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자객이란 자체가 목표로 한 대상에 맞춰 그 신분과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도 조선총독 쯤 되니까 강우규 같은 명사가 나섰던 것이었고, 일본의 텐노나 장성들 쯤 되니까 김구가 직접 나서서 이봉창과 윤봉길을 임명하여 보냈던 것이었다. 그냥 순사보 하나, 악질 헌병 하나라면 굳이 그런 인물들씩이나 나설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자객이란 그런 정치적 메시지까지 가지게 된다. 누가 자객으로 나서는가. 흔히 하는 말로 누가 저격수가 되어 정치적 공세를 전담할 것인가. 당 전체가 나선다면 그야말로 상대의 급만 높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대통령에 대한 지저분한 정치적 공격은 당내에서도 중량감이 떨어지는 인물이 전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중요성이 떨어지는 인물로 맞상대하게 함으로써 상대의 격까지 함께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만한 인물에게는 딱 이 정도 되는 인물이 적당하다.

 

한 마디로 그나마 당대표 쯤 되니까 김남국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남국 말고 민주당 차원에서 따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자칫 당차원에서 나섰다가 이준석의 급만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런 당직도 맡고 있지 않은 김남국 정도가 적당하다. 불씨는 그래도 최고위원으로 지명도 높은 김용민이 당기고 이후 불을 계속해서 지피는 것은 초선에 당내에서 입지도 그다지 크지 못한 김남국 혼자다. 그래도 충분하다. 이준석이란 고작 그런 정도 인물이고 의혹이라는 것도 그런 하찮은 것이다.

 

차라리 중대한 비리나 범죄였다면 오히려 이준석의 급을 더욱 높여주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저쪽 지지자들 성향이 그렇다. 천만 원 이천만 원 정도는 오히려 용서못할 파렴치한 범죄일 수 있는데 십억 이십억 백억이 넘어가면 능력이 된다. 그래서 하찮게 자잘하게 디테일 가지고 공격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하찮으면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란 자체가 매우 희귀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걸렸다고나 할까?

 

민주당에서 입장을 정한 것이다. 이준석을 어느 정도 급으로 상대할 것인가. 이준석이란 야당의 대표를 어느 정도 급으로 예우할 것인가. 딱 김남국 선에서 정리하면 좋은 정도란 것이다. 그래서 당이 움직이지 않고 김남국 개인만 움직인다. 물론 정보와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과정은 당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김남국 입장에서 저격수로 나선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미래에 한계를 긋는 자기희생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적 저격수로 나섰던 이들 가운데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한 이들이 몇이나 되던가. 일단 손에 피를 뭍히면 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초선 5인방이 멍청하다는 이유다. 그것도 상대당의 피를 뭍히면 모르겠는데 이것들은 자기당의 피를 기꺼이 손에 뭍히겠다 나서고 있었다. 그릇의 차이랄까. 정작 입바른 소리 잘하는 이들 가운데 과연 상대당과 진흙탕싸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손에 피를 뭍힐 수 있는 이가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아무튼 그럼에도 김남국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맡아 수행하는 탓에 민주당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헛발질해도 책임은 김남국 혼자 지는 것이다. 이준석의 저격에 성공해도 그 핏값은 김남국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지지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런 무거운 책임을 맡은 자기희생에 보답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준석을 설사 잡지 못해도 기꺼이 핏구덩이로 뛰어든 그 용기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송영길이 의외로 능력이 있다. 소인배이기는 한데 그래서인지 더 치사하고 교묘하고 악랄하다. 이전 당대표들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저격수를 운용하지 않는다. 황교안이나 김종인 체제에서 저격수로 나섰던 정치인 혹시 기억나는 사람 있는가? 이런 것도 정치의 기술이다. 잘하는 중이다. 김남국을 응원한다. 돌려줄 때가 되었다.

벌써 2년도 전에 그리 쓴 바 있었다. 당시 윤석열 검찰의 행태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입장에서 자유한국당에게도 전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칼이란 내가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칼이 혼자서 날뛰면 그건 칼이 아니라 마물이다. 원래 성향이 그렇다면 또 모르겠다. 원래 성향이 보수적이어서 보수정권에서는 친정부적인 행태를 보여 왔었다면 일관성이라도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외압에 맞서다 한직을 떠돌았고 마침내는 박근혜와 이명박을 수사에서 감옥에 집어넣은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냥 지 꼴리는대로다. 정확히 검찰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인물이란 것이다.

