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시대에 학살은 일상이었다? 정신나간 위빠들의 주장
진짜 너무 자주 보인다. 그냥 너무 흔하다. 삼국시대에 백성 수 십만 정도 학살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 중대한 일도 아니었고 당연히 죄악조차 아니었다. 아니 아무리 조조를 빨고 싶다고 이런 개소리를 당연하게 늘어놓나?
백기가 죽으면서도 후회했던 것이 조나라 병사 40만을 생매장한 것이었다. 그냥 백성도 아니다. 자국의 백성도 아닌 바로 직전까지 목숨걸고 싸우던 적국의 병사들이었다. 그런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둘수도 풀어줄수도 없으니 그냥 생매장해 죽인 것이었다. 그런데도 백기는 자기가 그런 죄를 저질렀으니 죽을 만하다 말하고 있었다. 그게 조조가 서주에서 백성들을 학살하기 거의 500년 전의 일이었다.
항우가 당대에 악명을 떨친 것도 자신이 모시던 왕인 초회왕을 폐위시키고 유배지에서 죽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항복해 온 진나라 병사 10만을 마찬가지로 생매장해 죽인 것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죽여대니 그 악명이 천하에 울리면서 어지간한 제후들은 백성들의 뜻을 쫓아 항우가 아닌 유방의 편에 섰으니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전쟁만 계속하다가 패망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그것도 40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400년 동안 도덕적인 가치기준이 후퇴해서 사람 좀 죽이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공손찬 밑에서, 그것도 전해의 명령을 받아 싸우다가 공융을 한 번 구원했을 뿐인 유비가 어떻게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는 명사가 되었었는가. 당대의 명사 중 하나인 공융을 구원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조조가 무자비한 학살을 저지르던 서주를 구원했기 때문이었다. 무고한 백성을 수 십만이나 무참이 학살하는 조조에 맞서 직접 싸우기까지 했었다는 사실이 이후 그를 조조와 맞서는 인의의 대명사로 여기게 만든 것이었다. 그냥 그 한 번의 싸움이었다. 그저 공손찬 휘하에서 시키는대로 싸움이나 하던 인사가 그 한 번의 싸움으로 서주를 물려받고 중원에서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군웅으로 거듭났던 것이었다. 조조의 학살이 당시에도 별 것 아니었다면 고작 도겸 한 번 도와줬다고 그렇게까지 되었겠는가?
물론 진림이 조조를 토벌하기 위해 격문을 썼을 때 서주에서의 학살 부분이 빠져 있기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군웅들 가운데 무고한 백성들에 대한 약탈과 학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몇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괜찮을 수 있어도 군웅들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는 실제 도적무리를 만들어 곳곳에서 살육을 일삼던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은 결국 도태되어 어떤 이들은 아예 후손조차 남기지 못한 것이었다. 인심을 잃고 단지 세력만 있는 경우 그런 이들은 너무 쉽게 망하고 그리고 잊혀졌다. 조조 역시 조비가 황위에 오르고 망하기까지 고작 50년도 걸리지 않았는데 그를 동정하는 이들조차 거의 없었을 정도로 그 후손들의 최후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괜히 망탁조의에 조조와 사마의가 들어가는 게 아니란 뜻이다.
지금 기준으로나 죄악이었다. 동탁의 악행을 언급할 때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인근의 마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학살한 일이었다. 백성을 함부로 죽이고 군주로서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삶을 피폐하게 만든 경우 반드시 역사에 그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전혀 아무 상관도 없다면 원술의 치하에서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백성들의 사정은 어찌 기록에 남아 있을까? 무엇보다 지금 사람들이 서주에서의 학살을 그토록 상세하게 알고 있는 자체가 그로부터 조금 후대의 사람인 진수가 자신이 지은 사서에 '잔륙'이라고 명확히 정의하여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조위로부터 이어진 왕조라 조위의 시조인 무제에 대하 상당히 미화하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표현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아니다?
하긴 이준석이 윤석열과 김건희의 공천개입에 같이 관여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와중에도 논란의 중심에 섰으니 정치인으로서 체급이 올라갔다 좋아하는 병신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검찰을 아예 수족으로 부리고 있는 정권과 무관하지 않은 인사를 검찰수사 운운하며 빨아대는 놈들도 있는 것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그런 주장을 대표해서 퍼뜨리고 있는 인사가 대학교수이기까지 하고 보면. 참 세상은 넓고 병신들은 많다고나 할까?
아무리 난세라도 정도라는 게 있는 것이다. 아, 유럽은 또 다르다. 거기는 토지에 속한 농노들은 영주의 사유물취급받았었다.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농노가 좀 죽어나간다고 재산이 축나는 것을 걱정하긴 했어도 그 죽음을 안타까워한 영주는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그래서 유교를 싫어하는 걸까? 조조가 유교적 가치를 거부해서 도덕과 인의를 무시하고 학살을 과감하게 저지른 것이었다. 역시나 위빠가 지껄이는 주장 중 하나다. 참 병신들도 많다. 지랄들도 풍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