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진심으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빨갱이라 말하는데 전혀 아무 상처도 입지 않는단 것인가. 세상에 빨갱이보다 심한 욕이 어디 있다고 정치인이 그에 충격받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때 알았다. 저쪽 정치인이나 지지자들이 빨갱이라 말하는 것은 그것이 실제 충격이 되고 상처가 될 것이라 믿고 하는 공격이란 것을. 그런데 솔직히 이쪽 지지자 가운데 빨갱이라 말하면 짜증이나 좀 나지 크게 신경쓰는 사람이 있긴 하던가.

 

그래서 또 한 편으로 당황했던 것이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대해 전혀 잘못되었다거나 부끄럽다거나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사자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의 댓글공작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양승태의 사법농단도 그만한 위치에 있으면 그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긴 아마 여기서도 오래전에 한 번 그에 대해 썼던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 보수라는 가치의 근본은 사유화에 있다고. 사유재산을 넘어 공적인 권력과 지위와 명성까지도 전적으로 사유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황교안은 군을 찾아가 국방부의 지시까지도 따르지 말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군이 가진 힘은 군 자신이 사유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바른 세계다.

 

그러니까 저쪽 지지자들에게 이명박이나 박근혜 가지고 공격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순실이 잘했다며 두둔한다. 최순실 정도면 오히려 문재인보다 더 잘했노라고 뭐가 문제인가 반문하기도 한다. 문제삼는다면 오히려 최순신의 출신이다. 최순실의 성분이다. 즉 그만한 자격을 가진 인물인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지 공식적인 지위 없이 배후에서 권력을 농단한 사실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아마 최순실이 좋은 대학 나와서 꽤 그럴 듯한 스펙을 갖췄다면 2016년 당시 보수지지자 가운데 박근혜 탄핵에 동의하는 경우는 더욱 줄었을 것이다. 그게 문제지 대통령이 자신의 지인에게 권력을 나누어주고 의견을 구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따라서 어찌되었든 최순실이 잘했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즉 나이와 상관없이 사고방식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국정원장과 다른 일 없이 사적으로 어째서 만나는가. 기자란 원래 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고보면 드루킹 재판에서도 판사는 지지자가 아무 조건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실을 문제삼고, 또한 정작 문제가 되어야 하는 부분은 문제가 아니라 말한다. 끝없는 평행선에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원래 정치이야기는 얼굴 마주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것인가.

 

당연히 정치인은 뒷돈을 챙기는 것이고, 당연히 권력을 가지면 그것을 사유화하려 하는 것이고, 따라서 오히려 사유화한 권력을 화끈하게 잘 써먹는다면 그것이 더 훌륭한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노무현 전대통령을 비판하며 흔히 하던 말이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화끈하게 밀어붙일 줄도 알아야지. 단호하게 결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리저리 묻고 양보하며 타협하는 모습이란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소통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소통이란 둘 중 하나다. 내 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거나, 내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중간은 없다. 그래서 영영 이 정부와도 그들은 평행선이다. 그들이 보기에 지금 정부 역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박근혜와 다를 바 없는 수많은 비리와 부정과 불법으로 가득한 정부인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서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상대가 아플 것이라 생각했던 지점이 전혀 아프지 않고, 상대가 당황할 것이라 여겼던 지점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자신이 비정상이라 여기는 것이 상대에게는 정상이다. 자신이 정상이라 여기는 것은 상대에게 비정상이다. 바로 이웃에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발견이랄까. 어째서 자유한국당은 저리 막나가는가. 언론은 어째서 저런 말도 안되는 기사들을 쏟아내는가. 그들이 평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 온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들이 속한 세계가 그렇고 그들이 딛고 선 세상이 그렇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일 수 있는 것이다. 정의일 수 있는 것이다.

 

기레기라는 말을 취소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냥 솔직한 것이다. 그냥 정직하게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바를 기사로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서로가 속한 세계가 다른 것이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그들의 세계는 자유한국당의 그것과 일치하고 있다. 하긴 지난 9년 이전에도 무려 수십년을 이 사회를 지배해 왔던 이들이었으니. 너무 성실해서 차마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정치인이든 언론인이든 자칭 지식인들이든. 새로운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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