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안철수가 하는 말들을 가만 듣고 있으면 역시나 프로그래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는 기술자다. 엔지니어. 정치를 오로지 기술적인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썰전'에 출연해서 자신의 '새정치'에 대해 해명한 부분. 구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새정치다. 틀린 코딩을 하지 않는 것이 바른 코딩이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어째서 안철수가 하는 말들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가. 안철수가 똑똑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알고자 하면 알 수 있고 만들려 하면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과연 그 주체인 안철수가 리더로서 적합한가 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은 분명 옳고 타당한데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을 때도 그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치란 기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사회를, 국가를 이끌어갈 리더라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용인술과 처세술이다. 사실 그것이 바로 정치 그 자체이기도 하다.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 되면 사장의 프로그램 실력은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프로그램은 굳이 자기가 아니더라도 고용된 직원 가운데 더 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만들고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지만 그런 과정 역시 사장이 직접 챙겨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 직원들과 공유하고 최선의 상태에서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경영이기도 하다. 회사 안은 물론이고 외부와도 적절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함으로써 효율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매순간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라고 회사 안에는 여러 부서가 있고 전문인력들에 맞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일들을 한다. 그런데 정작 프로그램 오류나 고친다고 중요한 일을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프로그래머라도 회사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바로 리더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이 정치인 것이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함께 하고자 하는가. 주위에 누가 있는가. 그리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더구나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한 권력이 주어지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의 지근에 누가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이 장차 새로운 정부의 요직에 앉게 될 것이고 중요한 업무들에 투입될 것이다. 그만큼 크고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국민의당을 본다. 국민의당에서 그동안 안철수가 해 온 일들을 본다. 국민의당의 다수와 안철수가 어떤 관계인가를 살피게 된다. 과연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고 국민의당이 여당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때 안철수는 그들을 어떻게 다루고 관리할 것인가.


한때 기세등등하던 이재명이 결국 발목잡힌 것도 바로 이런 주위에 대한 평가 때문이었다. 이재명을 둘러싼 면면에 대한 불신이 이재명의 몇몇 발언과 더불어 민주당의 기존 지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 이재명이 지금의 처지로 내몰린 이유가 되고 있었다. 안희정은 그에 비하면 주변관리를 아주 잘 한 경우다. 문재인 만큼이나 안희정은 자신의 주변으로 인해 큰 문제나 우려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철저히 믿고 쓰는 자기 사람이 있으며 그들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철저히 관리한다. 그러면 안철수는 어떠한가.


나만 잘하면. 내가 정책만 잘 짜서 제대로 실천할 수 있으면. 이재명도 사실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일개 자치시와는 복잡성부터가 다르다. 그 이상의 이해당사자들이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는데 대통령이 하자고 한다고 그대로 따르는 경우란 얼마나 될까. 괜히 문재인이 일자리공약을 발표하면서 공공부분을 우선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부문은 정부에서 나서서 직접 손 쓸 수 있는 부분이다. 사기업은 단지 기존의 법을 개선하든 강화하여 정해진 룰 안에서 행동하도록 강제할 수밖에 없다. 고용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손봄으로써 결과적으로 고용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이런 것이 국정의 경험인 것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선의로 하자고 나서도 당사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가 안희정은 적대하고 있는 보수진영에 대해서도 손을 내민다. 개혁에 협력만 해주면 기꺼이 그들과도 손을 잡겠다.


알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내가 혼자 옳고 바라도 결국에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 많은 이해주체들을 자신의 캠프로 끌어들인다. 얼핏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별별 분야의 사람들까지 모두 영입해서 자신의 캠프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다양한 이해주체들을 조율하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을 내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누구와 함께. 그리고 무엇을. 그 자체로 이미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이 된다. 그러면 안철수는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해나가려 하는가. 그의 국민의당은 그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공허한 것이다. 결국 안철수 하나밖에 없다. 안철수 자신 뿐이다. 그래도 충분하다. 기술자라면. 단지 기술적인 문제만을 해결할 것이라면. 코딩 하나 오류난 것 바로잡는 것이야 혼자서 해도 된다. 하지만 요즘은 여러 모듈을 모두 살피며 오류를 잡아내려면 철저한 분업과 협업이 필요하다. 혼자서 골방에 앉아 v3를 만들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난 것이다. 흔히 과거의 성공에만 사로잡혀 사는 것을 꼰대라 부른다. 혹시나 그런 것은 아닌가.


못하지 않으면 잘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하지 않으면 잘하는 것도 아니다. 리더란 그런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한 나라를 이끌 리더라면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새정치는 미래여야 한다. 과거여서는 안된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마저 스스로 알지 못한다. 그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그의 주위를 본다. 그가 서있는 곳을 본다. 너무 분명해서 굳이 더 말할 것도 없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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