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아무리 작아도 악이고 선은 아무리 작아도 선이다. 아무리 작아도 악이라면 행하지 말며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반드시 행해야 한다. 백 가운데 하나가 선해도 그만큼 더 선한 것이고, 백 가운데 하나가 악이라도 그만큼 더 악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연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반대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명박 정부나 문재인 정부나 같다. 노무현 정부나 박근혜 정부나 같다. 차라리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를 대신해서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을 때 어떻게 되었는가. 문재인 마음에 안 든다고 박근혜를 선택한 결과가 어떠했는가. 지금 문재인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의 모습은 어떠한가. 기자와 언론들은 또 어떠한가.


그냥 지지하지 않는 것이면 그럴 수 있다 여긴다. 모든 정책에 동의할 수는 없다. 모든 말과 행동을 지지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나도 입을 다문다. 경향성을 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정부가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게 이롭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 사회를 더 악하게 더 해롭게 만들 것인가. 그러니까 그 행동에 최소한의 경향적인 타당성을 읽을 수 있는가. 최소한의 납득할 수 있는 선의를 읽을 수 있고 단지 방향과 방법의 문제라면 그 부분에서 어차피 서로 맞지 않겠거니 한다. 그래서 내가 비판적 지지자다.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그래도 경향적으로 지지하려 한다. 방점은 '지지자'에 찍혀 있어야지 '비판'에 찍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것이 자유한국당이다. 바른정당이다. 국민의당이다. 그러면 최소한 주장의 근거에서 '정의'라는 말은 빼야 옳다. 그들 어디에 보편적으로 인정할만한 정의가 있었는가. 그들이 과거 한 말과 행동,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들을 보라. 국정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문재인 정부더러 불통이라는데 그래서 그 비교대상이 저들이라면 참 슬픈 것이다. 하긴 난 원래 인간의 이성을 그다지 믿지 않는 편이다.


사실 젊은층에서는 정치를 상대적으로 감성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기는 하다. 그래서 1987도 가능했다. 과연 당시 거리로 쏟아졌던 대학생들 가운데 얼마나 자신들이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을까? 막연한 정의다.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우면 틀리기 쉽다. 괜히 복잡하면 함정에 빠져들게 된다.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가 딱 그런 상태였었다. 그래서 변절도 쉬웠다. 그 순수한 선의를 간직한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선하고 정의롭다. 그러니까 직관적으로 지금 정부가 하는 정책이나 행동들이 마음에 안 든다. 다연하다. 그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젊은 층의 요구에만 구애되어야 하겠는가.


언론의 역할이 크다. 그래서 보수언론이 아직도 큰소리를 치며 행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간극을 메워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텐데 노무현 정부나 지금 정부나 언론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너무나 순수하고 고결한 한겨레와 경향 등 진보언론은 어차피 이명박근혜나 문재인이나라는 순백의 논리로 무장한 상태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직관적인 정의와 정부의 현실적 판단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지금 정치지형에서 젊은 층의 이탈은 필연이기도 하다. 그들의 문제인식이 이명박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더구나 불과 2년 전도 당장 한 달 전에 비하면 너무 멀고 기억도 희미하다.


그래서 과연 대안이 무엇인가. 누구를 대안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러니까 그 기준이 무엇인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인가. 오히려 너무 선명해서 명확하다. 반대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과연 누구인가. 엄중한 시절이다. 이제 겨우 저들의 잘못을 묻고 있다. 진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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