 

역시 그동안 수도 없이 반복해 온 말일 것이다.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미친놈은 되지 마라. 바보는 다룰 수 있다. 방법만 알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이용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미친 놈은 아니다. 미쳤다는 건 자기 상식으로 예상할 수 없는 상태란 뜻이다. 지금은 멀쩡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멋대로 튀어나가 날뛸지 모르는 것이다. 설사 윤석열을 앞세워 다시 정권을 되찾더라도 윤석열이 가진 검찰이란 칼이 어디서 어떻게 자기를 향해 휘둘러질지 모르는 것이다.

 

과거 민주당에서 경선을 통해 선출된 자기당의 후보 노무현을 거부했던 이유였다. 역시 경선을 통해 선출된 자기당 후보 문재인의 낙선을 위해 움직이던 민주당 정치인들까지 있었다. 자기당 출신의 대통령후보라도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되어야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도록 움직일 수 있어야,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지만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자기가 통제할 수 없거나 확신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설사 자기 당 후보라도 함께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래서 같은 당에 몸담고 있었음에도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토록 원수처럼 싸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전혀 행동을 예상할 수 없는, 더구나 검찰이라는 너무나 무서운 흉기까지 거느린 윤석열을 아무리 정권교체가 중요하다고 수구진영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그동안은 수구정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수구정당보다 항상 높게 나와서 다음 대선을 자신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는 진보를 포함한 언론의 거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윤석열이 중심이 되어야 중도층까지 아우르며 다음 대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훨씬 상회하게 되었고,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까지 압승하고 있었으며, 이준석을 앞세워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개혁의 이미지까지 가져가게 되었다. 여전히 혼란하고 지지부진하기만 한 민주당에 비해 이미 정국의 주도권은 국민의힘에게로 돌아온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과연 윤석열이란 위험한 흉기가 필요할 것인가.

 

국민의힘이 윤석열에게 입당을 종용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윤석열이 중심이 아니라 국민의힘이 중심이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기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의힘에 와서 국민의힘이 다룰 수 있는 안전한 흉기로써 거듭나라. 자신을 증명하라. 아니면 끝이다.

 

용도폐기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입장에서도 언제 자기들에게 칼을 들이밀지 모르는 윤석열을 부담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윤석열이 가지고 있는 검찰이란 힘은 설사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보수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여전히 통제가 불가능한 너무나 위험한 수단인 것이다. 아마 공수처가 윤석열을 수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윤석열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한겨레나 경향, 정의당 등 주제를 모르는 자칭진보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을 매개로 수구와 손잡고 기득권에 편입될 수 있기를 바라던 그들만 닭쫓던 개가 되어 버린다. 그런 점에서 일찌감치 윤석열을 손절한 진중권은 얼마나 현명한가. 서민따위와 격이 다르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너무 날뛰었다는 것이다. 자기를 임명한 대통령까지 무시하며 날뛰는 모습이 국민의힘에게도 위기감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저 놈은 위험한 인간이다. 그래도 그동안에는 필요해서 손잡았는데 이제는 더이상 윤석열이란 존재가 필요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준석을 띄운 것이다. 이준석이야 말로 윤석열이란 꿩을 잡기 위한 매였다. 그리고 윤석열이 언론의 중심에 선 순간 윤석열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게 되어 버렸다. 국민의힘에 굽히고 들어가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검찰이란 힘은 국민의힘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만다. 검찰이 넘어가면 윤석열에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대통령을 무시하더라도 선을 지켰어야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줄 수 있었어야 했다. 그동안은 수구정당의 지지율도 낮고 정권교체의 가능성도 전혀 없다시피 했으니 미친 짓을 해도 그대로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임명자인 대통령도 개무시하는 인간인데 그저 정권교체의 파트너에 불과한 자신들에게는 어떨 것인가. 무엇보다 지금 이대로 검찰의 힘이 상당부분 약화된 상태가 정권교체를 노리는 입장에서도 편하고 좋은 것이다. 정치라는 속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검찰만의 헛된 몽상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여전히 윤석열을 빨아제끼는, 이준석과 번갈아 빨아대느라 혀가 썩어버린 자칭 진보들은 어째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진짜와 가짜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칭이어야 하는 것이고.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벌써 10년은 더 넘은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작은 게임회사가 만들던 게임이 엎어지며 망할 위기에 놓였었다. 그러나 망하지 않았다. 왜? 병역특례 중인 직원들이 몇 명 있었거든.

 

회사가 망하면 당연히 병역특례도 중단된다. 정확한 법규정은 모르겠지만 아마 병역특례중인 입장에서 꽤나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병역특례 직원 가운데 돈 좀 있는 집안 출신이 있어서 갹출로 해결하기로 했다. 그 직원 주도로 아예 사무실 임대료며 대표 급여까지 매달 지급해가며 억지로 회사를 유지한 것이다. 당연히 출근한 병역특례 직원들은 업무 대신 자기 공부에 매일 시간을 보냈었다.

