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태평양전쟁은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 관동군이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정부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군대인데 심지어 군지휘체계까지 무시하고 중국에 전쟁을 걸고, 심지어 소련과도 무력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망했다.


군사와 정치가 분리되기 전이야 군사가 정치고 정치가 군사였다. 전쟁을 위해 정치하고 정치의 끝에 전쟁을 했다. 하지만 군사와 정치가 분리된 이후 문명사회에서 문민통제는 상식이 되었다. 당연히 누구와 전쟁을 하고 언제 어떻게 전쟁을 할 것인가는 매우 고도와 정치적 외교적 행위인 것이다. 누구와 전쟁을 하고 누구와는 사이좋게 지낼 것인지의 판단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리기도 하는 때문이다. 그것을 오로지 싸우기 위한 집단인 군에 맡겨 놓을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뇌를 통하지 않고 손발이 멋대로 움직이는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일본의 관동군인 것이고, 고려 역시 몽골과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무신들로 인해 큰 위기를 자초할 뻔한 적이 있었다.


누가 적인가? 군은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당연히 문민통제 아래에서 그런 것을 결정하는 것은 민간정부여야 하는 것이다. 행정부가 누가 적이고 누구와 싸울 것인지 결정하면 그제서야 군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더이상 북한과 적대하지 않겠다. 오히려 일본과 군사적 긴장을 전제하고 군사전략을 짜야겠다. 그러면 지금까지 북한과의 전쟁을 전제하고 세운 모든 전략들을 뒤로 물리고 일본과의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대비한 전략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에 맞춰 무기도 인력도 제반 여건도 계획에 따라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군이 멋대로 결정한다? 바로 그것이 항명이고 하극상이다. 더 나아가 반역인 것이다.


심지어 인접한 다른 나라도 아니다.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에 무력충돌까지 가정해야 하는 그런 나라인 것도 아니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군은 외부의 적을 대비한 국방을 책임지고, 국가 내부의 안정은 행정부가 담당한다. 바로 이 행정부가 국내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운용하는 것이 바로 경찰이다. 이미 국내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한 경찰이라는 기관이 있는데 군이 멋대로 국내의 혼란을 가정해서 군을 출동시킬 만일의 계획을 세운다? 차라리 청와대에서 누군가 지시했다면 나름대로 변명할 거리는 있을 것이다. 문민통제 아래에서 민간정부가 요청했기에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계획을 한 번 세워 본 것이다. 아니라면 군의 책임을 넘어선 월권이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 반역이다.


다른 대상도 아닌 자국의 국민이다. 단지 정부에 반대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뿐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계획을 세운 것이다. 국민이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혼란이다. 국민이 정부에 반대하니 국가위기사태다. 군이 생각하는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대한민국인가? 아니면 군사독재의 후예인 박근혜 개인이었는가? 설사 정부가 요청했다고 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명백히 국민을 적으로 간주했다. 국민을 적인 북한과 내통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계획을 세웠었다. 심지어 군을 동원한 자의적 체포와 연금, 언론의 장악까지 거론되고 있었다. 이런 것을 과연 군이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 고려해 볼 수 있는 가정이라 여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군대는 그런 군대인가?


하물며 지휘체계까지 무시하고 합참의장을 배제한 채 육군만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더구나 육군최고지휘관도 아닌 군정보기관인 기무사가 육군을 동원할 계획을 멋대로 세우고 있었다. 하극상이다. 누가 만주군의 후예 아니랄까봐 하는 짓거리까지 구일본제국의 관동군을 그대로 따라간다. 도대체 그토록 강조하던 군의 기강과 지휘체계는 어디 엿이라도 바꿔먹은 것인가. 아니면 변기에 넣고 시원하게 내려버린 것인가. 그러고도 변명한다. 심지어 자칭 보수라는 인간들이 그것을 변명하며 변호한다.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안보인가.


가만 보고 있으니 가관도 아니다. 양승태의 사법농단 만큼이나 명백한 사안이라 그냥 보고만 있으렸더니 별 해괴한 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괜히 독립수사단을 만들어 엄중하게 수사하라 지시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문민통제의 원칙을 부정하는, 심지어 군의 존재이유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인 것이다. 어차피 그들에게 군이란 처음부터 그런 의미였을 테지만.


쿠데타 모의라서가 아니다. 모의가 아니라 그냥 이 자체가 쿠데타다. 군은 민간정부가 통제한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싸울지 민간정부가 결정하고 군은 단지 그 결정에 따른다. 너무 오랜동안 군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군을 개혁해야 하는 또 하나 이유가 된다.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반드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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