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의 후주 유선이 바보병신인 진짜 이유? 왕의 책임과 자격
나이가 아직 어렸었다는 참작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단종이 결국 자신의 왕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결과 재위시에는 김종서와 황보인, 민신 같은 세종 때부터 국정에 참여해 온 대신들이, 왕위를 잃고 난 뒤에는 성삼문과 박팽년, 유응부, 그리고 종친인 금성대군등이 왕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찬탈자인 수양대군에 의해 그 일족들까지 멸족당하고 말았다. 아니 이들 뿐만 아니라 수양대군의 찬탈에 반발한 이징옥의 함경도군이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상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간 백성들까지 포함하면 죽어간 숫자가 물경 천 단위를 넘어간다. 왕이 왕위를 지킨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고려에서도 결국 공민왕이 자신의 안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결과 아들인 우왕이 불안하게 왕위에 올랐고 결국 손자인 창왕까지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우왕이 자신의 왕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결과 죽어나간 이들 역시 장인이던 최영부터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당연하게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난 뒤 왕조교체의 과정에서 죽어나간 이들 역시 넘쳐날 정도였었다. 조선의 태조가 된 이성계는 또 어땠을까? 그가 잠시 마음을 놓음으로 해서 아들인 방번과 방석, 사위인 이제, 친구와도 같았던 공신 정도전과 남은 등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었는가? 광해군이 방심한 탓에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정인홍은 전례를 깨고 칠순의 나이로 사약을 받아야 했었다.
일본 에도시대에도 번주가 자신의 지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가이에키라 하여 영지를 몰수당하는 형벌이 내려지는데, 그냥 단순히 번주 혼자 지위를 잃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스리던 번 전체가 보호자를 잃은 채 약탈에 내몰리는 결과로까지 이어질 때가 많았다. 즉 번주가 행실을 잘못해서 쇼군에게 잘못 보이기라도 하면 가신들은 실업자가 되고 백성들은 약탈의 희생양이 되는 등 그 피해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메이지유신 당시에도 그래서 막부의 편에서 유신파와 맞섰던 아이즈번 역시 번주의 선택에 의해 가혹한 보복을 당해야만 했었으니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내리는 한 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무엇보다 자신의 왕위부터 지켜야 한다. 아무리 현명하고 자비로운 왕이 새로 들어선다 할지라도 왕위가 바뀌는 순간 이전의 왕을 따르던 이들은 새로운 왕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수밖에 없다. 너무너무 운도 좋게 이전의 왕을 따르던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전처럼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역시 새롭게 왕위에 오른 이의 판단에 달린 만큼 이미 이전의 왕의 손을 떠난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왕이란 이미 왕으로서 존재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지배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한 몸에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그래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을 다른 군주에게 맡긴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이를테면 모두가 바라는 가정인 선조가 이순신에게 왕위를 넘겼을 경우에도 과연 모든 선조의 신하들이 새로운 왕인 이순신을 반겼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전히 선조의 충신이고자 하는 신하와 백성들에 대해 이순신은 온전히 자비와 관용만을 베풀 수 있을 것인가. 혹시라도 선조의 복위를 위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이들에 대해서마저 무작정 자비와 관용을 베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과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선조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 이순신을 죽이는 것이 옳았을 수 있다. 부조리해 보이지만 그것이 곧 왕이 된 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왕위와 왕으로서의 권위까지 모두 지켜낸 결과 선조는 자신의 치세 동안 전란으로 인한 피해를 수복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다른 낭비 없이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수 있었다. 어느 영화에서와 달리 임진왜란 이후 전후복구는 이미 선조 재위 동안 상당부분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잡혀갔던 백성들을 다시 돌려받기 위한 노력 또한 바로 선조 재위 기간 동안 실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괜히 요순의 전례를 따르겠다고 섣부르게 왕위를 넘기기라도 했다면 그것 안정시킨다고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을 것이다.