 

원래 산업기능요원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기 직원이 아니었다. 어차피 병역특례가 끝나면 다시 볼 일 없는 남의 식구였다. 그래서 어디선가는 병역특례가 중단되면 현역으로 입영해야 하는 것을 목줄삼아 노예처럼 부리기도 하고, 어디선가는 반드시 필요한 인력도 아니기에 대충 부리기도 한다. 싸이가 그런 경우였다. 어차피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면 정식으로 고용했을 테고 산업기능요원이란 병역특례의 대가로 싼 값에 고용하는 잉여인력이란 것이다. 여기에 집안까지 대단해서 돈이든 힘이든 제법 된다 치면 그냥 놀다 가는 곳에 지나지 않을 수 있었다. 위에 썼지 않은가. 대표 월급까지 집안에서 모아서 주고 있었다고. 과연 그런 병역특례업체 대표의 허가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런 식의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관행들은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제법 상당했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싸이가 했던 방식 역시 그런 관행 가운데 속하는 것이었다. 출퇴근만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어디서 뭘 해도 상관없다. 더구나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었기에 싸이도 정작 사실이 밝혀지고 처벌까지 받지는 않았었다. 대신 군복무를 한 번 더 했었지. 그러면 이준석은 어땠을까?

 

이준석의 병역특례 의혹에 대해 듣는 순간 바로 떠올린 그림이었다. 어차피 병역특례 기간 동안 해당 업체에서 대표의 지시를 받아 열심히 성실하게 근무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절친이 당시 압도적인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유승민 의원이었다. 집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그냥 출근하고 회사에서 놀기만 해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거 하면 돈도 되고 나중에 뭘 해도 근거가 될 수 있고 괜찮지 않을까. 성실하게 병역특례로 근무중에 있었으면 그런 생각은 해제 이후로 미루게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원래가 병역특례란 자체부터 특례란 말 그대로 특혜처럼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의 병력특례에 대해서까지 형평성을 들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그것도 돈까지 받아가며 자기 일로 경력까지 쌓아 가면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노예처럼 부리는 곳은 그래도 참을 만한데 환경까지 널럴해서 다른 생각까지 마음껏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복무 도중 다른 정상을 벗어난 특혜까지 누렸다?

 

20대가 침묵하는 것은 그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군대에 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머지 가운데 한 절반 정도는 병력특례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들일 테도. 이를테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 병역특례 도중 혹시라도 소집해제 이후 자기 경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연차를 내고 강의를 들으러 가겠다면 회사 대표는 무어라 대답했을까? 그러다가 잘려서 다시 현역으로 끌려간 경우도 오래전 시사프로에서 다루어진 바 있었다. 심지어 몸이 아파서 야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병역특례 도중 내쫓겨 현역으로 가야한 경우마저 있었다. 비교가 되는가? 

 

사정이 이런데도 비판 한 마디 없다는 것은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들더러 이준석처럼 되라던 한겨레를 떠올린다. 어째서 한겨레는 이준석을 비판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회사 대표가 허락했고 담당공무원이 괜찮다고 대답했어도 그런 일들이 가능했던 자체가 특혜란 증거인 것이다. 병역특례란 그런 식으로 악용되었다. 모르면 병신이고 알고도 지지하면 더 병신이다. 병신은 많고도 많다.

 

작년 민주당이 유시민을 담글 때 민주당 지도부의 의지를 느끼고 있었다. 더 윗선에서 의도적으로 유시민을 배제하려 한다. 누구일까? 당시는 이낙연을 의심했는데 그보다 더 윗선이 있었던 모양이다. 설마 양정철이 비선실세였다니.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은 국회의원도 몇 번 해 보지 못한 그야말로 정치낭인에 지나지 않았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당연히 청와대란 어지간히 신념이 투철해도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점과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당시 좀 쓸만한 인재라면 거의 김영삼과 김대중이 경쟁하듯 끌어가고 있었는데 노무현 주위에 아직 남아 있었다면 어떤 사람들이겠는가? 대통령 되고 나서 청와대로 들어간 경우라면 대통령과 반드시 성향이 일치하겠는가?

