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이상하기는 했다. 갑자기 친노가 많아지더라. 노무현 정부 말기 노빠들도 분열하고 있었거든. 나야 일찌감치 떨어져나왔으니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데 정동영을 지지하는 실용파와 유시민을 지지하는 개혁파가 나뉘어 서로 싸우다가 사이트도 따로 만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당시 정동영의 실용주의 노선을 지지하던 놈들은 이후 노무현을 쫓아내고 열린우리당을 깨고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서 대통령후보에 선출되는 모든 과정에서도 정동영을 지지했었다. 그놈들은 과연 그때도 노빠라 부를 수 있었을까?

 

한때 노무현을 지지했다고 마냥 노빠라 하기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그 노선이 서로 갈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처럼 아예 지지자에서 떨어져나온 사람도 있었고, 열린우리당 내부의 노선싸움에 괜히 끼어들어 선택의 결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경우도 또한 적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양문석의 노무현에 대한 발언에 그리 분노하던 인간들이 정작 김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하네. 심지어 문재인을 지키겠다던 똥파리들마저.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 열린우리당 당시를 기억한다면 당권파들이 하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는 이낙연 패거리의 행태를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도 지지했다면 원래 그런 놈들이었다는 뜻이다.

 

김진의 발언 덕분에 더 명확해졌다. 저 새끼들은 그냥 원래노빠들이다. 이를테면 여섯 살 때까지 신동이었고, 초등학교 때까지 우등생이었고 중학교 때까지는 모범생이었던 모지리 잡범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기때는 이렇게 예쁘고 착했는데 자라고 나서는 소매치기에 강도에 절도까지 오만 잡범죄자 저지르고 나니는 하류인생들이다. 그러니까 20년 전에는 그들도 그랬다는 뜻일 게다.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놈들 포함. 그러니까 그렇게 노빠가 지금까지 많이 남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임기말 지지율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아무튼 당연히 그럴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예측한 그대로인 상황에 그저 웃을 뿐이다. 김활란에 대해서는 김준혁이 사과했는데 김진의 발언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개인 SNS에조차 말하는 놈이 없다. 원래 침묵하던 놈들이었느냐면 양문석 때는 그리 시끄럽던 새끼들이란 것이다. 세상에 노빠가 이렇게 많은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수박들인 것일 테고. 버러지 새끼들이다.

하긴 2찍들 자신도 그러더라. 이건 괜히 논란이 확산되어봐야 사실관계에서 불리한 이슈인데 어째서 국민의힘은 이것을 물고 네거티브를 하려 하는가. 다른 중요한 이슈도 많은데 굳이 이것을 들고 나와 키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르셀로나 진격을 앞두고 자신감이 넘쳤던 프랑코와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보이는 4열 말고도 5열이 더 있다. 이른바 프락치, 간첩을 일컫는 제 5열의 어원이다. 안에서 누가 호응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로 돌아가 보자. 당시에도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먼저 이재명 당시 후보의 여성주의 채널 출연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그 타이밍에 맞춰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도 내놓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민주당 내부의 단톡방에서 김남국이 했던 말을 어떻게 국민의힘에서 정확하게 알고는 그를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을 수 있었는가 생각하면 너무 쉬운 것이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박지현은 또 어째서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발언만 오히려 반복하고 있었던 것일까? 사과도 한 두 번이지 혹시라도 지지율 올라서 선거에 좋은 영향을 줄까봐 사과만 몇 번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민주당을 혐오하고 지지자를 경멸하면서 여성주의자들이 굳이 민주당에 당직을 가지고 남아 있는 이유인 것이다. 말하자면 기생이다. 내가 그래서 한명숙을 동정하지 않는다. 바로 대부분 한명숙 때부터 기어들어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한 자리 하기 위해서 민주당이라는 정당에 빌붙는다. 김활란이 일본제국주의에 빌붙은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여성을 위해서 천황에 충성하고 일본제국주의 전쟁을 도왔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제자들을 정신대로 내보냈을 뿐인데 그것이 뭐가 문제인가? 여성을 위해서라면 자기 제자였던 이화여대 출신 여성들을 동원해서 성접대 업소를 운영하는 것도 정당한 것이다. 더불어 그렇기 때문이 그런 여성주의자들과 결탁했던 이승만과 박정희의 위안소와 기지촌에 대해서는 또 철저히 침묵하며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는 국가도 민족도 이념도 양심도 없다. 예전 가톨릭 신앙을 위해 유럽 나라들에게 조선을 침략해달라 편지를 보냈던 사건과 유사하다. 그러면 그 여성이란 어떤 여성인가?

 

김활란부터 박마리아, 그리고 이화여대와 YWCA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승만과 군사독재시절 여성단체의 고위인사 하면 대부분 유력자의 마누라이거나 자식이거나 혹은 며느리였다. 그래도 남자들이 하는 일인데 정부 요직이나 공기업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그나마 한 자리 챙겨주려 만든 것들이 그런 감투들이었었다. 그러면 한국 여성주의의 주류는 누구이고 어디일 것인가? 의외로 펨코 애들이 제대로 봤더만. 여성이기에 여성을 위해 일제와 군사독재에 협력하고 충성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립도 민주화도 상관없이 자신들에게는 여성만이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정의당과 한겨레가 4050 남성들을 악마화하며 민주화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제부터 자신들에게는 여성만이 있을 뿐이고 민주화의 역사는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째서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인 정작 상대정당의 여성이슈들에 대해서는 저토록 철저히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 마디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이 호응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고, 당연히 쓸데없이 여성주의 진영에서의 이름값이나 감투에 민감한 구태 정치인들이 그런 선동에 놀아난 것이다. 그들 소수의 여성주의 인사들의 의견이 여성 전반의 의견이다. 그러니까 이재명을 지지하며 모인 20대 여성들을 폄하하면서 여성을 이야기하는 모순도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이 호응해서 사과하도록 만들면 그를 빌미로 문제를 더 키워보자. 더불어 여성주의자들의 숙원이었던 여성주의자들의 친일 친독재 전력에 대한 세탁도 이번 기회에 시도해 본다. 더이상 김활란의 친일과 친독재는 비판조차 하지 못한다. 이화여대가 또 이화여대한 모양이더만.

