리려면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사라지면 진보의 자리가 생긴다.

 

그러면 평소 그런 2찍 진보들이 대놓고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고 다니겠는가. 오죽하면 아직도 한겨레와 경향을 친민주당 언론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겠는가. 심지어 MBC나 JTBC까지도 민주당에 편향된 언론이라 여기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평소에는 신념대로 국민의힘을 공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민주당이 아닌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행동패턴이었다. 단지 국민의힘에 비판적일 뿐 딱히 민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렇더라도 민주당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도 있다. 그러면 2찍 진보들의 평소 지지율은 선거 때 자기네 진보정당이 아니면 어디로 향하겠는가? 다시 말해 비슷하게 특정 정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지지는 누구에게로 향할 것인가? 반드시 지지해서만 투표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과거에도 그랬었다. 문재인 이전 민주당의 지지율이 20%도 넘지 못했을 때도 선거때만 되면 거의 평소에도 4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는 보수정당들과 비슷하게 나오고는 했었다. 평소 지지율만 보면 도저히 상대도 안될 것 같은데 선거 때만 되면 저 새끼들 다수당은 막아야 한다고 투표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그리 많았던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런 유권자들이 아예 투표장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던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 새끼들은 얼마나 개자식들이었을지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할 정도다. 2007년과 2008년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괜히 만방으로 깨진 게 아니다. 그 주역들의 후예까 지금 말하는 수박들인 것이고. 민주당 하는 꼬라지 보면 열받아 도저히 지지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선거 때만 되면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지지하게 된다. 물론 나는 그조차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다른 진보정당을 지지했지만. 그래서 지금 유권자들에게 다른 대안이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보면 또 하나 안심이 된다는 것이 한겨레가 민주당 지지율 떨어진다며 지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얘들이 꽤나 급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짜 민주당이 위기라면 저들은 민주당이 정신차리도록 질타하기보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조롱하며 짓밟으려 했을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이 민주당이 잘되라고 생산적인 비판을 하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논조를 보면 지금대로 하면 선거에 진다며 바꾸라고 조언하는 듯한 모습이란 것이다. 민주당을 위해서? 설마...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그렇게 민주당에 불리한 것일까?

 

다시 말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갑자기 미쳐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납치해 위안소를 꾸린다 해도 차라리 조중동은 그들을 욕하더라도 한겨레 경향은 그러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민주당이 존재하는 한,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저들은 절대 현정부를 진심으로 비판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간첩몰이당하는데도 조용하던 것을 보라. 대놓고 언론을 탄압하고 장악하려 하고 있는데 2찍 진보들이 무어라 비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시민들의 정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겨레와 경향이 저리 지랄하는 것일 테고. 모든 윤석열 정부의 문제에도 민주당의 공천이 더 큰 문제다. 2찍 진보라는 이유다. 별 것 없다.

이제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겠다. 아주 오래전 쓴 글이 있다. 아마 2017년 대선 전이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친노친문이, 정확히 노무현과 문재인이 민주진보진영에서 왕따처럼 취급되는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노무현과 문재인이 어째서 민주진보진영은 물론 민주당 안에서도 소수의 소외된 비주류로 여겨지는가 그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로도 여러차례 다른 주제를 쓸 때마다 반복해 온 내용이므로 굳이 읽지 않았어도 익숙할 것이다. 어째서 2찍 진보들은 차라리 윤석열과 한동훈을 지지하더라도 민주당의 승리를 바라지 않으며,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인 MBC나 뉴스타파조차 지금 이재명에 대해 적대적인가 하는 것도 그 연장에 있을 것이다.

 

흔히 노무현의 측근이라고 친노라고들 말하지만 실제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노무현의 주위에서 그를 도왔던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노무현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한 시기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던 탓에 주위에 사람이 있어도 그들을 챙겨줄만한 능력 자체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무현이라는 개인이 좋다고 어지간한 의지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되지 않는데 노무현을 따라다니며 그를 돕는다는 자체가 어쩔 수 없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던 탓이다. 그것은 김영삼이나 김대중도 다르지 않아서 나중에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왔던 가족과 측근들을 강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탓에 여러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당선되기 전까지 친노라 불리웠던 인사들 가운데 이처럼 노무현이 어려웠던 시절부터 함께했던 진짜 친노는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니까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필요해서 청와대로 불러다 쓴 인사들까지 죄다 친노로 묶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치인 개인으로서 노무현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이미 대통령이 되어 합당한 대가를 보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를 바라고 모여든 인사들까지 죄다 친노가 되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원래 오다가의 가신이었던 시바타와 이케다, 사쿠마 등과 오다 노부나가가 이마가와와 사이토까지 이기고 유력 다이묘로 성장하고 난 뒤 합류한 다키가와와 아케치 등을 같이 취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물며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사실상 전국을 제패하며 간바쿠의 자리에 오른 토요토미에게 허리를 숙이고 휘하로 들어온 인사들까지 그의 가신이라 부르고 있는 꼴인 것이다. 과연 그들이 따른 것은 '대통령' 노무현이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었을까. 

