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주변에 어느 병원에서 경비원을 구하는 공고를 낸 적 있었다.


"40대 이상 기혼자"


당연히 남성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모두가 젊은 남성만을 구하는 와중에 하필 40대 이상이고 더구나 기혼자여야 한다.


그런데 남성 입장에서 이런 조건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진다. 부양할 가족이 있으면 남성은 어지간해서 쉽게 일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좆같고, 아무리 개같고, 그래서 매순간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러나 부양할 가족이 있으면 대부분 남성은 끝까지 견디고 버티며 지금의 일을 지키려 한다.


회사에서 여성보다 남성을 더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에게 어쩌면 일이란 자아실현의 수단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반면 남성에게 일이란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자식들, 부모님까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방법이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가족을 먹여살리고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직장인 남성의 사망률은, 더구나 한창 일할 나이의 장년층에서 유의미하게 높게 나오기도 한다. 일단 시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하라고 하면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정도 돌보지 못하고 끝내는 자기 건강까지 해치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회사에 남아있으려 힘들어도 힘들다 안하고 괴로워도 괴롭다 않으며 필사적으로 주어진 일들을 해내려 한다. 그런 직장환경 자체가 문제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책임을 다하려는 남성들에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과연 부당한가.


한 마디로 막 굴리기 좋기에 남성을 선호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함부로 막 굴려도 전혀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기에 여성보다 남성을 더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한 편으로 여성할당제를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고위직에 여성이 늘어나면 그런 직장문화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아무래도 가정에 더 구속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라면 남성들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일하는 문화를 조금은 바꾸려 하지 않을까. 그 혜택을 남성들도 함께 누린다면 그래도 조금은 사회가 나아지지 않을까. 회사에서의 일 뿐만 아니라 일 끝나고서도 별별 이유로 끌려다니는 현실을 바꾸려면 조금은 얌체같은 여성들의 힘도 필요하지 않을까. 말했지 않은가. 나는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그냥 흔한 한남에 지나지 않는다.


사용자들의 남성에 대한 선호가 괜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곳까지 승진할 수 있는 것도 아무 이유 없이 그리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만큼 남성들이 일하는 직장환경이란 가혹하다. 아마 여성들 자신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일로써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아예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성과 경쟁하기 위해서 스스로 여성성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여성들은 또한 적지 않은 수가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까지 오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무엇이 문제인 것인가? 그냥 사회적인 인식의 차이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만드는가? 아니면 남성과 여성의 사회에 대한 태도가 그들에 대한 다른 인식을 보여주는가? 다시 말하지만 일 잘하는 여성은 오히려 남성보다 더 잘하기도 하고, 일 열심히 하는 여성들도 남성보다 더 악착같이 더 독하게 일을 하기도 한다. 성별에 따른 차이라기보다 사회가 강요하는 성역할에 따른 태도의 차이라 볼 수 있다. 과도기다. 그렇다면 대부분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신해 남성이 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을 나누어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긴 일단 책임지는 자리에 올려보고 요구해도 요구해야 한다는 말도 맞을 것이다. 그런 책임을 스스로 느껴보지 못한 채로 막연히 그럴 수 있다 말하는 것도 의미없다.


어찌보면 참 서글픈 것이다. 저 병원에서 경비원 구하는 공고가 꽤 자주 올라온다. 그만큼 자주 많이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저히 못견디고 그만둬야 할 정도로 일이 힘들고 어렵고 더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병원 입장에서도 그나마 책임감이 더 강한 중년의 가장들을 원하게 된다. 고작 남성이란 이 사회에서 이런 취급밖에 받지 못하는 것인가. 아마 인사담당자도 남성이기 쉬울 것인데.


물론 많은 여성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리 없다. 당장 성장하며 가장인 아버지의 등을 아들들과 똑같이 보며 자랐을 테니까. 가장의 책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남성이 사회적으로 강요당하는 책임의 무게에 대해서도. 다만 남성이 여성에게 그러하듯 여성 자신도 무감각해져 있다. 남성이 그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성이 그러는 것도 남성 입장에서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성평등이란 여성해방이 아닌 양성해방이다. 성인지감수성이 아닌 인권감수성이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고 배려이고 신뢰여야 한다. 남성이라고 함부로 대해도 좋은 것이 절대 아니다. 여성을 대하듯 남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조심하며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이번에는 남성들을 좀 욕하고 싶었는데 또다시 삘받아서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여성이라고 그런 책임을 아주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아들을 대신해서 남편을 대신해서 한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 가장들도 현실에는 넘치도록 많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것이다. 남성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개별의 사례가 아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방향성에 대한 것이라고. 그것이 논리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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