 

참고로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당시 민주화에 가장 소극적이던 대학이 바로 이화여대였었다. 4.19에서는 아마 거의 마지막까지 시위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80년대까지도 다른 대학에서는 머리통 깨져가며 시위하고 나서는데 이화여대에서는 청년장교들과의 댄스파티도 정기적으로 열고 했을 것이다. 다른 대학들의 앞 상가에는 이념서적을 몰래몰래 파는 서점들이 넘쳐나는데 이화여대에만 고급 옷과 악세사리, 화장품 가게들만 발에 채이더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활란을 욕하는 것은 이화여대를 욕하는 것이다. 김활란 동상 세우고, 김활란상을 만들어 수여하는 대학답다. 그 뿌리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어르신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근본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나서 어떻게 자랐는가가 그리 중요한 것이다. 한국 여성주의는 어디서 나서 어떻게 자라 왔는가. 이화여대는 원래 어떤 대학이었고 어떤 역사를 거쳐왔었는가. 이마저도 모욕이라 그러겠지. 일제강점기가 있어서 여성주의도 가능했다던 어느 여성주의자의 말을 잊지 않는다. 일제강점기가 없었으면 한국에 여성주의가 있었을 것인가. 민주당에서 다시 한 번 여성주의자들을 도려내야 하는 이유다. 결심했다. 만에 하나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민주당 출신 여성주의 후보에 표를 주지 않겠다. 저놈들은 적이다. 저놈들에게 한 표 주는 것은 그저 국민의힘에 한 표 더해주는 것이다. 새삼 확인케 하는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오래되었다. 이화여대에서 김활란의 이름으로 상을 만들어 수여하기로 했을 때 반발이 거셌었다. 딱 지금 국민의힘과 2찍 진보 여성주의자들이 문제삼는 바로 그 부분 때문이었었다. 일제강점기 텐노를 찬양하고 제자들을 근로정신대로 등떠밀어 내보냈으며 나아가 해방 이후 미군을 상대로 한 성접대업소를 직접 운영했었다. 이런 여자의 이름으로 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그리고 바로 그때 여성주의자들이 내세운 논리가 그것이었었다. 민족과 여성은 별개다. 국가와 여성은 별개다. 여성은 여성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만 보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차라리 일본군위안부 모집과 운영과 이용 등에 실제 관여한 조선인 남성들이 문제이지 일본의 국가적 민족적인 죄악으로 여기는 것은 부당하다. 정의연의 활동은 그같은 여성의 피해를 민족의 문제로 왜곡하는 짓거리인 것이다. 같은 이유로 여성으로서 일제강점기 여성을 위한 활동을 위해서는 그런 정도는 당연한 것이다. 낙랑클럽도 그런 연장에서 여성주의자들은 인정한다. 여성을 위해서라면 위안부도 성접대도 모두 긍정할 수 있다. 그래서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여성주의는 주로 유력자의 아내나 딸들을 중심으로 철저히 권력과 유착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어떻게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은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의 여성주의 유튜브채널 출연 및 방송시기를 정확하게 알고 대응할 수 있었는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사망했을 당시 그를 공격하는데는 여와 야가 따로 없었다. 보수가 주도하고 진보가 그에 호응하는 모습이었다. 조수진 변호사가 낙마하는 과정에서 심지어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이 국민의힘의 편을 들어 연판장까지 돌리고 있었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여성주의에는 여성만이 있을 뿐 이념도 정당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여성주의를 위한 수단으로서 이념이든 정당이든 선택하는 것이지 결국은 여성은 여성이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성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여성주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주류집단들이고 그들이 속해 있는 곳은 보수진영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를 받아들인 2찍 진보들이 한결같이 보수편향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박민이 kbs 사장이 되고 나서 KBS가 바뀌었느냐면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KBS의 검언유착을 유시민이 폭로했을 당시 여성을 무기로 앞세워 그를 찍어누른 것이 바로 KBS의 생물학적인 여성들이었었다.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까 국민의힘이 왜 하필 이제 와서 김활란을 비판한 김주혁 후보의 발언을 문제삼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째서 KBS까지 나서서 적극 떠들어대고 있는가. 아베의 경제보복 당시에 2찍 진보들이 어째서 문재인 정부부터 물어뜯고 있었는가 그렇게 이해하면 너무 쉽고 간단해지는 것이다. 여성을 위해서는 나라도 팔 수 있고 같은 여성까지 팔 수 있다. 여성주의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 행동하고 나섰던 것이 바로 여성주의자들이었다. 그래서 민주당을 혐오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당연하게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후보까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정권이 바뀌고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 자체가 사라졌는가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토록 전정부에서는 신나서 떠들던 진선미, 유은혜, 권인숙 나부랭이들이 어째서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이토록 조신해진 것인가? 민주당의 여성주의는 어째서 민주당 내부에 대해서만 엄격한가? 바로 거기에 그들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여성주의는 적이다. 최소한 민주당과 지지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집단적 이념으로서의 여성주의란 그렇다는 것이다. 새삼 확인한다. 어째서 김활란이 지금 와서 문제가 되는가. 때가 되었다 여겼을 것이다. 2찍 여성주의의 자기고백이다. 어쩌면 반갑기도 하다.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 지금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보다 그렇게 높다고 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조국사태와 울산지방선거를 빌미로 검찰의 청와대 수사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재난까지 더해지며 심상정이 탄핵을 운운하며 돌아다닐 만큼 민주당에 불리한 판세가 예고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경향일보가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고 신나서 떠들었겠는가. 민주당을 총선에서 멸망시키고 문재인을 탄핵한 뒤 노무현처럼 만들자는 것이 당시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 일반의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결과는 민주당의 단독 180석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그때는 여당인 민주당이 여러 불리한 악재들에도 그같은 압승을 거둘 수 있었는가.

