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 인터넷은 아직 비주류에 머물러 있었다. 하는 사람들만 했다. 단지 인터넷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보통의 일반 대중과 다른 무언가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당연히 비주류로서 당시의 이른바 네티즌들은 사회의 주류에 도전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래서 유행하게 된 것이 바로 '엽기'코드였다.


엽기란 기성의 관습과 관성을 부수는 것이다. 기존의 인식과 사고를 부수는 것이다. 혐오스럽고 기분나쁠수록 그것은 옳은 것이었다. 당시도 차마 두려워서 클릭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유행처럼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었다. 김구라의 등장 또한 그런 연장에 있었다. 당시 기만적이고 권위적인 기성언론을 비판하며 상스럽고 저렴한 언어로서 인터넷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딴지일보의 한 컨텐츠로써 '김구라와 황봉알의 시사대담'은 시작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금기인 - 그것도 아주 지독할 정도의 욕설들을 공공연히 내뱉어가며 사회각분야를 씹어대는 방송은 그 가운데서도 열렬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인정한다. 나 역시 당시 김구라의 방송을 즐겨 듣던 애청자 가운데 하나였다. 아마 당시 인터넷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김구라의 열렬한 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후련했다. 통쾌했다. 아무도 그렇게까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입이 바로 간질간질한데 누구도 감히 나처럼 들을 욕해주지 않았었다. 불만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항상 불만은 넘친다. 그래서 여기 블로그에서도 내 글은 항상 표현이 거칠다. 세상에 불만이 많던 그야말로 아웃사이더를 위한 방송이었다. 그마저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반발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2002년의 대선은 어쩌면 그같은 인터넷 대중들의 뿌리깊은 비주류의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을 것이다. 인터넷이 대통령을 만들었다. 인터넷의 힘으로 마침내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인터넷은 비주류가 아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거치면서 과감한 정책적 지원과 투자로 고도로 발달한 한국의 인터넷환경은 인터넷이라는 자체를 대중화 보편화시켰다. 이제는 인터넷 없이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 그런 인터넷을 지배하고 주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신들 네티즌이다.


이제는 오히려 평가하는 입장이 되었다. 사회의 기성권력에 도전하던 비주류에서 어느새 대상을 평가하고 때로 응징할 수 있는 또다른 권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문희준과 타블로였다. 백만안티라고는 하지만 정작 그 가운데 자신들의 힘으로 문희준을 어떻게 해아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냥 놀이였다. 그냥 게임이었다. 그래서 더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비웃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것이다. 그에 비해 타블로의 경우는 타블로를 파멸시키겠다느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대중의 눈에 전과 전혀 다름없이 방송을 하는데도 꼰대라 불리게 된 김구라가 그 다라진 위사을 말해준다.


아니꼬운 것이다. 피곤한 것이다. 늬들이 뭔데 사실 일베를 만들어낸 것은 인터넷에서조차 어느새 권위를 앞세우기 시작한 일부 극성 네티즌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깨시민이라 말하기도 한다. 전과 하는 것이 전혀 다르지 않은데 이미 사회적 위치부터 전혀 달라지게 되었다. 실질적힌 힘이 그들의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그 힘이 실제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수의 힘으로 더욱 인터넷에서 자신과 다른 소수자들을 억압한다. 반발하여 예전 그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엇나가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엽기다. 혐오와 공포와 불쾌감이 기존의 관성과 인식을 부수는 쾌감으로 돌아온다.


과거와 똑같다. 일베에도 그것은 단지 놀이다. 무언가를 실제 어떻게 해보겠다는 일관된 의지가 없다. 공유하는 목표나 의식이 없다. 조롱하며 논다. 비웃으며 논다. 모욕하며 논다. 그런 자신들을 욕하는 것을 들으며 역시 계속해서 논다. 문희준을 욕하던 때처럼. 그리고 마찬가지로 당시 네티즌을 비웃던 기성의 권위들처럼 기성의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경멸함으로써 자신의 정의를 달성한다.


솔직히 일베와 2000년 초반 유행하던 엽기코드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그때 유행하던 것들 가운데는 당시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들마저 상당했다. 그리고 이제 일베가 인터넷의 주류가 된다면 이번에는 또다른 엽기코드가 일베에 도전장을 내밀게 될까.


물론 가치의 문제다. 정의의 문제다. 인간으로서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선 표현들도 적지 않다. 비판한다. 부정한다. 이 사회가 고유하는 보편의 정의를 부정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력이 바뀌기까지 기성의 정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틀렸다 여기지 않는다. 다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도전인 결국 반역으로부터 시작된다. 반역은 패역이다. 무도다.


문득 떠올랐다. 벌써 오래전 옛날이야기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김구라의 욕이 대중적 코드이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 불쾌해하고 혐오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다른 일반의 대중이 보는 그 모습은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하며 발전한다. 김구라는 스타MC로서 확실히 방송의 주류가 되었다.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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