 

받아주는 이 없으니 그나마 써주는 노무현 주위에 머물던 놈들도 있을 것이고, 그저 청와대가 좋아서 대통령 측근입네 하던 놈들도 있었다. 당연히 그들 대부분은 참여정부가 끝난 순간 스스로 노무현 전대통령을 부정하고 친노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열성적인 지지자들에 기대 다른 꿈을 꿔보려는 놈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봐야 진정 참여정부의 이상과 지향에 동의하는가는 별개인 것이다. 더구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외모 만큼이나 생각도 말도 행동도 다 바뀌게 된다. 전해철이나 이광재만 보더라도 과연 친노라는 게 이제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선거에서 너무 크게 이긴 영향이란 것이다. 그 전에 민주당 내부에서 친노랍시고 양정철과 짝짝꿍하던 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총선에서 압승한 사실을 등에 업고 당의 지도부를 포섭하기 시작했다. 전대통령들 사면을 적극 건의한 것이 양정철이었다지? 사실상 이번 21대에서 민주당 초선 가운데 상당수는 양정철이 공천한 것이나 다름없다. 양정철이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은 초선들이 지랄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째서 지금 민주당이 이재명에 대해 저토록 공격적인가. 누군가 강하게 의지를 드러낸 때문이지 않을까.

 

송영길은 의리가 없다. 그래서 아무리 양정철이 자기를 도와도 이익이 되지 않으면 굳이 돌아볼 이유가 없다. 지금 송영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어디의 누구인가. 그동안 양정철이 해 온 일들이란 윤석열을 천거하고,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막고 여러 개혁정책들을 저지시키는 것이었다. 이대로 양정철의 말을 들어서 다음 대권이 있을 것인가.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막후의 책사노릇에 도취되어 있던 양정철이 전면에 나선 것을 보면. 그리고 대놓고 조국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부정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전체를 부정하고 있었다. 지금 민주당이 보이는 공식입장과 비교해 차이가 나지 않는가.

 

언제부터 양정철이 문재인 대통령과 갈라서게 되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원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자기 똑똑한 맛에 사는 인간들은 조금만 생각이 있는 리더라면 바로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그리 똑똑한 것 같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그 결과 민주당의 폭망과 정권교체에 모든 걸 내건 것이다. 윤석열을 자기가 천거했으니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자기도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편승한 것이 조응천, 백혜련, 초선 5인방일 테고. 윤석열은 문재인에 비하면 단순무식한 인간이니 양정철도 제법 중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그동안 김어준이 양정철의 의도대로 움직였는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이 주진우였을 것이다. 그리고 김어준이 끝까지 윤석열과 적대하며 관계가 틀어진 결과가 김어준이 자기 방송에 유시민을 출연시킨 것이었다. 양정철은 자기를 책사라 여기기에 자기만큼이나 똑똑한 유시민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유시민을 노골적으로 담궈 버리려 시도한 것이었다. 유시민과 관계를 가지면 양정철과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

 

아무튼 옥상옥이라고 당대표 위에 실세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당내 계파의 구심이 원내가 아닌 원외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것이 아마 전해철이 아닐까. 이재명을 찍느니 남경필을! 딱 지금 양정철이 하는 개소리와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째서 중용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모르지 않는 사이였으니 더욱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으리라. 이놈들은 절대 쓸 수 없다.

 

송영길이라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여기게 된다. 세상에 대통령도 안중에 없는 소인배인데 양정철 따위야. 아마 우원식이나 홍영표였으면 이렇게 단호할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송영길을 지지하게 된다. 잘하고 있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님의 칼럼인지 낙서인지를 전해들으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전근대 조선에서 외교란 오로지 중국과의 관계만을 의미했다.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란 중국과의 관계 아래 종속되어 존재할 뿐이었다. 중국이 중화라면 그 아래 소중화로써 조선이 다른 나라들보다 우위에 위치한다는 정도가 당시 조선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 아닌가. 그래서 조선 후기 유학자들은 과연 청이 중화로써 자신들의 종주국일 수 있는가를 두고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써 진지한 논쟁까지 벌였던 터였다. 이른바 인물성동이논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기자들은 무식하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력을 갖추고 해당 분야의 기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학교 다니면서 취업준비 열심히 해서 마침 자기 스펙에 맞는 언론사가 있기에 지원해서 합격한 결과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기자가 된 뒤 제대로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을 하는가. 어차피 출입처에서 기사는 떠나 먹여 줄 테니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 지금 언론의 현실인 것이다. 말 그대로 말인지 당나귀인지도 구분 못하는 수준으로도 얼마든지 해당 분야에서 전문기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민주당 초선나부랭이들 비웃는 이유도 그것이다. 실제 직접 정치를 하면서 그깟 정치부 기자놈들 기사에 휘둘리는 게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할 짓인가.