 

아니 질문이 잘못되었다. 당시 민주당이 이긴 건 알겠는데 어떻게 이번 총선에서는 거꾸로 여당인 국민의힘이 개헌선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궁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인가. 더구나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인 이슈만을 받아서 연일 보도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박정희가 오입질하고 김활란이 제자들을 성접대로 내몬 실제 사실조차도 빌미로 삼아 민주당 공격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째서 민주당에 대한 - 정확히 국민의힘에 대한 비토는 여전히 강하기만 한 것인가. 당시 문재인 정부와 지금 윤석열 정부의 차이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일단 표를 주고 나서 비판이라도 하게 되면 듣는 시늉이라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것조차 전혀 없다.

 

여론이 최악을 달리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거대여당조차 무시하고 밀어붙이기로 대부분 현안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아 온 때문인 것이다. 그래도 여론이 안 좋으면 눈치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없이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하는 모습을 그동안 유권자들을 보아 온 것이었다. 여당이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켜도 협의조차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만 그동안 몇 차례였던가. 여론이야 뭐라 반발하든 그동안 자기들 멋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던 놈들을 그러면 유권자들은 어떻게 심판해야 할 것인가. 그러니까 표를 주고 나서 비판하든 반대하든 해서 들어먹을 정부고 여당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만한 기대와 신뢰가 있다면 민주당에 대한 여러 부정적 이슈에 생각이 바뀔 법도 하겠지만 어차피 내가 뭐라든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하려는 놈들이면 결국 선거를 통해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나라가 어려운 상황이니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주고 나중에 따져묻든 하자는 생각이 통했던 2020년과 달리 유권자의 마음이 오로지 정권심판 하나로 내몰리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지금 심판 못하면 저 새끼들 진짜 못 말린다.

 

그런데도 모르는 것이다. 인정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가 저리 발악중인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의 일방주의에 힘을 실어 왔던 조선일보였기에 이제와서 그를 비판하지는 못하고 그저 그동안 해온대로 민주당의 사소한 흠집을 찾아내 떠들어대기에 열심인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만 문제다. 민주당만 잘못이다. 하지만 결국 대중이 바라는 것은 설사 조금 잘못하더라도 비판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정당이지 비판조차 들어먹지 않을 정당은 아닌 것이다. 다시 한 번 민주당 지지한다면서 한겨레 읽는 병신들을 비웃게 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윤석열을 저버리지 못하는 저 새끼들이 진짜 진보라 여기고 읽는 것일까? 지금 이런 상황에조차 민주당만 문제라며 지랄하는 병신새끼들이다.

 

아무튼 그래서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언론의 몰아가기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슈를 터뜨려도 윤석열 정부 심판이라는 유권자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윤석열 정부를 찰지게 패줄 수 있을 것 같은 조국혁신당에게로 보수유권자들의 선택마저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도저히 민주당은 지지하지 못하겠지만 윤석열 정부를 심판할 수 있으면 조국혁신당도 나쁘지 않겠다. 이준석이 망한 이유다. 원래는 이준석이 가져갔어야 할 포지션이었는데 인물의 중량감이나 그동안의 서사가 비교조차 될 수 없도록 무겁고 비장하다. 비극이 영웅을 만든다. 가장 처절한 비극이 신화를 불러낸다. 2찍 진보들이야 입으로만 떠들면 되니 상관없는 이야기일 터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한국 여성주의의 흑역사다. 그보다는 한국 여성주의의 뿌리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어째서 정의당은 그토록 정의연에 적대적이었는가. 정의연 논란 당시 어째서 여성주의를 앞세운 자칭 진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는가. 한국 여성주의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김활란이 바로 자기 제자들을 정신대로 등떠밀어 보냈던 당사자인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되고 나서도 이승만과 손잡고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동원해서 미군 장교를 대상으로 성접대를 했었다. 괜히 이기붕의 마누라 박마리아가 한국여성주의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2찍 새끼들이 얼마나 병신들인가 새삼 깨닫는다. 여성주의자들은 감추고 싶어 한다. 그래서 80년대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에 진실을 알렸을 당시까지도 여성주의자들은 그런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었다. 몰랐을 리 있는가. 말했잖은가. 김활란이 자기 제자들 등떠밀어서 정신대로 보냈다고. 모윤숙이 앞장서서 미군을 상대로 하는 성접대클럽을 운영했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군 하던 것을 그대로 배워서 공산주의자나 그 가족들을 동원해서 위안소를 만들어 운영하던 것이 이른바 동두천 기지촌의 뿌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모른 척 안 그런 척 그냥 넘어가려는데 이것들이 김준혁 까겠다고 그것을 들고 나오네? 이화여대 총장이 제자들 성접대시켰다고 막말했다. 사실인 걸?

