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한미간 정상의 대화를 열람할 수 있을 정도면 그래도 외교관으로 상당한 경험과 실적을 쌓았을 터였다.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의 구분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더구나 다른 나라와의 외교에 있어 공개되지 않은 정상간의 대화가 유출되어 정쟁의 도구로 이용될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단지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배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중요한 비밀을 별 경계심도 없이 흘리고 있었다.

 

하긴 당연할 것이다. 아니 당장 언론들마저 대부분 그동안 그토록 강조하던 한미동맹에 해가 될 수 있는 행위를 저지른 강효상이나 그를 감싸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차라리 그런 비밀을 유출시킨 정부를 비판한다. 강효상과 결탁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의 명백한 잘못에도 공방으로 만들며 그 책임을 희석하려 한다. 정확히 자제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아예 잘못도 아니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니까. 대한민국의 기득권이자 주류니까. 이승만으로부터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져 온 대한민국 정통성의 계승자일 테니까.

 

자유한국당은 얼마든지 법을 어겨도 된다. 그 법을 만든 것이 자유한국당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아무리 윤리와 도덕, 보편적 가치와 정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해도 그마저 모두 자유한국당이 대한민국과 함께 만든 것이기에 얼마든지 그래도 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막말마저 그래서 막말이 아니게 된다. 확실히 민주당에 대한 보도와 자유한국당에 대한 보도는 심지어 진보언론마저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에게는 너무나 큰 잘못도 자유한국당에게는 사소하다. 평소 그래서가 아니다. 그래도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란 어쩌면 그들에 의해 탄생한 그들의 사유물이다. 건국절논란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박근혜가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었겠는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대통령이었기에 딸인 박근혜도 대통령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나라였기에 딸인 박근혜가 그 나라를 물려받아야 했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보수지지자들이 박정희를 아예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여기고 있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개신교에서마저 박정희에 대한 숭배는 아예 예외로 여기고 있다. 무엇과 닮았느냐면 일제강점기 천황에 대한 숭배와 닮아 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이다. 저들에게 대한민국이란 피로 계승되는 봉건국가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의 국정농단도 잘못이 아니고 최순실의 존재마저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마저 죽은 학생들이 잘못인 것이다. 죽은 피해자들로 인해 나라의 주인인 박근혜가 곤란해지고 말았다. 그것이 보수들의 머릿속인 것이다.

 

그래서 강효상의 간첩짓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래 자유한국당의 나라였다. 자유한국당의 나라여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었어도 공무원들에게 충성의 대상이란 현정부가 아닌 자유한국당이어야 한다. 외교관도 그래서 아무 죄의식없이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기에 강효상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했던 것이었다. 아마 기재부 공무원 가운데서도 그런 식으로 심재철에게 기밀문서들을 넘기고 있었을 것이다. 정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 충성하고 집단에 충성하고 조직에 충성한다. 그 정통성에 충성한다. 대한민국은 이승만으로부터 이어진 보수의 나라이고 그들만이 정당한 지배자여야 한다. 그래서 언론의 비판도 정부나 여당에 대해서와 크게 다른 결을 보인다. 차라리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지, 최대한 양보해서 공방을 만들지 강효상과 자유한국당을 정면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KBS 시사프로그램에서조차 그게 뭐 그리 문제냐는 냉정한 태도가 오로지 강효상과 자유한국당을 위해 발휘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주소인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의 실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론이 그토록 보수들에 관대한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미 한 몸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정의다. 정통계승자에게 다시 나라를 돌려주는 것. 정당한 계승자에게 다시 지배를 돌려주는 것. 자못 비장하기조차 하다.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다. 차라리 진보라면 자유한국당의 치세에서 저항언론이 되는 것이 옳다. 상식이다. 그들의 정의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길들여져 왔고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것이 또한 자신들이 성공하고 출세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규준이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승리가 곧 자신들의 승리다. 아니라 생각하는가.

 

과연 그토록 강조하던 한미동맹을 흔들 수 있는 강효상의 범죄행위에 대해 언론을 멀마나 강하게 비판할 것인가. 아니 비판이라도 제대로 할 것인가.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제대로 보도라도 하려 할 것인가. 사실관계만 나열하는 것은 다만 아직 변명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보도의 양이나 정도를 보면 이렇게 사소하게 넘어갈 일인가.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 당연하다. 언론이든 지지자든 정치인들 자신이든. 한심한 꼬라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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