 

그렇다 보니 청와대 출입하고 국제외교에 대한 기사를 쓰더라도 국제관계에 대해 아는 것이란 쥐뿔도 없는 경우가 대다수란 것이다. 그런 놈들에게 외교란 조선시대 친청파 친일파 친러파가 그러했듯 누구에게 줄서는가의 선택 말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중국에 조금만 좋은 말 해주고 약간만 양보를 해도 친중이 되는 것이고, 일본과 사소한 부대낌만 있어도 반일이 되는 것이다. 미국이 하는 말에 무조건 동의하지 않았으니 반미다. 그래서 그 밖에 나머지들은? 그나마 영국과 독일, 프랑스조차 미국과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 아래에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 밖에 나라들은 말 그대로 그 밖이다. 도대체 외교를 한다면서 대통령이 스페인이나 오스트리아를 찾을 이유가 무엇인가? 외교를 하려면 미국 대통령과 만나던가 일본 총리와 만나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G7부터도 다른 모든 외교성과를 뒤로 한 채 오로지 일본과의 관계가 진전되지 않은 부분만을 지적하는 기사가 넘쳐났던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과 함께 대화하지 않으면 외교가 아니다. 그런 연장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진 상태에서 오스트리아나 스페인 같은 듣보잡 나라들을 방문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정숙 여사에게 오스트리아 국민만찬을 경험시켜주는 것이 목적일 것이라는 개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이전에 그런 글을 당당히 지면에 올릴 수 있는 인식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 글을 보고 사람들이 어찌 반응할까 상상할 최소한의 지성조차 사라진 상태다. 모두가 자기들처럼 생각하고 자기들 기사를 보고 납득하고 말겠거니.

 

그래서 그나마 G7은 보도하던 언론들조차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국빈방문은 아예 무시하고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거기서 무슨 이야기가 나왔든 대한민국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차라리 이준석이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오스트리아나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 뭘 하든 무슨 기사거리가 된다는 것인가. 그냥 무식해서다. 그런 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정의라 착각한다. 진보고 보수고 구분이 필요없다. 요즘 기사 보면 과연 기자에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구분이 의미가 있긴 한가. 웃을 뿐이다. 버러지 새끼들. 벼멸구에 미안해지려 한다.

가까운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면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가정인 것이다. 아니 몇 년 전 함께 살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몇 달을 그런 사고 속에 갇혀 살며 지냈었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그렇게 했었다면. 그만큼 그 순간이 절박하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때로 돌아가 모든 것을 돌려 놓고 싶다.

 

하필 사고장소가 버스정류장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차가 멈춰서지 않았더라면. 기자의 발언왜곡이 악의적이라는 것은 정차한 상태에서와 주행중일 때의 엑셀레이터의 기능이 다르다는 점 때문이다. 주행 도중 가속하는 것과 정차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을 같이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가정법이 나오는 것이다. 하필 그곳이 정류장이 아니었고 버스가 정차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사고를 인지했을 때 엑셀레이터를 밟든 뭘 하든 버스기사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어떤 행동들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얼마간 피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처음 기사를 보았을 때 뭔 말을 저리 주저리주저리 구구하게 붙이는가 싶었다. 그런데 유가족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하니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사고를 아예 미연에 막을 수 없었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그러면서 지자체에 책임을 물을 근거로써 버스정류장을 방치한 부분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다. 다만 말이 좀 정제되지 않은 부분이 없잖아 있는데 그러나 그건 송영길의 스타일이니 이제와 뭐라 하기도 그렇다. 정제해서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아무튼 덕분에 송영길도 깨닫게 된 것이다. 송영길이 당대표 되었을 때 아마 이야기했을 것이다. 송영길은 소인배에 속물이기에 오히려 대중정치인으로서 더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모른다고. 당원과 지지자들의 바람도 그렇고, 당장의 수세에 몰린 국면을 타개하며 당대표로써 입지를 세우기에도 그만인데, 무엇보다 자신의 발언이 왜곡되어 전파됨으로써 혹시라도 지워질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역공이 최선인 것이다. 바로 이 문제를 언론개혁과 연계시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용한다. 그동안 정치를 허투루 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말하자면 언론이 습관처럼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 기사를 도구로 쓰다가 도리어 빌미만 내어 준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언론개혁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던 송영길이 이 기사 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마저 노린 것이었을까?

 

말 그대로 유가족의 심정을 그대로 대신 전달하고자 사용한 표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권한이 있는 해당 구청장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선의를 그런 식으로 왜곡당하면 누구나 화가 난다. 더구나 당대표 취임 초기에 그런 식으로 흠집을 내려 하면 소인배일수록 더 크게 화가 난다. 소인배라 다행이다. 대인배라면 대범하게 넘겼을지 모르겠다.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경기가 열린다. 아니 아마존 밀림을 종단하는 경기라도 상관없다. 매순간 생명의 위험까지 느껴야 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다른 사람을 이기고 높은 등수 안에 들면 상당한 보상이 따르게 된다. 단, 설사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1등이 상금 백만원에 금메달을 받는다면 중간에 포기한 사람도 상금 50만원에 같은 금메달을 받게 된다. 과연 자신의 선택으로 경기에 참가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선택도 아닌 강제로 참가하는 것이라면 그런 경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겠는가.