 

더구나 문재인은 그런 노무현에 의해 발탁되어 자신들과 같이 청와대에서 근무했을 뿐인 또다른 친노였던 것이다. 역시 비유하자면 오다 노부나가 사후 전국의 패권을 거머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바라보는 시바타나 도쿠가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노무현을 대신할 구심점이 필요했고, 자신들이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매개로써 친노의 상징적인 인물로 그의 존재가 필요했을 뿐 처음부터 문재인의 사람이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다. 원래 정치를 했던 것도 아니었고, 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자기 세력을 따로 만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추대되어 정치에 입문한 경우였고, 따라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뒤에도 자기 사람이라고는 없이 당시 민주당 안에서도 꽤나 소외된 위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나마 문재인에게 자기 사람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가 되면서, 그리고 지금 문재인의 사람이라 불리는 대부분은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여러 경로를 통해 발탁된 이들인 것이다. 역시 묻게 된다. 그들이 따른 것은 인간 문재인이었을까? 아니면 대통령 문재인이었을까?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임종석일 것이다. 아니 노영민이나 윤영찬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과연 처음부터 정치인 문재인을 따랐던 그의 측근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기억하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문재인이 처음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가 되었을 때 탕평한다고 여기저기 다른 계파에서 사람 데려다가 당직을 임명하고 있었다. 이때 발탁된 이들도 원래 계파와 상관없이 친문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문재인과 처음부터 같이 했던 측근들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었다. 비서실장인 임종석부터 민주당의 주요 계파인 86그룹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발탁한 것이었다. 이낙연도 그래서 호남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총리가 되었던 것이었고, 김현미 또한 여성이라고 국토부장관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윤영찬이나 노영민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 그렇다면 원래 문재인의 사람도 아니었는데 대통령이 되었다고 청와대로 불려가서 그들은 온전히 문재인의 사람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조국사태 초기에 문재인이 윤석열의 반항을 진압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당장은 지지율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대통령으로서 가진 바 권한을 제대로 행사했다면 바로 검찰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자신과 가족이 당한 것을 생각하면 원망을 크게 가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조국이 정작 문재인 대통령에게 매우 깍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후로도 많은 결단의 국면에서 문재인은 평소 자신이 가졌던 신념과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임종석은 전대협의장 출신으로 말하자면 운동권에서도 엘리트였다. 문재인에 의해 청와대로 불려갔던 많은 인사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이 되기 전 문재인보다 자기 분야에서 더 알아주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문재인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들어 충실히 이행하려 했을 것인가. 그러니까 장하성이 단지 김동연 때문에만 청와대에서 밀려났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말은 친문인데 정작 문재인 전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사진 한 번 찍지 않는 인사들을 보면서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 놈들끼리 뭉쳐서 임종석 하나 국회의원 만들어 보겠다고 당도 지지자도 상관없이 몽니를 부리는 모습에서 당시 청와대의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다. 청와대에서는 달랐겠는가 하는 것이다. 당대표도 당헌당규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는 저들이 청와대에서 대통령에 대해서는 달랐겠는가.

 

문재인이라는 개인의 성품을 보면 저절로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아무리 자기 의지가 강해도 주위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면 다수의 의사를 억지로 일방적으로 억누르거나 강제하지는 못한다. 그런 놈들이, 나중에는 이철희 같은 놈들까지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문재인이 대통령이라고 정치적으로 결단할 부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인가. 괜히 임종석에게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 대통령의 사람도 아니었고, 심지어 대통령을 비주류로 소외시키던 오히려 이전의 주류가 모여 있던 것이었다. 어째서 2찍 진보들마저 저들의 편에서 저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가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원래 문재인에 호의적이었다면 친문이어서 그렇다 하겠지만 한겨레든 경향이든 처음부터 문재인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노무현과 문재인에 적대적이던 놈들이 친문이라고 편을 든다는 자체가 부조리고 모순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고민정과 임종석 등이 보이는 모습이 당시 청와대의 풍경이었다.