 

여기서도 몇 번 썼을 것이다. 내가 왜 한국 여성주의를 기생페미니즘이라 비웃고 격하하는가. 원래 뿌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다지 나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수진 가지고 지랄하던 여성주의자들이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어떠했는가 한 번 살펴보라. 탁현민 가지고는 그 생지랄하던 써글년들이 장예찬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 중이다. 정의연에는 그리 개지랄떨던 여성주의자들이 정작 위안부를 아예 묻어 버리려는 위안부협상에 대해서는 오히려 우호적이었던 것도 떠올려 보라. 저들의 여성주의는 강자에 기생해서 그로부터 얻어내고자 하는 여성주의인 것이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나 지향, 그리고 그를 공유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에 대해 전혀 어떤 공감이나 존중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민주당 이름으로 당직을 맡을 수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에게 그같은 이익들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남성권력자를 찾아서 그에 빌붙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 주류 여성주의자들의 대가리속이다. 아니면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은 박근혜를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지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별 게 다 논란이다. 오히려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화여대와 김활란이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어떤 짓들을 저질러 왔는지. 그 후예들이랄 한국 여성주의가 그같은 역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 왔었는지.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다를 것인지. 여성은 약자니까 특혜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주의는 아마 한국 여성주의 뿐일 것이다. 여성도 남성과 대등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해외의 주류여성주의와 다른 한국 여성주의만의 특징이다. 그같은 특징들이 어디서 비롯되었을 것인가. 여성주의야 말로 일제와 군사독재의 가장 뿌리깊은 잔재일 수 있겠다. 더 떠들어라. 모두가 알게. 잘됐다.

전에도 썼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 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에 요구한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었다. 이후 노무현을 지지하고 문재인을 지지한 민주당 지지층에서 진보정당에 투표하며 기대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무래도 중도적인 입장에서 보수적인 국민들도 신경써야 하는 대통령이나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달리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열린우리당이나 그보다 더 이념적으로 선명한 진보정당들이 보다 왼쪽에서 더욱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갈 동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러면 당시 대통령이나 이후 거대정당 민주당도 보수적이고 중도적인 유권자를 끌어안으면서도 보다 안정적으로 개혁과 진보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다시피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이 가장 왼쪽에 있었고 열린우리당은 그 오른쪽에서 대통령과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사이에서 편하게 꿀만 빨고 있었다. 욕은 대통령이 다 들어 쳐먹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긴 채 아무에게도 욕먹지 않을 좋은 자리만 찾아 다니고 있었다. 딱 이낙연 대표체제의 민주당을 떠올리면 된다. 정동영과 김한길이 당시 하던 짓거리가 그것이었다. 그래놓고는 지지율 떨어졌다고 대통령을 아예 당에서 내쫓고, 정당개혁하겠다며 만든 정당을 자기 손으로 해체해 버렸다. 그때 한 자리 하던 새끼들이 노무현 어쩌고 하는 것 보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괜히 유시민이 있는 당대표한테나 잘하라 그런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진보언론, 진보지식인들 대부분이 하나같이 보수의 눈치를 보며 진보로서 자신을 인정받고자 발버둥치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정작 노무현 정부 당시 진보정당이 정책적으로 연대한 대상은 오히려 한참 오른쪽에 위치한 수구정당 한나라당이었었다. 괜히 상당수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녹색정의당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니다. 사실상 지금 녹색정의당에 남아 있는 지지자들이란 이준석에 대한 80% 가까운 지지가 말해주듯 원래 그런 성향이었던 지지자들 뿐이란 것이다. 노무현 때도 그랬었고, 문재인 때도 당연하게 반복하고 있었고, 그러고보면 진보정당이 수구정당과 이슈파이팅을 하던 시기는 그토록 종북이라 욕하던 통진당 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NL들이 주도한 진보정당이 아니면 이준석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을 좌우에서 포위한다는 것이 저놈들의 당연한 전략이었었다. 민주당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러면 중도여야 하는데 수구정당 입장에서는 좌파고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보수다. 그러니 저놈들은 가짜다. 진짜인 수구정당과 자신들 진보정당에 투표하라. 그것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나온 '민주당만 빼고'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진보정당마저 수구정당과 붙어먹는 상황에서 얼마나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진보적인 아젠다를 끌고갈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022년 대선에서도 원래는 심상정이 앞장서서 노동이슈든 소수자 이슈든 진보적인 아젠다를 끌고 가면서 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다른 후보자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동력과 계기를 만들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것이 민주당과 이재명에게 도움이 될까봐 심상정은 대선기간 내내 거의 노동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조차 않았었다. 진보정당의 목소리에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사라진 아마 거의 유일한 선거였을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은 대선 내내 마음편하게 더욱 더 오른쪽으로 편향된 입장을 내보일 수 있었다. 그를 비판하는 후보가 사실상 이재명 하나였으니, 더구나 심상정은 이재명이 더 진보적이지 않다고 욕만 해대고 있었으니 굳이 보다 중도적이고 진보적인 유권자들까지 신경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정의당과 한겨레, 그리고 이른바 2찍 진보 지식인들은 민주당의 잘못을 들추는데만 열심이었지 정부와 어떤 이슈를 두고서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죽하면 민주노총이 빨갱이몰이를 당하면서도 저토록 조용히 침묵만 지키고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였으면 정부타도를 외치고 나섰을 놈들이 윤석열 정부에서는 때리면 때리는대로 그냥 쳐맞다가 민주당에 꼬투리 있으면 그것만 물고 늘어지는 중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놈들이 이 지랄인데 그러면 민주당 내부에서 심지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놈들은 또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여줄 것인가.

