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랜스젠더 대회출전 금지와 다양성 정책의 근본적인 모순

가난뱅이 2025. 2. 10. 01:15

많은 스포츠 종목과 대회들에서 평생에 단 한 번 스테로이드 사용이 발각되었어도 영구히 선수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한 번이라도 스테로이드를 사용해서 근육을 강화했다면 그 영향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운동하는 사람들은 머슬메모리라 부른다. 운동을 중단해서 근육이 줄었더라도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바로 이전에 가졌던 근육을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체의 기능이다. 그래서 한 번 약물을 사용했으면 설사 약물을 끊었더라도 약물을 아예 사용하지 않은 것과 비교되는 더 큰 근육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스테로이드라는 것은 무엇일까?

 

최초의 스테로이드는 동물의 정소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저 유명한 베이브 루스도 그것을 애용했다 전해진다. 그때 당시는 그것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써보니까 좋더라는 수준으로만 겨우 알려진 상태였었다. 말하자면 포유류의 수컷이 가지는 성호르몬이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이 골격이나 근육의 양과 질에서 태생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때로 남자아이들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던 여자아이들이 중학교 이후 급격하게 신체적으로 또래의 남자아이들보다 뒤쳐지기 시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 스테로이드를 오랜동안 사용한 여성의 경우 목소리가 바뀌고 목젖이 나오고 수염이 자라는 등 남성화 현상을 보이고는 한다. 여성을 남성으로 바꾸는 성전환수술을 할 때도 그래서 성호르몬은 중요하게 사용된다. 남성은 바로 그런 성호르몬을 성장기 이후 내내 일정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성전환수술을 했다가 신체구조가 바로 여성처럼 바뀔 수 있을 것인가?

 

말하자면 성전환수술로 여성이 된 트랜스젠더들이 여성들과 같은 대회에서 경쟁하는 것은 이미 수술을 받기까지 최소 수 년 이상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상태에서 경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니 여성이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그 신체조건 자체가 정당한 경쟁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태에 있다는 뜻인 것이다. 이건 다양성이고 뭣도 아닌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과연 어느 스포츠 종목에서 수 년 간, 그것도 성장기에 스테로이드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서 신체적으로 우월한 조건을 만든 이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을 것인가. 아, 하나 있다. 보디빌딩. 이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문제가 아닌 기존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그것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입증해 온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존중과 예우의 문제인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과 의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부정했다.

 

사실 이것은 다른 다양성 논란과도 닿아 있는 부분이다. 어째서 기존의 프랑스사회만 이슬람계 이민자들을 관용해야 하는 것인가? 프랑스 사회가 관용하는 만큼 이슬람계 이민자들 역시 기존의 프랑스사회를 관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관용은 불관용을 불러온다. 그렇기 때문에 불관용에 관용은 없어야 한다. 트랜스젠더들이 기존의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다수의 이성애자들로부터 진정으로 존중받고 싶다면 자신들 역시 기존의 사회의 질서와 가치를 존중하는 모습도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로써 자신도 경기에 출전해서 입상받고 싶은 욕심 만큼 그럼에도 그것을 불공정하고 부당한 일방적인 경쟁이라 여기는 기존의 이성애자 선수들의 입장도 고려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일방만 단지 다수라는 이유로 관용을 강제당할 때 반드시 반동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내가 양보하는 만큼 너도 양보하고, 내가 배려하는 만큼 너도 배려하라. 실제 운동선수로서 경기에 뛰는 것이 나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까지는 아닐 것 아닌가. 진정 그렇게 경기에서 뛰고 싶다면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리그를 따로 만들면 된다. 그래서 여성들도 그동안 남성들에게만 허락되어 왔던 많은 종목들에서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스스로 자신들만을 위한 기회를 찾아내 왔었다. 

 

물론 실제 현실에서 적용하려면 그렇게 말처럼 쉽고 간단하기만 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것이고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일 게다. 트랜스젠더들도 존중해야 하는 건 맞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단 자신의 의지로 정체성에 맞게 바꾸었다면 그에 걸맞게 대우하는 것이 분명 옳을 것인데,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피해를 입어야 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는 것까지 과연 정당할 것인가. 그러니까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는 트랜스젠더들도 양보해야 하는 것인가. 자칫 조금만 엇나가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비쳐질 수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감정들이 쌓인 결과 반동은 그보다 더 크게 돌아오고 말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나아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 과연 그것은 옳은 방향인가.

 

그래서 뭐든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을 내리고 그 안에 안주하면 어느 순간 파열음이 일어나고 만다. 다만 그렇다고 한 번에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무런 대안도 답도 되어 줄 수 없다. 대화가 필요하고, 논의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가능성들까지 고려하여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금 당장의 옳음에 안주하고 말았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한국 진보들이 2찍으로 전락하고 만 실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과연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가면 그러나 그런 것까지는 아니다. 당장의 다소 큰 오류들에도 그러나 분명 옳은 방향이고 필요한 방향일 것이다.

 

아무튼 결국 소수의 트랜스젠더들이 자기들만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성소수자 전체를 엿먹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 것이다. 자신들도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비겁하고 비열한 것이다. 성별로써 여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전의 남성이었던 시절의 신체조건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소수자로써 다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당장의 유리함을 멋대로 자신의 이기를 위해 이용했다. 어쩔 수 없는 반동이다. 안타깝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뭐라 하기도 어렵다. 실제 부당하게 피해를 입어야 했던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반성의 시간이다. 고민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  PC진영의 반성과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쉬어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럴 최소한의 지성은 가지고 있기를 바라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