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을 훈련시킬 때 채찍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짐승인데 말로 다스릴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때려서라도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각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과 짐승의 차이로 흔히 일컫는 이야기다. 사람은 말로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짐승은 아니다. 그래서 짐승에게는 매가 필요하다. 흔히 당근과 채찍이라 하는 것이다. 본능으로만 사는 짐승이기에 먹이와 고통을 통해 그 행동을 사람에게 맞춰 유인하는 것이다.


며칠동안 가만 지켜보았다. 그래도 설마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언론이 몇 개는 있겠거니. 물론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심지어 한겨레와 경향보다 비판하는데 태도가 정말 전에없이 공손하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할 때의 논조를 기억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책을 추진할 때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흠을 들추고 탓을 할 때는 그리 가차없다. 그런데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은 항상 조심스럽다.


홍준표와 자유한국당만이 아니다. 이전의 새누리당도 그랬었다. 태블릿PC를 통해 결정적인 약점을 잡기 전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까불면 맞으니까. 괜히 덤비면 두들겨 맞으니까. 대신 말만 잘 들으면 이것저것 쥐어준다. 국정원 특활비의 용처 가운데 언론으로 얼마가 흘러갔는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것이 언론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홍준표가 보여주었다. 자유한국당이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언론을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한민국 언론이 바라는 언론의 자유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남북전쟁 당시 노예를 해방했더니 오히려 해방된 노예가 주인을 원망하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자유는 더 큰 구속이고 억압일 수 있다. 객관식에 익숙한 사람에게 논술로 시험을 보라 하면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것이다.


그동안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MBN에 대한 취재거부와 고발에 대한 언론의 보도들을 보며 내린 결론이다. 아, 대한민국 언론이 바라는 대우란 이런 것이구나. 대한민국 언론은 이런식으로 다루어야 하는구나. 저놈들은 지배받고 싶어하는 그저 비굴한 노예에 불과하다.


한 마디로 중국에서도 어설프게 맞아서 그리 지랄을 했던 것이었다. 아예 반항도 못하도록 얻어맞았으면 자기들을 때린 중국 경호원들을 찬양하는 기사를 써주었을 것이다.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설득력이 있다. 사람이 아닌 것들을 사람취급하는 것도 못할 짓일 수 있다.


정말 대단하다. 대우하면 게긴다. 언론이라고 예우하면 더 언론의 양심이고 사명이고 벗어던진 채 아예 난동을 피워댄다. 두들겨 맞으면 얌전해진다. 모욕하고 짓밟으면 유순해진다. 인간이 아니다. 우리집 고양이도 그렇게는 않는다. 같은 인간인 것이 창피할 정도다. 더러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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