 

그래서 조국혁신당이 돌풍을 몰고 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2찍 진보들의 태생적 오판이 드러난다. 민주당만 욕하면 중도적이고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보다 진보적인 자신들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민주당을 건너뛰고 자신들이 수구정당과 연대하면 보다 중도의 넓은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조국혁신당의 돌풍이란 비단 민주당 강성지지층의 지지에만 힘입은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 강성지지층은 이재명 당대표를 위해서라도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이 어떻든 일단 민주당에 올인하자는 입장에 더 가까울 것이다. 지금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그런 민주당에 평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민주당이 그다지 선명하게 하는 것도 없다고 여기고 있던 심지어 보수적인 유권자들까지 포함한 그 나머지 유권자들이라는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도 윤석열과 정면으로 시원하게 싸우고 있지 못하는데 조국혁신당이면 마음에 안드는 윤석열과 제대로 싸워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싸늘하게 식고 있는 와중에도 윤석열 정부를 놔두고 민주당만 물어뜯느라 바빴던 2찍 진보들의 자승자박인 것이다. 그보다는 원래 태생이 그랬다. 수구로부터 인정받는 진보가 진짜 진보다. 수구가 인정하는 진보만이 진짜 진보일 수 있다. 조선일보가 불러준다고 좋아라 가서 원하는대로 써주고 지껄여주는 진중권을 보라. 지금의 진중권과 김규항, 홍세화, 강준만 무리들과 과연 보이는 모습에서 어떤 큰 차이가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대안이 되지 못하니 민주당조차 싫다던 사람들이 조국혁신당을 보고 투표장에 갈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왕에 투표하러 간 것 비례대표만 찍을 수 없으니 지역구도 그나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에 투표해야겠다. 그런데 그 대안이 진보정당이 아닌 것이다. 노무현 정부까지만 해도 거의 10%를 넘어 20%까지 바라보던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지금에 이르러 3%도 안나오는 이유인 것이다. 저놈들 지지해봐야 진보는 커녕 그냥 수구세력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민주당 2중대는 아닐지 모르겠는데 그 민주당과 싸울 때는 아예 수구정당의 선봉대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아니면 조국혁신당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데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당까지 기웃거리던 유권자들이 아예 더 선명하게 윤석열 정부와 싸울 것을 천명한 조국혁신당으로 모여든다. 2찍 진보들의 무려 20년 넘는 전략의 종착점이라고나 할까? 놈현 관장사라 지껄이던 놈들의 끝이 보이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속이 시원한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2찍 진보새끼들이 결국에 2찍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국혁신당을 통해 보다 선명히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던 저 새끼들의 대가리속이 얼마나 썩은 똥구더기였는가 새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겨레나 녹색정의당이나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그놈들과 손잡은 여성주의자들도 오로지 민주당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것들이 민주당 안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그냥 코미디다. 얼마전에 아예 민주당 엿먹으라고 공보물에까지 장난쳐 놨더만. 경향일보야 어차피 친검기관지고. 비로소 원하던 그림이 만들어졌다. 너무도 만족스러운 요즘이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더 거세져야 한다. 내 바람이다.

그래서 내가 말한 바 있다. 2찍 진보들이 말하는 여성주의란 단지 수구를 지지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리기 위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그 생난리를 피던 한겨레와 정의당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된다. 검찰이 무혐의로 판단했는데 검찰을 통하지 않고 부당하게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으니 문재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성윤은 아예 승진도 해서는 안된다. 김학의가 어떤 인간이었더라?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었을 때 한겨레가 아주 신이 나서 민주당에 일갈한 바 있었다.

 

"너희는 이준석 같은 젊은 인재 없지?"

 

그런데 이준석이 정치인으로서 그동안 어떤 주장을 해왔었더라? 반여성주의, 반외국인, 심지어 특정한 세대를 한국사회에서 고립시켜야 한다는 세대포위론까지 들고나왔던 대표적인 혐오팔이 정치인이다. 하지만 한겨레는 이준석이 당대표되었다고 신이 나서는 자기들 지면에다 4050 남성들을 아예 이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칼럼까지 내고 있었다. 이는 이른바 2찍 진보들이 이준석을 어떻게 자신들의 대안으로 여기고 있는가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이준석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여론조사한 결과가 얼마전 나온 모양이다. 녹색정의당 지지자 거의 절대다수가 이준석 지지하고 있더만. 그동안 자기들이 진보랍시고 민주당과 지지자들을 욕하던 놈들이 자기들이 그동안 주장해 오던 여성과 외국인, 성소수자,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애념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놈들이 반여성주의를 앞세운 이준석을 지지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녹색정의당을 지지한다는 유권자의 80%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이준석 지지를 선택한 것일까?

 

내가 말한 그대로인 것이다. 저놈들의 진보란 이준석의 보수처럼 단지 자기를 치장하기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실체는 이준석과 마찬가지로 속편하게 싫은 놈 떼어내고 잘라내고 도려내고 밀어내고 그냥 내 맘에 맞는 놈들하고만 어울리는 게 편한 부류들이다. 오래전 바로 그런 2찍 진보들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어리석은 대중의 일원으로서 판단하려 한다. 진보란 그런 대중의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준석이 진보다. 진보의 앞에 2찍이 붙어야 하는 이유가. 웃긴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대사 가운데 그런 게 있었다.

 

"나는 단지 자궁을 팔았을 뿐이다."

 

집안을 위해 다른 가문과 정략결혼을 했던 것을 두고 당사자인 여성이 무심히 내뱉었던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근대 이전 대부분 문화권에서 여성의 지위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여성의 순결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진 이유는 무엇인가? 별 것 없다. 그래야지만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는 누구인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이 바로 알 수 있지만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지금도 첨단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계를 통해 상속이 이루어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다른 남자와의 관계 자체를 단절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자기 이외의 어느 누구와도 관계가 없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된다. 괜히 왕의 궁정을 성기능이 없는 환관들로 채운 것이 아니었다. 