 

그나마 문재인의 사람으로 출발했던 고민정이 이제와서는 그들만의 리그에 더 충실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이를테면 포섭된 것이다. 주류 엘리트집단에. 잘난 놈들의 모임에. 그러면서 그들과 자신을 동질화시킨다. 아마 지금 고민정의 머릿속에 문재인이란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자신들보다 저 아래 한참 바닥에 위치해 있을 지 모른다. 이재명은 그보다 더 아래가. 그런 우월감에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진다. 2찍 진보들이 윤석열과 한동훈에 미쳐 열광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문재인 시절 청와대가 그따위였던 것이었다. 더구나 총리까지 그런 놈들이었으니 정부가 제대로 돌아갔을 리 없다. 그런데 이제 문재인에 적대적이던 놈들까지 친문의 편을 들고 있다. 조선일보가 임종석의 컷오프를 안타까워한다. 합리적인 의심이 아닐까. 우습게 여겨지는 이유다.

2020년 총선 전에도 경향일보는 주장했었다. 민주당만 빼고. 심상정이 문재인 탄핵을 언급한 것이 바로 그 뒤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민주당만 막으면 진보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다수당이 되는 것일까?

 

그러고보면 2020년 총선 당시에도 정의당은 오로지 민주당 공격에만 전력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악이다. 민주당이 나쁘다. 어째서? 민주당이니까. 다른 것 없다. 문재인과 민주당이기에 김학의 출국금지도 범죄였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원자력발전소를 설계시한이 지나 가동중단하는 것도 문제였다.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대체휴무도, 중대재해법도, 코로나 방역까지 다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노동존중의 정당이었다. 그래서 2022년 대선에서도 오로지 이재명만 막고자 했던 것 아니던가.

 

국민의힘이 승리할 것이다. 민주당이 패배할 것이다. 예측이라기보다는 저주다. 그동안 노조들을 간첩몰이하고, 노동현장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무능과 비위를 보여주었어도 역시나 서울대 나온 검사들 쪽이 민주당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주 120시간을 주장하고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폐지를 주장하고, 복지정책의 약화와 환경정책의 퇴행에도 차라리 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이 낫다. 그것이 진보다. 내가 오래전부터 진보 앞에 자칭을 붙이고 지금은 2찍을 붙이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저놈들의 진보란 그냥 민주당만 빼고인 진보다.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기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그러므로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진보의 가치에 부합한다. 거기에 그 잘난 2찍 진보들의 학벌주의가 더해진다. 서울대지 않은가. 그것도 사법시험까지 합격한 엘리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주 120시간이 민주당이 실제 시행한 주 52시간보다 옳은 것이다. 최저임금폐지와 주휴수당 폐지, 중대재해법 폐지도 옳은 것이다. 민주노총은 간첩이고 노조따위 필요없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역사발전론에도 부합한다. 민족이란 허구이니 일본에 나라 팔아먹어도 민족을 판 것이 아니다. 

 

아무튼 언제나 하던 짓거리 또 반복하는데 이제 별 감흥도 없다. 그저 괜히 한겨레에 얼굴 비추면서 물타기할 발언이나 더해주는 민주당 인사들이 한심하고 그런 걸 또 좋아라 보고 있는 지지자들이 병신같을 뿐. 그냥 똥파리들일까? 민주당 지지자가 한겨레를 읽는다니 웃기지 않은가. 경향일보나 한겨레일보나. 정의당이나 녹색당이나. 홍세화나 김규항이나 진중권이나. 그것이 그들이 주장해 온 진보의 실체다. 웃기지도 않는다.

누구를 공천해라, 누구를 공천하지 마라, 이런 걸 흔히 사천이라 말한다. 예전 김영삼이나 김대중 같은 이른바 제왕적 총재들이 당을 좌지우지할 때 하던 짓거리들이다. 아니 정확히 제왕적 총재라기보다는 그냥 김영삼당, 김대중당에 가까웠다. 당대표가 곧 당의 정체성이고, 당대표의 선택에 의해 당의 행보가 결정되었으니까. 당연히 공천 역시 당대표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다. 경선? 그게 뭔데?

 

유시민이 개혁신당 만들면서 - 이때도 개혁신당이었던 것 같네 - 가장 앞세웠던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에 의한 상향식 민주주의 정당이었다. 당비를 내는 당원들의 결정에 따라 당의 정책과 운영과 행보를 달리한다는 것인데, 당연히 여기에는 당원들에 의한 경선에 따른 상향식 공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후 민주당에서 갈라져나온 열린우리당과 합당하고 나서도 상향식 민주주의 정당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간신소리까지 들어가며 오만 삽질을 했었다. 그래서 그때 나온 말이 바로 당권파라는 것이었다. 당권을 쥐고 좌지우지하는 놈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제 민주당에서 이 말 쓰는 놈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괜히 문재인이 민주당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게 아니란 뜻이다.