 

젊은 세대가 코인이나 부동산 같은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이유인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뛰면서 청년 세대들은 부동산 가격의 안정보다 그렇게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서 자신도 한 몫 잡기만 바라게 되었다. 청년 세대가 오세훈을 지지한 이유였다. 실제 오세훈이 서울 시장이 되고 부동산 가격은 코인처럼 미친 듯 들썩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현정부와 민주당은 자기들이 살 수 없게 대출을 제한하고 있었다. 코인으로 돈 좀 벌어보려니 규제하겠다 난리치고 있다. 왜 자기들에게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가. 기회를 막으려고만 하는가. 이런 것들이야 말로 자기들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인데.

 

보상이 별 볼 일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막을 횡단해도, 밀림을 종단해도 결국 손에 들어오는 것은 본전도 안되는 100만 원의 상금 뿐이다. 그렇다고 경기를 포기할 수 없으니 지름길을 찾아야 하고 그 안에서 이익을 챙겨야만 한다. 그마저도 안되면 마음의 위안이라도 찾아야 한다. 내가 경기를 완주하고도 얻는 이익이 별 것 아니라면 완주하지 못할 경우 돌아갈 보상은 그보다 가혹한 것이어야 한다. 벌을 주어야 한다. 자기보다 못한, 완주했어도 순위가 한참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더 큰 고통과 불이익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마저 빼앗아서 자기에게 달라. 왜? 그만큼 경기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했으니까.

 

누군가 그러더라. 청년세대와 장년이상의 세대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바로 공정에 대한 것이라고. 그런데 근본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 세대의 공정 역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룰 위에 존재하고 있다. 형편이 되지 않으면 자식도 낳지 말라. 2000년대 초반 노무현을 지지하던 당시 청년세대 가운데 누군가 했던 말이었다.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서도 역시 당시 다수 청년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으면 비정규직은 되지 않았을 것 아닌가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지금 40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번 돈으로 의료보험료 내서 다른 사람이 혜택보는 건 부당하다. 결론은 승자는 보상을 받아야 하고, 패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것이다. 더구나 그 경쟁이 도저히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더욱. 그러니까 끝까지 버티며 경쟁할 동력이 생기는 것 아니던가.

 

청년 세대가 말하는 공정이란 바로 그런 공정인 것이다. 너무 힘드니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래서 당장에라도 놓아 버리고 싶을 테니까. 그런데 그러지도 못하니 요구하는 것이다. 더 큰 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결국 경쟁에서 승리해서 대기업 정규직 되어봐야 미래란 뻔한 것이다.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대기업 임원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임을 안다. 그러니까 벌을 주라. 그래서 자기들처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승자도 되지 못한 이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달라. 기성세대가 말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란, 사회적 평등이란 그래서 그들에겐 반칙이나 다름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경쟁에서 졌는데. 심지어 포기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벌을 주지 않으면 자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여성에게도 벌을 주라. 그래서 반페미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홀대는 당연한 것이다. 성적이 안되어 비정규직이 되고 차별과 홀대를 받는 것은 오히려 너무나 정의로운 것이다. 아니면 자기들이 지금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승자는 상을 받고 패자는 벌을 받는다. 버티면 버틴 만큼 보상을 받고 포기하면 그만큼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자기들이 이 힘겨운 경쟁을 이어나가는 이유가 설명이 될 테니까. 뭐가 문제인가? 그만큼 경쟁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모든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면 그 고통을 덜 힘들고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나마 장년세대와 청년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면 될까? 그래서 이준석이 마치 청년세대의 대변인처럼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그런 뜬구름잡는 소리 말고 실질적으로 패자와 낙오자들에게 더 가혹한 벌을 내리는 현실을 선택하자.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국민의힘의 정체성과도 이어지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의 범죄나 부정, 비리에 관대한 이유이며, 그들의 차별적 발언들에 무감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승자는 상을 받고 패자는 벌을 받는다. 너무나 슬픈 이유라 더 붙일 말도 없어 보인다.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역시 말했을 것이다. 그나마 자칭 진보에서 정신이 멀쩡한 인간이 진중권이라고. 김용민이 한겨레가 이준석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지랄발광했던데, 가만 따져보자. 그래서 한겨레가 단 한 줄이라도 이준석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거나 했던가? 그동안 이준석이 했던 말이나 행동들에 대해 비판하는 단 하나의 기사라도 내거나 한 적이 있었는가 묻는 것이다. 워낙 페미니즘에 적대적이기에 차마 데려다 출연은 못 시켜도, 혹은 대놓고 빨아주지는 못해도, 그러나 이준석이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민주당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나서 기사를 써제끼고 있었다. 

