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당시까지만 해도 노무현의 기자실폐쇄에 대해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이구나 부정적으로 여겼었다. 당연하다. 청와대에는 기자실이 있어야 한다. 기자실에 기자들이 상주하며 국정전반을 살피고 비판하는 한 편 진실을 국민들에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자실이 사라지면?


그런데 이제야 이해했다. 기자실이 어떤 의미인지. 청와대 기자단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특권이다. 언론인에게 있어 하나의 특수신분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언론인 사이에도 층위가 생기고 그 층위를 유지하기 위한 동기와 목적들이 생겨난다. 한 마디로 유착이 생겨난다. 당장 이명박근혜정권 당시 언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노무현 정부에 가혹하던 한겨레와 경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청와대 기자라는 자신의 특권적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정부관계자와 유착한다. 더 정확히 눈치를 본다. 혹시라도 자기가 떨려나가지는 않을까. 자기가 더이상 청와대 기자로 있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정부 관계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쓰라는대로만 기사를 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기 발로 뛰며 취재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기본조차 망각하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이 저리 날뛰는동안 기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명박근혜정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어느 기자가 직접 취재해서 진실을 밝히고 세상에 알리고 있었는가. 그런데도 이제 대세가 바뀌니 잘났다고 기자입네 행세하고 있다.


사실 한겨레와 경향이 참여정부에 토라진 이유 가운데는 운동권과 민주화의 정파 외에도 이 기자실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한겨레와 경향도 조중동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청와대에 상주하면서 정부와 유착하여 특종을 물고 한 편으로 기사를 통해 국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그러니까 기자실 폐쇄에 그리 광분했으며, 기자실을 유지한 이명박근혜 정부에는 순한 개처럼 꼬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애완견은 결코 사냥같은 건 하지 못한다. 주는 먹이만 받아먹으며 길들여진 개들은 사냥이라는 본능마저 지옥이고 저주다. 버려진 강아지들이 도시에서 과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보라. 기자가 개가 된다. 충실한 애완견이 된다.


이제는 인정한다. 기자들을 언론인 취급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기자들의 정권의 파트너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멀어지는 것이 가까워지는 것보다는 낫다. 최순실이 가르쳐주었다. 노무현은 당시 옳았다. 내가 기자놈들을 모르고 있었다. 한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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