 

열린민주당에서도 처음 상향식 민주주의에 동의했던 정동영 등이 김한길 부류와 손을 잡으면서 그 본질이 훼손되었고, 열린우리당이 해체되고 다시 민주당과 합쳐 만들어진 통합민주당에서는 다시 이전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래서 제왕적 총재제를 대신해서 나타난 것이 이른바 계파정치라는 것이었다. 공천을 하면서 당의 유력인사들이 서로 합의해서 계파에 따라 공천을 일방적으로 나눠 하던 시절이었다. 어디는 누구 계파에게 주고, 그래서 전체 의석 가운데 누구 계파에 몇 석을 주고, 그렇게 얼마나 되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정치적인 위상까지 갈렸다. 그렇다보니 지지자의 바람과 상관없는 인사가 계파 보스의 의중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천되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그래서 지지자임에도 정작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생겨났다. 선거에는 이겨야 하는데 인물이 개떡이라 도저히 투표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였다. 그것을 바꾼 것이 바로 문재인 대표체제 아래에서의 개혁이었던 것이고.

 

그때 안철수며 박지원이며 우상호며 오만 놈들이 문재인의 혁신에 반대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었다. 자기 이름으로 한 자리 내주어야 하는데 시스템공천을 당헌당규에 명문화함으로써 더이상 그럴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때 정세균의 이미지가 좋았던 것은 정작 최대계파를 이끌던 수장이었음에도 자기 계파가 와해되는 상황에조차 당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었다. 뒤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럼에도 철저히 중도를 지키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이미지 그 자체였었다. 그리고 당시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견인했던 시스템공천은 2020년 총선에 이르러 더욱 확고해지며 민주당의 압승까지 이끌어내었다. 철저히 지역구 지지자와 주민들의 니즈에 맞는 인물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걸러 공천함으로써 승리의 가능성을 더욱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래도 2016년에는 비대위장이었던 김종인의 입김이 적잖이 영향을 끼쳤었지만 2020년에 이르면 당대표였던 이해찬조차 공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그리고 2024년이 되었다.

 

비명학살이라면 가장 먼저 컷오프되어야 할 인사가 고민정일 것이다. 박용진도 하위 20%가 아니라 그냥 컷오프되어야 한다. 반면 이재명과 사이가 좋았던 이수진은 어찌되었거나 살아남아 경선이라도 치를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이수진이 괜히 이재명에게 저주를 퍼부어대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자기는 살려줄 줄 알았는데 무심하게 내쳤으니 원망을 가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그래서 이재명이 지금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낙연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당대표로써 공천관리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겠지만 최소한 지금 이재명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설사 이재명이 공천관리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더라도 과연 누구를 공천하고 누구는 말아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민주주의에 있어 타당한 행동일 것인가.

 

임종석을 공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대표도 아니고 최고위원회도 아니고 공천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은 공천관리위원회인 것이다. 그것을 누가 공천해라 마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공천하고 싶은 사람을 공천해야겠다고 자기에게 주어진 당무까지 거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행동일 것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괜히 고민정이라면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공적인 책임을 개인적인 감정을 위해 휘두르려 한다. 의견제시까지는 할 수 있어도 그를 위해 압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되는데 지금 그러고 있는 것이다. 당대표도 아니고 뭐하는 짓거리인가.

 

언론이 민주당 내부의 공천갈등을 보도하려 한다면 바로 이런 부분들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공천받지 못했다고 자기가 속했던 당을 저주하고 당대표를 비난하는 행동들이 과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타당한 것인가. 자기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당과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내는 행동들이 과연 정당한 것이가. 하물며 자기랑 가까운 사람이 공천받지 못했다고 당무까지 거부하는 것을 옹호할 필요가 있는가. 언론만 보는 사람이야 무조건 이재명의 잘못이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그래서 2찍 진보라 하는 것이다.

 

특정한 유력 정치인들끼리 합의해서 자기 사람을 일방적으로 공천하는 계파정치는 민주적이지 못하다 해서 상향식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와 가까운대로 누구를 공천하고 누구는 공천하지 말 것을 일방적으로 공천하는 것이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을 막고자 시스템공천이라는 것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언론만 보면 친명이라서 안되고 비명이라서 되어야 하는 과거 계파정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 같다. 그것이 현재의 가치에 과연 부합하는 것인가. 웃기는 것이다. 주장하는 년놈들이나 그걸 감싸주는 언창들이나. 공천은 끝나고 여론조사를 봐야 한다는 이유다. 중도층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런 내부의 혼란일 테니. 하여튼 고민정 이건 가장 먼저 컷오프했어야 하는데. 공사 구분도 못하는 주제가 최고위원이기까지 하다. 정말 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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