 

전통사회에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사유로 불임이 중요하게 꼽히곤 했던 이유인 것이었다. 아예 여성이 아이를 출산할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결혼 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것을 장려하는 문화권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굳이 부계의 계승이 중요하지 않은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들의 경우는 단지 노동력만 확보할 수 있으면 되기에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기꺼이 받아들이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식의 출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고귀한 신분들은 모계의 신분까지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고귀한 혈통의 여성에게서 후손을 보기 위해 비싼 댓가를 치르고 신부를 사오는 경우가 그렇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 경우 당연히 비싸게 주고 사들이는 것은 여성 개인이 아닌 자궁이었었다. 얼마나 가치있는 자궁이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고, 자궁이 가진 가격에 따라 결혼의 가치가 결정되기도 한다. 앞서 만화의 대사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후계자를 낳아 의무를 다한 이상 자신은 더이상 배우자나 자식이나 시댁인 가문에 어떤 책임도 의무도 짊어질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늬들이 다 알아서 하라.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도 그같은 사고에서 비롯된 귀족사회의 타락한 성문화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냥 자식만 낳으면 된다. 각자의 가문의 이름을 이은 후계자만 하나 낳아주면 그것으로 서로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 마음대로다. 남자만 바람을 핀 것이 아니었다. 후계자만 낳아주면 그 다음에는 아내가 어디 가서 뭔 짓을 하든 남자가 알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다른 여자 찾아서 마음놓고 즐길 수 있으니 더 좋았다.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피임방법이 고안되고, 뜻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중절수술도 시도되었으며,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게 되는 경우에는 출생의 비밀 같은 것도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미 필요를 다한 자궁은 더이상 간섭도 감시도 억압이나 구속도 필요치 않다. 사실상 방치다. 가치가 잃은 자궁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바로 그런 시대였기에 전근대사회에서는 여성의 순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노동력으로서의 아이만이 더 많이 필요했을 뿐 혈통이란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계층에서는 순결은 그리 중요한 의미가 아니기도 했다. 유력자의 사생아를 낳은 여성이 그보다 낮은 신분의 남성과 결혼해서 그 아이를 남성의 아이로 기르곤 하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여성은 단지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궁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양과 질이다. 고귀한 신분에서는 자궁의 질을, 비천한 신분에서는 자궁의 양을, 결국은 여성이란 자궁이었다. 그래서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에게는 이름이란 것이 없었다. 성이 없어서 남성의 성을 따라야 했고, 성도 없이 이름도 절반만 써야 했으며, 이름이 주어지더라도 남성과는 다른 비천한 이름만이 주어졌다. 그렇기에 그런 시대에서 여성의 가치란 다른 무엇도 아닌 단지 성적인 의미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내가 한국 여성주의자들을 두고 기생페미니즘이라 단정지어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20대이던 시절에 주위에 있던 누님이나 동년배들 가운데는 여성이라고 배려하고 하는 걸 아주 끔찍이도 싫어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무거운 것도 자기가 알아서 들고, 힘든 일도 남성들에 뒤지지 않게 자기가 노력해서 해내며, 남성들에게 도움과 배려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주체로써 여겨지기를 바라던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여성이란 당연히 인격 그 자체였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존엄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여성의 존재와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그 여성이 가진 능력과 그 능력으로 일구어낸 결과과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위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주로 떠드는 것은 단지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다. 오래전 당연하게 여겨졌었던 자궁으로서의 여성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성들에 의해 여성은 어떤 지위를 부여받고 어떤 신분을 누리게 될 것인가. 그를 위해 여성의 자궁은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가.

 

여성이 법조인으로서 대등하게 다른 남성변호사들과 경쟁하며 지금의 위치를 일구어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 치열한 삶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럼으로써 사회적으로 그가 지금 차지하는 위치가 어떠한 것인지 아예 전혀 관심조차 없다. 그보다는 성범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심지어 그마저도 선택적이다. 특정 정당이나 세력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심한 경우에조차 아예 입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직 검사출신이고 법무부차관까지 지냈으니 김학의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며 출국금지는 부당했다고 하는 다수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같은 여성인 계약직 노동자의 삶보다, 같은 여성으로서 실제 현실에서 남성들과 부대끼며 경쟁해야 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놓인 현실보다, 그저 자신들이 보기에 불쾌한 특정한 사안들에만 집중한다. 그것이 바로 성인지감수성이다. 성적인 대상으로서 여성에 대한 예우다. 여성을 성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것만이 오로지 절대의 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법조인으로서 그가 살아온 궤적보다 성범죄에 대한 변호가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여성이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 것인가. 앞서 괜히 쓸데없이 길게 끄적여 놓은 서두가 바로 그를 말하기 위함인 것이다.

 

여성의 정조는 보호되어야 한다. 여성은 오로지 성적으로만 보호되어야 한다. 여성이 기자로서 가져야 할 직업윤리보다 여성이라는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위치에만 집중한다. 성범죄라 여기는 사안에 대해서 개개인의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판단보다 같은 성적인 존재로서의 동의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내인 여성의 신분은 더욱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단지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성범죄에 대한 고발을 부정하고, 심지어 남성인 상급자를 움직여 징계하려는 시도들은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인 것이다. 그들의 여성주의에는 여성이 없다는 이유인 것이다.

