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알겠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노동관을. 경제문제는 어쩌면 안철수 자신의 말처럼 상당히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 구체적으로 무언가 나온 것이 없으니 판단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다만 한 가지 노동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히 보수적이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 무노동무임금.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당연하다.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돈받을 생각부터 한다면 그것은 도둑놈이다. 아니면 사기꾼이거나. 단, 전제가 붙는다. 이미 고용된 상태에서도 단지 일을 해야지만 돈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노동과 고용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노동과 노동자는 별개인가. 노동은 노동자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가. 사용자는 단지 노동자가 소유한 노동력을 필요한 만큼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용자는 단지 노동력을 소유한 노동자와 계약을 맺고 필요한 만큼 이용하는 것 뿐이다. 그로므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단지 자신이 노동자로부터 구매하여 사용한 노동력의 양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사용자로부터 받는 임금은 노동력을 소유한 자신에게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고용된 상태에서 노동력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노동자의 파업권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여전히 노동력은 노동자에게 배타적으로 소유되어 있다.


일한 만큼만 대가를 지불한다. 일하는 동안만 의미가 있다. 일을 통해 생산한 결과를 통해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이외의 시간들은 부정된다. 그 이외의 가치들은 부정된다. 일하지 않는 동안에도 노동자는 살아있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했어도 필요한 비용들은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은 사용자와 전혀 상관없는 노동자 자신의 문제다. 사용자는 오로지 자신이 사용한 노동력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불한다.


얼핏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당연히 임금이란 자신이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자신이 일한 만큼을 계량하여 비례하여 받는 것이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내려진 결론이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할 정도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게 결정된 임금수준이 다음 임금을 받기까지 최소한의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든 수준이다. 당장 내일부터 끼니를 걸러야 한다. 추운 겨울인데 난방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노동자가 소유한 노동력은 이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처음의 쟁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노동자와 노동력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노동자와 별개로 노동력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원구성이야 어찌되었든 이미 임기가 시작된 순간 그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다못해 4년의 임기 동안 아무것도 않고 집안에 누워만 있어도 그마저 국회의원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유권자들에게 인식된다. 개인이 아니다. 사인이 아니다. 그래서 공인이다. 숨쉬고 밥먹는 것조차 공적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는, 모든 행동들이 크든 작든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주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에 대한 대가다. 그만한 자격을 갖추었다 여겼기에 국민은 그들을 선택했고 따라서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 대가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원구성을 못했으니까. 국회가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아무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진정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가. 아무일도 않고 있는가. 하다못해 지역구관리라도 하고 있다. 다음 선거를 위해 당내 정치에도 한 발 담그고 있다. 그마저도 국회의원으로서 회의장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면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 한 표에 의해 법 하나가 가결되고 부결되기도 한다. 아무리 일 못하는 국회의원이라도 한 표는 한 표다. 자신을 찍어준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들은 회기와 회기의 사이 더 열심히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심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한다. 최근 국민의당이 공부모임을 갖는다며 호들갑떠는 모습이 때로 우습게 여겨지는 이유다. 굳이 당이 전면에 나서서 행사처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일상을 통해 이루어저야 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공부들을 안했으면.


공적인 업무만이 업무가 아니다. 여기적기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사람도 만나야 한다. 비공식적으로라도 필요하면 찾아가야 하고 친분이 없어도 만나야 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친인과 지인 등 인간관계 역시 소홀할 수 없다. 개인의 감정을 공적의 영역으로 끌고 오지만 않으면 된다. 공사의 구분만 확실히 할 수 있으면 상관없다. 그마저도 공인으로서 보다 주어진 책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이나 인간관계가 원망하지 못해서 생기는 손실도 결국 사회가 져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까지 철저히 관리해야만 한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잘해도 중간에 쓰러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지자가 바라는 정치가 있을 텐데 중간에 쓰러지면서 결국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을 배신하는 것이 된다. 다음 선거에서도 출마해서 당선될 수 있어야 한다. 더이상 국회의원이 아니게 되면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도 못하게 된다. 일을 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이다. 그 모든 것이 비용이다. 세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허투루 쓰는 것이 아니다.


결국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된다. 국회의원 역시 노동자다. 그렇게 간주해야 한다. 국민에 의해 고용된 선출직 노동자다. 국민에 고용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중요한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에게 지불되는 세비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들에 대한 것인가. 그 일들을 해야 하는  국회의원 자신에 대한 것인가.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필요없다 말하기 전에 먼저 국민 자신이 일 잘 할 것 같은 국회의원을 뽑으면 되는 것이다. 만일 잘못뽑았다면 다음에 제대로 잘 뽑아서 시키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않고 놀며 낭비하는 비용조차 잘못된 선택에 대해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다. 국회의원이라고 국민에 대한 일방적인 책임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국민 역시 유권자로서 엄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회의원도 공짜는 아니다. 이미 국회의원이 되었고 세비를 지급하기로 한 이상 그것은 약속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누구도 포기를 강제해서는 안된다.


열정페이다. 공짜로 일하라. 포기하며 일하라. 하다못해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수습기간에도 임금은 지급한다. 처음 입사해서 오히려 일을 배우는 동안에도 돈을 받으며 일을 배운다. 고용에 대한 당연한 책임이다. 국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가라고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물며 정당이다. 고용주가 아니다. 그냥 국회의원으로서 특정한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것 뿐이다. 노동자들도 같은 직종에서 다른 노동자보다 형편없이 적은 임금만을 받으면 비난을 받는다. 남을 생각지 않는다. 쟁점으로 삼는다. 더 큰 것을 노기는 사기이거나, 아니면 자각조차 없는 무지이거나. 어느쪽이든 최악이다.


그러고보면 정치혐오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자신이 뽑았다. 최소한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뽑히는 것을 보기만 하고 있었다. 유권자의 책임은 없다. 국회의원의 의무만 있다. 객관화한다. 대상화한다. 국회의원 역시 결국 자신과 전혀 다르지 않은 시민의 일원임을 잊는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 특별한 사람들을 기대한다. 항상 반복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다시 반기문이 그 대상이 되려는 모양이다.


아무튼 전혀 상관없는 것 같으면서 전체를 꿰어 보면 구체적인 윤곽이 나온다. 일을 해야만 국회의원인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하지만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일단 고용한 이상 먹이는 것은 사용자의 책임이다.


국회의원이 참 하찮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다. 일을 하지 않았으면 세비도 받아가지 못한다. 국회가 열려야 일을 하는 것이다. 원구성이 끝나야 비로소 일을 하고 세비를 받아갈 수 있다. 하물며 노동자들은. 무노동무임금이 원칙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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