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찍 진보의 선민의식, 정의당이 망한 이유

가난뱅이 2024. 5. 6. 01:27

8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은 또한 진보운동이기도 했었다. 당연한 것이 정치적으로만 민주화되었다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모든 국민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최소한의 평등이야 말로 국민주권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변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이 다시 진보운동에 자신을 내던지게 된 이유였다.

 

말하자면 진보운동이야 말로 민주화운동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전까지 인정하던 부분이었다. 김대중의 민주당은 사실 따지고보면 김대중 개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사당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당 시절부터 독재권력과 맞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 온 정통야당 민주당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사실 민주당의 주류는 이미 오래전에 김영삼과 함께 민자당으로 합류했던 터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이들도 김대중이 대통령 되겠다고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서 기존의 민주당을 깨는 과정에서 반발하여 신한국당으로 합류한 터였다. 김대중이 괜히 아무리 그래도 군사독재의 후신인 신한국당으로는 못가겠다고 자신을 찾아온 노무현을 우대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김대중이 영국에서 돌아와서 당을 만들었을 때도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새정치국민회의라는 근본없는 이름을 써야 했던 것이었다. 오죽하면 군사독재의 후신임을 알면서도 삼김의 구태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이회창을 지지하고 나섰던 민주화운동 세대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 지금도 이회창에 대한 민주개혁진영의 평가가 높은 또 하나 이유다.

 

그래서 김대중이 집권하고 나서 이전에 지리멸렬했었던 여러 진보정당들과 달리 민주노동당이 크게 약진하며 심지어 제도권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대중과 민주당은 민주화운동을 또한 진보운동이라 여겼던 이들에게는 상당히 기괴한 거물정치인 개인의 대권욕망이 낳은 괴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대중 자신도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고, 민주당에 소속된 정치인들 다수가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민주당이 탄생하는 과정은 개인의 욕망과 그에 기생하는 기회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김대중과 민주당이 대한민국 민주화와 진보의 지분을 가져가는 것은 찬탈에 다름 아니었다. 더구나 적통이라 할 수 있는 진보진영이 남아 있는 이상 그들은 정통을 벗어난 이단, 혹은 사생아에 지나지 않았다. 하물며 서울도 아니고, 서울의 명문대도 아니고, 제도권도 아니었던 노무현과 그 찌꺼기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김대중의 집권이 진보진영의 파이를 키웠다면 노무현의 집권은 진보진영의 우월성을 더해주었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서울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서울에 소재한 명문대였으며, 아니면 최소한 김대중과 김영삼 같은 거물과 함께하는 제도권 정치인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노무현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듣보잡에 지나지 않았었다. 노무현 집권 내내 가까운 진보주의자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하하고 멸시하는 말들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이유였다. 자기들은 어디 명문대의 어떤 석학의 최신이론을 줄줄이 외워 섬기며 진보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어디 근본도 없는 노무현따위가 대통령이 되어 개혁을 한다고 하니 우스운 것이다. 그래서 당시 민주노동당은 그래도 개혁과 진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아닌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하는 선택까지 하고 있었다. 차라리 보수적인 한나라당이 그래도 개혁적인 열린우리당보다 더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다.

 

비유하자면 집을 나가 성공해 돌아온 서자를 보는 적장자의 심리와 비슷할 것이다. 삼국지에서 원술이 무리수만 던지다가 스스로 자멸하고 만 것도 원소가 하북을 평정하고 큰 세력을 거느리기 시작한 무렵부터였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의협심도 있고 대인의 풍모도 있어서 손책과 같은 이들을 휘하에 거느리기도 했던 원술이었지만 이때부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조조를 무리하게 공격하고 주위에 적을 만들며 스스로 몰락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 원술 자신도 원소를 종놈의 자식이라며 평소 폄하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기도 했었다. 비천한 서자도 아닌 얼자가 자기보다 더 잘나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나마 원술은 죽기 직전이라도 차마 조조에게 항복하지는 못하고 다시 원소와 손잡을 생각이라도 했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놈들도 현실에는 상당한 것이다. 차라리 비천한 얼자인 원소에게 옥새를 넘기기보다 그래도 자신과 걸맞는 신분인... 그러고보니 조조도 환관의 손자로 그다지 신분상 고귀하다 할 수 없었다. 딱 그 수준인 것이다. 진보의 적통인 자신들에게 걸맞는 상대는 근본도 없는 사생아같은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아닌 보수의 적통인 한나라당이어야 한다.