 

역시 오래전에 했던 이야기다. 여성의 지위가 낮을수록 창녀의 지위는 오히려 높아진다. 말한대로 여성이란 단지 자궁이기에 이미 결혼한 여성을 존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후계자까지 이미 낳았다면 더이상 그 필요와 쓸모를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서 누구와 바람나든 내 핏줄에 정체도 알 수 없는 다른 핏줄을 섞는 것만 아니면 뭘하든 내가 상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굳이 자궁으로써가 아닌 여성 그 자체로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할 수 있는 창녀가 이미 배우자로 있는 여성보다 더 가치있을 수 있는 것이다. 황진이의 경우처럼 역설적이게도 자궁으로서의 가치가 없기에 그녀들은 온전히 여성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또한 남성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한 결과다. 그리고 그 선택을 받기 위해 여성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하고 경쟁도 해야 한다. 다른 경쟁자를 제거하고 더 나은 주인을 선택해야 한다. 과연 과거의 그같은 여성의 현실과 지금 여성주의자들의 주장 가운데 위상학적으로 다른 부분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한국 여성주의를 혐오하는 이유일 것이다. 혐오한다기보다 경멸한다. 남성과 대등해지기 위한 여성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주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도구로 삼아 그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성인지감수성이었고, 그리고 지금도 터져나오는 선택적인 여성주의자들의 분노다. 성범죄는 단지 그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존중할 이유가 있을까? 딱 2찍 진보들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수박들인 것이었고. 역사는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최소한 한국 여성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여성이다. 

사람의 감정이 어떤 때 극대화되느냐면 미생일 때다. 완결이 지어지지 않았을 때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바로 카타르시스다. 감정이 고조되다 못해 결말을 통해 해소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후련함마저 느낀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은 찝찝함이다. 좋은 것도 반복되면 질린다. 좋은 일도 계속되면 결국 지친다. 슬픈 것도 지루해지고, 기쁜 것도 지겨워지고, 행복한 것도 고통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 인터넷에서의 이슈라는 것도 해소되지 않은 어떤 사안들에 대한 감정들의 난류인 경우가 많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들끓다 보면 그 안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조국혁신당이 지금 돌풍을 넘어 아예 폭풍으로 번져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여전히 검찰은 조국일가족을 수사하고 있고, 재판부마저 그런 수사내용에 대해 유죄판결로써 호응하고 있음에도, 더구나 정치권이며 언론, 지식인사회에서까지 나서서 계속 불을 지피고 있는데 오히려 조국혁신당의 지지율만 계속 오르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심지어 조국 당대표에 대해 그동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2030 남성들 사이에서도 나오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조국 대표와 그 부인, 그리고 아들과 아내까지 모조리 수사대상에 오르고 기소까지 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자가족이라고 낙인찍기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동정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 처가나 전현직 검사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결국 검찰이 법과 정의를 위해 수사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복을 위해 한 집안을 집어서 신상털기를 했을 뿐이라는 인식이 번져가는 것이다. 설사 잘못한 것이 있었어도 이런 정도까지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자식이 있는 부모 입장에서, 혹은 부모를 둔 자식 입장에서, 배우자를 두고 있는 부부라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는 심한 것 아닌가. 아예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자식의 앞길까지 막아 놓은 상황을 보면서, 기어이 그 자식들까지 감옥에 보내려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나간 행동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2찍 진보 새끼들이 저쪽 부류와 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동정론에 예외가 있다면 바로 2찍 진보 새끼들이다. 감히 검사님이 수사하는데 무고함을 주장하는 자체가 불경한 것이다. 여론이 잘못했다 하면 그저 납쭉 엎드려 아예 뒈지는 것에 양심이고 정의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새끼들 지지율이 지금 저 모양인 것이다. 대중의 보편적 정서와 한참 떨어져 있으니까.

 

즉 적당히 정권 잡고 나서 대충 조국 대표나 부인만 처벌하는 선에서 그쳤으면 아직도 조국 대표나 가족들이 욕먹고 끝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별 사소한 부분까지도 언론을 동원해 바람을 잡고 꼬투리를 잡아서 수사하고 기소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윤석열 자신이나 한동훈의 가족들이나 검사들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에 대헤 전혀 수사도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려고만 하는 모습에서 그 의도를 의심하고 그 정도에 대해 다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을 다시 일깨우게 된다. 원래 어지간히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도 부부를 모두 감옥에 보내지는 않는다. 심지어 자식까지 수사해서 처벌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정도를 넘어선 행위들이 그래서 오히려 역풍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제는 차라리 조국 대표나 가족들을 동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조국 대표의 가족들의 신상과 관련해서 여전히 검찰로부터 받아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기자들이야 말로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기자새끼들이야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테지만 이제는 대중도 지친다. 질린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심지어 유튜브에서 홍삼을 광고했다고 수사한다는 기사에 대해서는 이 새끼들 진짜 제정신인가 싶다. 약혼한다는데 그것마저 지랄하는 것 보고서는 기자새끼들 기사에 반응하는 자체가 우스워진다.

 

아무튼 조국사태가 남긴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2찍 진보새끼들이 주장하는 인권이란 선택적이고 선별적인 인권이다. 김학의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조국 대표의 가족들은 그 대상에서 예외가 된다. 심지어 자기가 무고하다고 주장하는 것마저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손석희는 그래서 구제하지 못할 버러지새끼인 것이고. 그 아들네미 기사 쓰는 것 보니 딱 견적 나오더만. 집안에서 평소 하고 다니는 꼬라지가 딱 그런 수준이었던 것이다. 방송만 보고 오해한 내가 오히려 미안할 뿐. 기자가 만든 것이다. 검찰이 만든 것이고. 대중은 그에 반응한다. 차라리 조국을 응원하고 지지하겠다. 그게 딱 윤석열과 한동훈의 정무감각의 수준이다. 지랄이다.

