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화폐로 쓰인 것은 아직 상거래가 일반화되기 이전의 한정된 시기 정도였었다. 사실 인류라 상거래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도 상당기간 동안 그 주된 형태는 물물교환이었었다. 금은 물물교환을 하기에는 이동거리가 너무 멀거나, 혹은 교환할 재화의 가치를 보다 확실하게 계량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했을 때, 보증하는 주체가 없어도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거래수단으로써 주로 사용되는 편이었다. 확실히 항아리 100개 싣고 다니는 것보다 팔아치우고 금으로 바꾼 다음 그에 해당하는 포도주를 다른 지역에서 사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는 하다.

 

오히려 상거래가 일반화되면서 화폐로서 금의 비중은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으니, 당연한 것이 금이란 것이 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금속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일찍부터 은을 화폐의 단위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나마 금보다는 그래도 흔하다는 은조차도 중국 안에서만 조달해 쓰려니 한계가 분명해서 명말에 이르러서는 세금을 내려 해도 은을 구하지 못해 내지 못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 당시 조선을 찾은 사신들마저 어떻게든 부족한 은을 확보하려 온갖 패악을 부렸을 정도이니 그 사정을 알 만하다. 조선에서도 구리가 부족해서 기껏 구리로 돈을 찍어내봐야 오히려 그 돈을 녹여 구리로 물건을 만들어 쓰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화폐의 가치가 너무 높아서 정작 거래수단으로 쓰이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 말 유럽에서는 상거래의 발달로 금의 수요가 늘어나자 정작 금을 구하지 못해 물물교환에 나서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하마트면 화폐경제 자체가 무너질 뻔한 위기도 겪고 있었다. 당시 봉건영주들도 대부분 세금을 현물이 아닌 금화 등의 화폐로 거두어들이고 있었는데 화폐의 수량 자체가 한정되어 있어 억지로 화폐를 구하려면 그만큼 더 많은비용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차라리 현물로 내는 것이 낫다 싶을 정도로 농민들에게 크게 부담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은 잉카를 멸망시키고 얻은 금을 죄다 녹여서 금화로 만들어 유럽에 유통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금이 있었기에 유럽의 화폐경제는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도 모든 세금을 일정하게 은으로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포르투갈의 상인들이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은을 사들여 유통시킨 덕분이었다. 이후 일본의 은광이 고갈되자 멕시코의 은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이 은광을 개발하지 않을 것을 실책이라 주장하기도 하는데 당시 은이 부족하던 중국의 사정상 조선에서 은광이 개발되고 은이 생산되었을 경우 발생할 일들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은광을 모두 막아둔 상태에서도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은 내놓으라고 온갖 지랄을 해댔었는데 과연 은광이 있었다면 조선의 역량으로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영향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에서도 숙종 연간에야 겨우 화폐가 본격적으로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효종 연간 조선에서 구리광산이 개발되었던 영향이 컸었다. 그 전에는 필요한 구리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었기에 화폐로써 구리의 가치가 실제 구리의 가치에 밑도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차라리 구리를 녹여서 현물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편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조선에서도 구리가 생산되기 시작했으니 구리의 가치가 일정 이하로 유지되며 화폐가 안정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다. 이때 유통되기 시작한 상평통보가 일제강점기까지 계속 쓰이면서 엽전이란 비칭의 어원이 되었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쓰일 수 있는 이유는 그 가치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이 여전히 금본위제를 고수하고 화폐의 유통을 일정 수준으로만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달러를 필요로 하는 나라는 넘쳐나는데 정작 그 달러가 한정되어 있다면 결국 그 가치는 오를 수밖에 없다. 장차 가치가 크게 오르게 될 달러를 거래수단으로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달러를 미친듯이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는 만큼 뿌려서, 혹은 미국이 아무리 달러를 뿌려도 어떻게든 그 가치를 유지하 위해 세계의 정부들이 나서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근대의 화폐제도다. 이전의 화폐가 자연화폐로써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면 근대의 화폐는 확실한 주체들에 의해 그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받는다.

 

그래서 화폐는 어지간히 경제가 막장이 되지 않으면, 즉 관리의 주체가 그 역량을 잃지 않으면 가치가 크게 오르도 내리는 경우가 거의 흔치 않다. 환률이 급락했네 급등했네 할 때도 보면 거의 몇 % 안에서 움직이는 정도다. 아니면 화폐의 가치에 대한 신뢰가 없어 상거래에 쓰이지 못한다. 기축통화란 바로 그런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그런 신뢰가 있는 통화를 가리킨다. 그러면 관리할 주체가 없고 보증도 없는 가상화폐는 어떨까?

 

일론 머스크가 가상화폐로 자기회사 차를 살 수 있도록 하겠다 했지만 실제 산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의문스러울 뿐이다. 가치가 오르고 있는 게 보이는데. 가치가 오르고 있다면 더욱 장래의 가치를 기대해서라도 화폐로서 쓸 수 없고, 가치가 떨어진다면 역시 앞으로 가치라 떨어질 것이 보이므로 거래수단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아무도 없다. 정부는 개입하지 말라. 정치권은 개입하지 말라. 그러나 결국 가치가 하락하면 그로 인한 손실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대신 책임져달라. 그런 일 벌어지지 말라고 이미 달러가 있고 원화가 있고 위안화가 있는 것이다. 그를 부정한 순간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에 한 번은 크게 급등하고, 한 번은 크게 급락하고, 그동안 반복되어 온 과정이었었다. 사실 그마저도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그러면 그동안 돈을 번 사람은 누구고 돈을 잃은 사람은 누구인가. 현실의 화폐처럼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나설 주체도 없기에 오히려 더욱 그런 투기성을 강화해서 더 큰 이익을 얻으려는 놈들이 지배하는 판이란 것이다. 더구나 그 가상화폐를 채굴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더 많은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동원해야 한다. 아마 대부분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이 반기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금보다도 더하다. 금은 그나마 일정한 가치를 계속 유지하지만 가상화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오르도록 처음부터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채굴의 난이도가 계속 높아질 것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는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화폐로 쓰기에는 한계가 뚜렷한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그 밖에 가상화폐에는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가치를 부여하니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 사이에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언론까지 나서서 부추기며 헛된 바람을 불어넣는다. 바로 거품이란 것이다. 폰지사기에 다름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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