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초기기독교에 있어 가장 큰 적이라면 - 아니 오히려 가톨릭보다도 더 기독교의 주류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지주의란 것이었다. 다른 말로 비의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는 수많은 상징과 숨겨진 뜻이 있고 그것을 소수의 사제들만이 알고 선택된 이들에게만 그 진실한 의미를 전한다. 그런데 이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 아닌가.

그래서 가톨릭이다. 보편적인 교리란 이들 영지주의 사제들이 저마다 독점하며 설파하던 제각각의 비의에 대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교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숨겨진 비유나 상징같은 것 없이 오로지 문자로 기록된 성경의 내용 그대로 믿고 받들며 따라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성경의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당시 로마 황제의 정치적 목적에 충실하게 황제가 주재하는 주교회의에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초기교회란 로마 황제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조직이었고 이는 로마교회가 동로마황제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교황청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바로 이같은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황청 중심의 성경해석에 반발하며 나타난 것이 이른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었다.

문제는 교황청의 성경해석 독점에 반발해서 독립해 나오는 과정에서 역시나 종교개혁을 이끈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해석이 더해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종교지도자들마저 새로운 종파를 만들 때마다 새로운 해석을 더하게 되었으니 기독교에는 다시 서로 다른 수많은 해석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수많은 해석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진짜이며 성경의 내용에 부합하는 것인가. 그런 가운데서 심지어 자기가 신에게서 계시를 받았다며 성경의 숨겨진 의미와 진실한 해석을 자기가 알고 있음을 주장하는 이들마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프로테스탄트라는 자체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것이란 주장마저 나오고 있겠는가.

내가 성경을 안다. 내가 진실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 그러므로 나를 믿어야 한다. 나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개신교 목사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여전히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이고, 그래서 악마숭배라며 비판할 때도 흔히 근거로 드는 것이 이들 영지주의와의 연관관계였다. 그런데도 자신만이 진실한 신의 뜻을, 성경의 의미를 알고 있다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성경보다, 예수보다, 어쩌면 여호와보다 목사인 자신을 더 믿으라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겠는가.

어째서 초기기독교의 주교들이 그토록 영지주의를 증오했고 아예 기독교의 역사에서 지우고자 노력했는가 최근 더욱 깨닫게 된다. 교리를 독점하면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고대 지중해세계에서 유행했다던 비의주의의 기괴한 의식들까지 떠올려보면 그래서 당시 가톨릭의 사제들은 그렇게 영지주의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있었구나. 신의 뜻은 모조리 성경에 그대로 들어 있는데 또다시 신과 만나겠다고 자신을 학대하고, 혹은 정상을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것은 과연 신을 따르는 것인가. 아니면 신을 배반하는 것인가.

성경도 예수도 여호와도 아닌 목사를 쫓으려는 최근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서. 목사 자신의 신을 대신하려는 최근 개신교의 모습들을 보면서. 심지어 아파트단지보다도 더 커 보이는 거대한 교회란 현대의 바벨탑은 아닌가.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사단인가. 무엇이 선이고 악이고 무엇이 진리인가. 원래 기독교가 가고자 했던 길은 무엇일까. 어째서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었는가. 목사들과 오로지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다수의 신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깨달음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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