내가 이전까지 언론인으로서 거의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손석희를 사람 이하의 버러지새끼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별 것 없다. 조국사태 당시 정경심 교수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뉴스에서 시간까지 따로 할애해가며 비난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개인은 자신에 대한 불리한 주장에 대해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자기에게 위해가 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기 이전에 살아있는 존재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기본권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부정했다.

 

저놈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형사나 그 앞잡이들이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면 일단 고문부터 했다. 재판을 받기 전에 가둬놓고 고문으로 자백부터 받아냈었다. 그래도 되는 것은 범죄자니까. 불령선인이니까. 그러고 나서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형을 살게 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고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본제국주의의 방식을 물려받은 해방 이후 권력자들은 최소한의 요식적인 절차도 없이 빨갱이라고 학살부터 저질렀었다. 너 빨갱이냐 묻지도 않았다. 빨갱이라면 빨갱이라고 있단 쏴 죽이기부터 했었다. 그나마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 재판이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일단 붙잡으면 고문부터 하고 자백부터 받아낸 뒤 요식적인 절차를 거쳐 처벌한다. 그 어디에 개인의 인권이 존재하는가.

 

성폭행범으로 기소되었다 할지라도, 아니 설사 실제 범행이 밝혀져서 유죄로 판결되었더라도 시민으로서 개인이 가지는 권리 자체가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최소한의 지켜야 할 인권 정도는 보호될 수 있어야 한다. 재판과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재판에서 피의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근대사회라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상식이고, 바로 그것이 근대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할 여건이 안되는 피의자를 위해 나라에서 세금까지 들여가며 국선변호인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 사람들조차 나라에서 도와주어 최소한의 방어권은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라 해서 그같은 권리를 제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방어권 자체는 제한하지 않더라도 그를 도운 변호사들의 공직진출을 아예 차단하려 한다. 더 크고 더 높은 곳을 바라는 야망이 있는 실력있는 변호사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아예 변호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연 근대의 사법체계나 천부인권에 있어 적절한 판단이며 행동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웃긴다는 것이다. 김학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이미 무혐의처분을 내렸다며 그 절차의 정당성을 문제삼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까지 언급하던 2찍 진보 새끼들이 정작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서 무죄를 주장했다고 이제와서 공격한다는 자체가 그 의도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재판을 수임했으면 자신의 의뢰인이 주장하는대로 무죄를 입증하거나 최소한 감형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직업윤리이기도 한 것이다. 범행을 저지르기는 했는데 감형사유를 찾으려는 경우가 아니라 아예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 주장한다면 의뢰인을 위해 그런 방향으로 변론을 진행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다. 아, 그래서 학폭피해자인 의뢰인을 아예 내팽개치고 재판출석조차 않았던 특정 변호사가 그쪽과 어울리고 있는 것일까? 변호사는 오로지 변론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을 변론한다. 그것이 그들의 인권수준이고 현대사법체계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아마 변호사들 과거 수임한 사건들 뒤져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지금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변호사, 혹은 검사, 판사들 과거 사건들 뒤져서 조수진 변호사를 비판하는 그 기준을 적용시켜보면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법조인은 아예 국회 근처도 가지 말라는 주장만 나오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이니까. 그러면 몰라서 그러느냐? 모른다면 더 개새끼들이다. 무식한 게 아니라 사악한 것이다. 그 뿌리를 다시 더듬게 된다. 그같은 주장들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말했잖은가? 한국 페미니즘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김활란이 있었고, 박마리아가 있었고, 그리고 모윤숙에서 비롯된 YWCA가 있었다. 당연히 2찍 진보 가운데도 집안도 먹고 살만하고 학벌도 제법 괜찮아서 진보놀음하는 게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 놈들이 태반이다. 그런 놈들 뿌리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의 비슷하다. 왜 2찍 진보 가운데 뉴라이트와 같은 친일매국적인 역사관을 탈민족이라며 주장하는 놈들이 그리 많겠는가. 일제강점기가 계속 되었다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서 더 큰 풍요와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닌 조선총독부에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일본제국주의 조선총독부의 정통을 이은 국가다. 실제 2찍 진보새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다. 그러다가 페미니스트에게 찍혀서 낙인찍히고 쫓겨난 놈도 알고 있다. 

 

손석희가 원래 그런 부류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놈들과 어울리다 보니 물들은 것이다. 나쁜 놈은 그냥 나쁜 놈이니 변론도 재판도 필요없다. 그냥 죽창이다. 모아놓고 쏴죽이고 파묻어 버리는 것이다. 그게 빨갱이 불령선인에 대한 합당한 처분이다. 그런 인권의식이 조국 지금 조국혁신당 대표와 그 가족들에게까지 적용되었었다. 심야에 남성들이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쳐들어가 다짜고짜 초인종을 눌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라는 기자년들이 떠들던 소리다. 그 뿌리가 어디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박근혜를 지지하면서 탄핵에 반대했었겠지.

 

저놈들을 사람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다. 내가 2찍 진보를 오히려 수구보다 더 혐오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나마 수구새끼들이야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라도 하지 이 새끼들은 때와 장소 사람을 가려가며 말과 행동이 바뀐다. 평소 그렇게 시민의 권리와 천부인권을 주장하던 놈들이 그를 부정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도 그래서다. 결국은 그게 뿌리인 것이다. 진심인 것이고. 모든 인간이 같지 않다. 그러니까 저 새끼들도 인간으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 손석희가 버러지새끼이듯 여성단체든 2찍 진보든 그냥 똥이나 파먹는 똥버러지들이다. 사람새끼 아니면 들어줄 이유가 없다. 더러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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