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면서 탈민족은 아예 당위가 되었다. 어차피 민족이란 허구다. 민족이란 실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민족을 전제한 모든 논리와 주장은 허황된 것이다. 마땅히 이를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 대상이 바로 일제강점기였다. 다수의 진보지식인들이 하필 서울대 출신인 것도 있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학파의 주장도 비판없이 받아들인다. 일제의 침탈과 수탈은 민족과 마찬가지로 환상이다. 민족이 없는 이상 일본인이라는 민족에 의한 조선인이라는 민족에 대한 침략과 억압과 약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려 애써 일제강점기에 대해 일본의 편을 든다. 심지어는 일제강점기가 계속되었다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서 보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말했듯 민족은 허구니까.


그 관성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된다. 어째서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을 꺼리고 거부감까지 가지는가. 민족에 의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한 만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약탈이고 억압이었다. 남성이 죄인 것이지 일본이 죄인 것은 아니다. 애써 일본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당시 조선의 남성들에게 그 대부분의 책임을 지우려 한다. 반성해야 하는 것은 조선의 남성들이고 지금의 한국의 남성들이지 일본이라는 국가나 민족은 아니다. 과거 이영훈이 일본의 사과나 반성보다 한국인 스스로의 성찰을 주장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동의했던 것이 바로 이들 진보 탈민족주의자들이었다.


원래 진보란 학벌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치 뒷골목 양아치들이 그렇듯 서로의 족보를 읊으며 관계를 설정한다. 그렇게 그들의 사상은 유전된다. 그들 사이에서 행세하려면 그런 흐름에 거슬러서는 안된다. 차라리 자기들 안에서 바보가 되더라도 미친 놈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신 그것이 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놈으로 여겨진다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한때는 그래도 진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최소한 선진국에 의한 제 3세계에 대한 직간접적인 약탈들에는 분노하더라도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침략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침략자라 분노하더라도 일본제국주의는 미개하던 조선을 근대화시킨 은인이다. 참고로 여기에는 개신교도 한 몫 낀다. 개신교의 선교가 공식화된 것이 조선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진 이후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주로 개신교를 전도했던 것도 대부분 일본에 우호적인 미국의 선교사들이었다. 한국에서 개신교를 자유롭게 전도할 수 있도록 한 것만으로도 일본제국주의에는 공이 크다. 문창극이 괜히 교회에서 그런 연설을 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새삼 생각났다. 그 이후로 진보라는 인간들 - 특히 먹물냄새 풀풀 풍기는 근처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뭐 그리 아는 건 많은지. 말도 많다. 패거리의 단합도 상당하다. 무엇이 문제인가도 자신들끼리 합의해서 결론지어 버린다. 오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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