 

오세훈 때와 같다. 박형준 때와 같다. 아니 그동안 자칭 진보들이 지겹도록 보여 온 모습들일 것이다. 국민의힘 잘못에는 눈감고 아예 이슈로도 삼지 않다가 민주당의 아주 사소한 잘못이 드러나면 그것만을 물어뜯는다. 국민의힘 잘못은 잘못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저지른 죄는 죄가 아니다. 검찰이 국민의힘에 붙어서인지, 아니면 국민의힘이 검찰과 붙어먹어서인지 저들의 정의는 항상 선택적이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해고를 보다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자칭 진보 누구도 단 한 마디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었으면 온통 난리가 났을 텐데. 그러면 그나마 이준석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는 진중권이란 그런 자칭 진보 가운데 얼마나 독보적인 인물인가.

 

자칭 진보들이 박근혜에 대해 침묵할 때 혼자서 열심히 욕하던 것이 바로 진중권이었었다. 지금 정부 비판하고 나서는 자칭 진보들이 과거 박근혜 시절 어디서 무얼했는가 곰곰히 떠올려 보라. 홍세화 강준만 김규항 나부랭이들이 어디서 뭔 소리를 지껄이고 다녔었는지. 그런 자칭 진보와 비교하면 확실히 두드러지지 않는가. 그래도 아예 국민의힘과 붙어먹는 나머지 자칭진보들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다. 그래도 이준석은 인정 못하겠다. 오히려 이준석에 편승하려는 정의당과 비교해도 너무나 돋보인다. 이러니 인정하지 않을 수 있나.

 

김용민은 그놈의 감정을 좀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스피커 노릇 하기 전에 제 감정을 먼저 다스릴 수 있어야 판단도 제대로 한다. 그래서 한겨레나 자칭 진보들이 당시 이준석을 욕했는가 하는 것이다. 신지예도 차라리 김용민이나 민주당과 지지자를 욕했지 대놓고 이준석이나 국민의힘을 욕하지는 못했었다. 한겨레는 달라진 적이 없다. 정의당도 바뀐 것이 없다. 진중권은 예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자칭 진보논객인 것이다. 그나마 이준석에 비판적일 수 있는 진중권이 자칭 진보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이유다. 벌레는 벌레다. 똥구더기다.

여성 기업가가 있다. 남성 노동자가 있다. 과연 이 가운데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일까? 누가 기득권이고 누가 소외되어 있을까? 그러면 여성주의는 이 가운데 누구를 위한 이념일까?

 

류호정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류호정에 대한 자칭 진보의 태도가 심지어 같은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성주의는 다름아닌 부르주아 - 지식인이면서 전문가이면서 자본가인 여성들을 위한 이념인 것이다. 그래서 김학의는 무고하다. 차라리 김학의의 부인을 동정하지 김학의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겪은 여성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여성주의의 상징인 박근혜를 위해 김학의는 무죄가 되어야 한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자칭 진보가 오세훈과 박형준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이유였다. 심지어 한겨레는 오세훈을 향한 논란을 희석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인 의도된 오보까지 내고 있었다. 인터뷰를 왜곡하여 공격할 빌미를 만듦으로써 다른 언론이 그를 이용케 한다. 오세훈이 서울지하철공사 노동자의 감원을 추진한다는 소식에도 자칭 진보가 침묵하는 이유인 것이다. 오세훈이 여성주의 정책을 펴는 이상 오세훈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당연하고 따라서 다수 남성노동자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이준석이 해고를 보다 쉽게 만들어야 한다 주장하는데도 침묵하고 있는 것 아니던가.

 

법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 더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권과 노동권만을 보호한다. 작년 박원순 논란 당시 단지 여성주의자들과 다른 주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해고당해야 했던 계약직 여성아나운서가 그 증거가 되어 주고 있을 것이다. 같은 여성이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약자인 계약직 언론인이었다. 하긴 지방지 기자들에 대한 성희롱과 성추행에도 자칭 진보는 입다물고 있었다. 국민의힘과 관련한 성추문들에도 철저히 침묵하며 행동을 자제하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 피해자를 공격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바로 류호정에게 부당해고당했던 보좌관에 그랬던 것처럼.

 

자칭 진보가 노동보다 여성을 선택했다는 건 그런 의미인 것이다. 여성주의가 진보와 동일시되는 경향을 이용해서 기득권 여성들에 편승해서 기득권에 빌붙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실제 여성주의에 경도된 이후 자칭 진보나 심지어 중립을 자처하던 언론이나 지식인마저 대부분 국민의힘의 편에서 일방적으로 그들을 위한 주장만을 하게 된 이유였다. 실제 여성주의에 경도된 이후 자칭 진보들이 국민의힘에, 심지어 탄핵당한 박근혜와 이명박을 재평가하려는 경향마저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여성주의는 친기득권이다.