어째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결국 장강이라는 천혜의 방벽을 두고서도 오히려 수군에 의해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손호보다도 유선에 대한 평가가 더 낮은 것인가. 사치와 향락의 끝을 달렸던 조예나 사마염보다도, 무고한 옥사를 수도 없이 일으켰던 조비나, 권신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조환이나 조모와 같은 허수아비 황제들보다도 유선에 대한 평가가 더 처참한 것인가. 심지어 중국에서는 무려 천 년 넘게 유선의 아명인 아두를 바보를 뜻하는 욕으로 쓰고 잇었을 정도였다 한다. 단지 아버지가 유비라서? 제갈량을 신하로 두었어서? 강유의 최후가 너무 비장해서? 그러니까 어째서 사람들은 선조가 차라리 한양에서 백성들과 싸우다 죽었기를 바라는 것인가? 왕이기 때문이다. 황제이기 때문이다. 황제로서 자신의 나라와 신하와 백성들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유선이 항복할 당시 촉한에 전혀 남은 희망이 아주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검각에는 강유가 있었고, 영안에는 한때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나헌과 염우가 적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실제 촉한이 항복하고 조위가 내역을 살폈을 때 촉한에 남아 있던 병사의 수가 무려 10만이 넘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면 더이상의 보급도 불가능한 등애군을 상대로 성도에서 농성하면서 보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한 편 각지에서 구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려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산길을 넘어왔는데 공성병기까지 챙겼을리는 없으니 도성을 지키면서 버티다 보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조위가 촉한을 공격하는 것을 알고 마침 손오에서도 구원군을 보내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그때 구원한다고 보낸 군사들이 유선이 항복한 것을 알고 남은 영토라도 차지하겠다고 밀고 들어왔다가 나헌에게 털리기는 했지만. 그러니까 도저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티고 또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항복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같은 경우 당시 유선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기는 한데, 솔직히 아무리 황제 자리가 좋아도 황제노릇만 40년 넘게 하다 보면 질릴 때도 되었다. 철이 들기도 전부터 황제노릇을 시작했으니, 고작 익주 하나 차지하고 있을 뿐인 조그만 나라에서 어디 멀리 놀러가지도 못하고 황궁에만 쳐박혀 있는 세월이 지겹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예나 사마염처럼 사치라도 제대로 부려 봤었는가? 후궁이라도 많이 들여서 여자랑 노는 재미라도 누려 봤었겠는가? 손호처럼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사람을 죽여 본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마음에 드는 환관을 하나 발견해서 그를 총애하며 이것저것 하자는대로 들어준 정도가 고작이었었다. 자기가 황제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었고, 황제가 되기 위해 피똥싸며 다른 형제들과 계승권을 두고 다투거나 한 적 없이 그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황제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적이 쳐들어와서 다시 버티며 싸우려 하니 그게 또 귀찮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때 유선 나이 정도면 그럴 때도 되었다. 문제는 그같은 유선의 결정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사람들이다.
당장 아버지와 형제와도 같았던 관우의 후손들이 점령군으로 들어온 방회에 의해 아버지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씨몰살당하고 있었다. 강유가 유선의 복위를 위해 종회를 꼬드겨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분노한 조위군에 의해 많은 공신의 후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이며 약탈당하고 고통받았을 백성들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그러니까 그렇게 되도록 황제로서 자신의 책임을 무책임하게 놓아 버린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나라와 신하와 백성들을 지켜야 할 황제가 다른 이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항복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이다. 더욱 유비와 제갈량을 잊지 못하고 이후로도 오랜동안 망해버린 나라를 추억했을 촉한의 백성들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그러니까 문재인이 정권연장에 실패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을 테지만, 주어진 여건이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윤석열의 난동을 조기에 진압하지 못한 결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었다. 노무현도 다르지 않았다. 좋은 사람으로 정권을 내주기보다 차라리 더럽고 추악하고 악랄한 권력욕의 화신으로써 주어진 권한 안에서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정권을 지켜내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달리 권력의지라 부른다. 정치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남들보다 강한 동기와 의지일 것이다. 그것은 같은 목적과 동기를 공유하는 정치적 동지들을 위한 가장 강하고 순수한 선의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왕이 왕위를 지키는데만 골몰한다. 왕이 오로지 자신의 권위만을 탐욕스럽게 지키려 한다. 그래서 역사상 그나마 왕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돌아왔는가 보라는 것이다. 왕조가 교체될 때 역사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유럽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하나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종도로 피바람이 불었었다. 괜히 왕은 무치라고 후궁도 여럿 두어가며 2세 생산에 열을 올렸던 것이 아니다. 왕이 후손을 제대로 남기지 못해도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받을 수 있다. 아니 후손 이전에 자기가 건강해서 오래 살아야 많은 이들이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문종이 10년만 더 살았으면 굳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 이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었다. 괜히 대통령 경호한다고 막대한 예산과 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 쓰는 비용은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를 위한 필요비용이다.
그래서 유선이 무능한 것이다. 멍청한 것이고. 한심한 것이고. 당시에도 이후로도 그보다 더 무능한 황제는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보다 더 자격없는 왕이나 황제들은 드물었었다. 최후에 최후의 순간까지 왕으로서 자신을 지키려 했던 그들이야 말로 유선보다도 더 왕같은 왕이었을 테니. 그래서 병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아두란 바보병신을 가리키는 다른 말로 쓰인 것이었고. 능력이 없어 무능한 것보다 더 심하다. 그래도 그룹총수라면서 그룹의 가장 중요한 기업이 어찌되는지도 신경쓰지 않는 어느 이씨네 재모시기란 분처럼. 교훈이다. 유선은 그래서 병신이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