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권위와 개인의 권익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전자를 우선하는 경우 공공의 규범이란 반드시 지키고 따라야 하는 명령으로 여겨진다. 그 의도까지 깊이 헤아려 결코 거스르지 않고 철저히 복종해야만 한다. 하지만 후자를 더 중시한다면 공공의 규범이란 가이드이며 수단이다. 이 이외의 행동에 대해서는 자기가 알아서 책임지고 마음대로 해도 좋다. 더불어 주어진 룰 안에서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도 허락된다.


어차피 민주당의 대선후보경선은 완전국민경선으로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원 이외에 특정하지 않은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이번 경선규칙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것인가. 그래서 이재명이 바보라는 것이다. 당 밖에서 외연을 넓히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정작 자기 당의 지지자들에게 먼저 싸움을 걸어 버릴 건 무언가. 나를 지지하지 않는 당원과 지지자는 인정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당 밖에서 지지자를 모으려 애쓰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먼저 편을 가르고 나누고 싸우고, 과연 그런 정치인에게 나라의 중요한 책임을 맡길 유권자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말한 바 있었다. 안희정이 무척 영리한 선택을 했다. 굳이 문재인이 먼저 차지하고 들어앉은 중원을 다투지 않는다. 민주당의 권리당원과 지지자가 아닌 경선규칙이 허락한 당 밖의 또다른 유권자들에게로 눈을 돌린다. 당장 보수진영에는 문재인과 맞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할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반기문이 대안이었다가 그마저 스스로 물러나고 난 뒤에는 황교안에게 눈을 돌렸지만 어떻게 봐도 문재인에 비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신이라면 문재인을 꺾을 수 있다. 문재인의 그늘이 너무 큰 탓에 문재인과 겨룰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머지 모든 것들을 가려버리고 만다. 문재인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 잘하면 문재인이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여기에 적극적인 메시지로 유혹까지 하고 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보수와도 연정할 것이다. 지금 심판의 대상이 되어 있는 보수정당과 정치인들과도 손을 잡을 것이다. 보수유권자들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경선에서 이겨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이 정치니까. 하고 싶은 정치가 있다. 현실에서 직접 자신의 힘으로 이루고픈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자면 먼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 밖의 나머지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생각한다. 먼저 자신이 바라는 정치를 할 수 있는 힘부터 손에 넣고 그 다음 일은 나중에 차근차근 해결하면 된다. 권력의지라는 것이다. 안희정은 진심인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을 찾아서 그쪽에 모든 노력을 투사한다. 도박과도 같다. 만에 하나 성공하면 자신은 민주당의 대통령후보가 되어 장차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정치인인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진정으로 목표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며 수단인 것이다. 전략을 위한 전술인 것이다. 그래서 안희정이 경선에서 문재인을 이기고 대통령에까지 당선된다면 정치인으로서 안희정이 뛰어난 것이다. 그 정도 수완과 결단력이라면 대통령이 되어서도 수많은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관철해낼 수 있다.


물론 나는 안희정의 주장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노무현도 한 번 지지를 접고 그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고 나니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린 적 없는 것이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나와 너의 구분이 명확하다. 아군과 적군의 구분 역시 매우 분명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후회란 없다. 지금 내가 틀리다 여기고 있는 이들에게까지 관용의 손을 내밀려 한다.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려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정치인으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는 자세 만큼은 높이 인정한다. 정치인이란 이래야 한다. 유시민이 안희정과 같은 집요합과 유연함을 가졌다면 벌써 2012년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문재인도 가지지 못한 안희정만의 장점이다.


어차피 같은 식구라 생각한다. 문재인도 100% 만족하지 않기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지간한 정도의 오차는 그냥 웃으며 넘어간다. 더 정치를 잘한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도 더 역할을 잘할 것이다. 우직한 뚝심의 문재인과 교활할 정도로 냉철한 전략가 안희정의 싸움이랄까. 누가 이기든 결과는 같다. 모두 문재인이고,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인력과 자원들이 민주당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을 등에 업을 것이다.


이미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문재인의 대세는 확정이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면 민주당 지지자 밖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을 알았고 실천에 옮겼다. 그것도 절묘하게 오해하기 쉬운 말들로 제대로 유권자들을 낚았다. 나쁘지 않다. 정치는 기술이기도 하다. 완전국민경선의 최대수혜자다. 역선택이든 뭐든 더 많은 표를 얻는 쪽이 대통령후보가 된다. 그래서 진다면 민주당 지지자의 문재인에 대한 지지가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재미있어진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런 것이 경선룰을 정하며 내세웠던 흥행이라는 것일 게다. 전혀 예상도 못했던 후보가 나타나서 급추격해서 문재인을 위태롭게 만든다. 그렇다고 머리끄댕이 잡고 진흙탕을 뒹구는 네거티브가 판치는 것도 아니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로 자신의 장점을 드러낸다. 문재인의 약점을 공격한다. 이런 게 바로 정치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진짜 정치를 보고 있다. 결과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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