 

한 편으로 당연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빌딩을 청소하는 미화노동자에게 여성주의란 것이 무슨 의미일 것인가. 하루종일 남성들과 어울려 그들과 같은 일을 하며 때로 독한 농담까지 주고받으면서 부대껴야 하는 여성들에게 성인지감수성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 것인가. 화이트칼라를 위한 것이다. 이것저것 여유가 많은 여성들의 그에 어울리는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부르주아다. 여성주의란 그런 부르주아의 이념인 것이다. 최소한 지금 자칭 진보들이 주장하는 여성주의란 그렇다. 그러니까 민주당의 노동정책에는 반대하면서 국민의힘 노동정책은 노동존중이라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란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친기득권의 이념일 테니까.

 

류호정이 보여주고 이준석과 오세훈을 통해 스스로 입증해 보인 것이다. 김학의도 그 한 증거가 되어 준다. 주호영의 성추행 논란은 아예 증거 동영상까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넘어갔다. 신분과 자격을 나눈다. 원래도 그런 놈들이었다.

일본이 한국보다 오히려 실업률이 낮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서라면 한국인은 하지 않았을 일까지 일본에서는 일본인이 스스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고 살 수는 있고 가정을 꾸릴 정도는 되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는 일도 힘들고 사회적인 시선도 좋지 못한데 정작 일해서 먹고살기가 불가능하다. 일찌감치 결혼하고 가족부양 때문에 이리저리 일을 찾아 헤매던 젊은 친구와 잠시 같이 일했던 적이 있었다. 직장을 구하는 기준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급여였었다. 그래도 아이를 낳으면 아내가 집에서 아이만 돌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당장은 맞벌이를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외벌이로 벌 수 있을 만한 일을 찾고 있었다. 당연히 당시 나와 함께 했던 그 일은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당장 돈이 급해 하기는 하지만 결국 수입이 안되어 얼마 안가 그만두고 말았으니까.

 

그러면 더 힘들고 더 어려운 대신 급여도 많은 일을 해보면 어떻겠는가? 당장 최근 여러 사건들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그런 작업장에서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급여가 많다고 해봐야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에 수당 이것저것 붙여 주는 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그 최저임금만으로 생활이 가능할 것인가. 아마 작년에도 썼을 것이다. 4년 전 백수가 되었을 때는 도대체 뭐 해서 먹고사는가 했었는데, 작년 백수가 되었을 때는 뭘 해도 먹고 사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가족까지 부양하려면 더 고려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 이미 있는 일자리 가운데 한국인 노동자들이 가지 않으려는 일자리까지 한국인 노동자로 채우기 위해서는, 그래서 전체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장의 환경과 노동자의 처우와 지위, 무엇보다 급여의 개선이 필수란 것이다. 하긴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 쓰는 것이기도 하다. 급여도 올리지 않고, 환경도 처우도 지위도 개선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 비용만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싼값에 쓸 수 있는 외국인노동자가 필수적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적개감을 가지는 이른바 청년세대를 위한 제안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보다 급여수준을 더 올리고, 현실의 여건과 환경을 보다 극적으로 개선한다면 더 많은 한국인들이 그런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의 설 자리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다만 그런 개소리 늘어놓는 자칭 청년들은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겠지만. 자기들더러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라는 것이냐며 분개하던 것이 바로 그들 청년들이었을 테니.

 

아무튼 아직도 급여가 충분치 못해 외면하는 일자리가 적지 않더라는 것만으로도 아직 한국사회의 최저임금수준이 충분치 못하다는 가장 큰 근거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야간일에 연장근무하며 수당 덕지덕지 - 기본급의 거의 배가 넘어가는 수당을 받아 챙겨야 겨우 가족 한 사람 부양할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법정 근로시간 지켜가며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며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그 정도 수입이 보장되는 것은 대기업 생산직 정도인 것이다. 대기업 생산직도 힘들다고 외면하는 이들이 태반인데 과연 누가 그런 일을 하려 할 것인가.

 

당장은 급여도 처우도 환경도 좋지 못해 기피하던 일들까지 최소한 돈을 바라보고 하게 될 정도는 되어야 최저임금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러면 얼마까지 올라야 할까? 나도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 주말에는 그냥 편하게 집에서 쉬고 싶다. 그럴 정도는 되어야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아직 최저임금의 수준이 부족하다는 이유인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으로도 아직 많이 아쉬울 정도다. 물론 대부분 편안한 환경에 있는 놈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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