 

그러고보면 그나마 진보정당이, 아니 진보지식인이나 언론들이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김대중이 처음 민주당을 만들 때 주류였던 이른바 수박이라 불리우는 당권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을 때였다. 이념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적 지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김대중과 정치를 함께했고, 그 정통을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연대할만한 자격을 부여한 것이었다. 반면 보다 개혁적인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신진세력들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즉 당권파가 당을 장악하면 그 노선이 보수적이더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개혁적인 신진세력이 나서면 등돌리고 공격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한명숙을 정치적으로 살해하는데 한겨레가 적극 가담했던 것이었다. 노무현이 묻었으니까. 반면 김한길이나 주승용, 박선주에 대해서는 언제나 호의적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박근혜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준석에 대해서 한겨레와 정의당, 나아가 2찍 진보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우호적이었다. 심지어 그의 세대갈라치기에 호응한다고 4050 민주화세력과 단절하겠다는 선언이 서슴없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였다. 

 

말하자면 신분인 것이다. 자신들은 우월하다. 서울에서 명문대 다니면서 타협없이 진보운동을 했기에 현실과 타협한 민주당 나부랭이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하물며 대학도 나오지 못하고, 나왔더라도 명문대가 아니었던 노무현, 문재인따위나 따라다니는 것들이야 상관할 가치도 없다. 저들이 국민을 이야기할 때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배제하고 이야기하는 이유인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 이제는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들은 국민의 자격도 없다. 올바로 판단할 수 있으면 그런 찌그레기들을 지지할 리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차마 자신들의 그 대단한 우월감에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지 못하고 그래도 서울대도 나오고 사법고시도 합격한 윤석열에게로 몰려간 것이었다. 윤석열 정도만이 자신들과 격이 맞는다. 비유하자면 근세 유럽에서 계몽주의 귀족의 입장에서 계몽주의 부르주아 지식인과 보수적인 귀족 가운데 누구와 상대할 것인가 하는 경우와 같다 할 수 있다.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말을 나눌 자격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2찍 진보들의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더 노동존중의 정당일 수 있는 것이었다. 자격도 없는 민주당이 말하는 노동자의 권리란 의미가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망한 것이다. 진보정당이 진보라는 이념을 추구하지 않았으니까. 진보정당이 적통이라는 신분만을 쫓은 결과다. 그래서 차마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은 듣기 싫고, 국민의힘 선봉대라는 말은 아무렇지 않았다. 민주당의 사소한 잘못을 트집잡으면서 정작 이미 살아있는 권력이 된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결같이 고집하고 있었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 오로지 민주당과 이재명만 적대하느라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부정적으로 바뀌어가는 여론마저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검찰정권을 심판해야 하는 여론이 드높은 상황에서도 마치 자기들도 기득권임을 확인시켜주려는 듯 선량한 노동자는 검찰수사를 받지 않는다는 개소리를 당당히 떠들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저 비천한 놈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같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정의당과 한겨레를 비롯한 2찍 진보들은 윤석열과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이재명 공격하는데만 열심이다.

 

돌이켜보라. 김종민이나 조응천, 이원욱, 그리고 이낙연 등등 2찍 진보들이 선호하던 민주당내 정치인들의 그동안 정치적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박용진과 전해철 나부랭이들이 그동안 중요한 국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었는가? 그런 것들이 과연 그들이 그동안 주장한 진보적 이념과 부합하는가. 보다 더 보수적인 정치인일수록 선호하는 2찍 진보들의 행보에 대한 가장 선명하고 간단한 설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 2중대는 참지 못하면서 국민의힘 선봉대는 기꺼워할 수 있는 이유다. 그나마 정책적으로 유사한 민주당을 배척하면서 정반대편에 위치할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굴종적일 정도로 살갑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찍 진보 대부분이 그래도 먹고 살만한 집안 출신인 때문인 것도 있다. 신분이 다르다. 그래서 민주당 정치인들도 그토록 정의당을 싫어했던 것인지 모른다.

 

아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당비도 많이 내는 참여계 당원들이 당을 박차고 나갈 때 심지어 정의당 당직자 정치인들은 어서 나가라고 아예 등까지 떠밀고 있었다.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붙잡아야 하는데 아직 남았냐며 조롱하다가 당비 낼 사람도 없어서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었다. 참여계와 정의당 사이에 얼마나 이념적인 지향의 차이가 그리 크게 났었던가. 하지만 그런 선명함은 그러나 국민의힘과 만나면 양갱이 따로 없고 묵이 따로 없다. 아니 그냥 술술 넘어간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는가. 내가 홍세화가 죽었다 했을 때 도저히 명복까지 빌어줄 수 없었던 이유다. 똑같은 부류였으니까. 오히려 앞장서고 있었다. 그게 2찍 진보다. 진보가 2찍일 수 있는 이유다. 자신들만 모른다. 여전히 유권자 탓만 하고 있는 그것이 저놈들의 현실이다. 아마 죽어서도 못 고칠 것이다. 명복도 필요없는 이유다. 버러지들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