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과 자본가와 노동자, 모호해진 착각의 결말
많은 미국인들은 그동안 착각에 빠져 살고 있었다. 주식투자는 말 그대로 아무나 할 수 있었다. 누구나 여윳돈이 있어 아무 주식이라도 살 수 있으면 그 순간 주주가 되는 것이었다. 주가가 올라 그 차익이 노동을 해서 얻는 임금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만 되더라도 이미 그는 자본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본가가 되는 것이었다. 당장 생활임금도 못되는 열악한 임금에 고용조건은 좆같다 못해 씹창났어도 주가가 더 오르고 배당금도 나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아가 일확천금도 노려볼 수 있다. 그러니 자본가를 위한 정책이 자신을 위해서도 옳은 정책이다.
미국 민주당이 빠져 있던 함정이었다. 주가가 오르면 대부분 노동자이기도 한 주주들인 미국 국민들을 위해서도 좋다. 주가를 올리는 정책이 미국 국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정책이다. 그러면 주가를 올리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자본의 이익을 늘려주어야 한다. 자본가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행정력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노동자인 미국 국민들도 더 좋아한다. 거기에 곁들여서 노동자를 위한 정책도 몇 개 펼치면 그것으로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현실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아무리 주가가 오르고 그로 인해 주식시장에서 자본이익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더라도 결국 노동자가 기대야 하는 것은 노동으로 얻은 임금이고 그 노동을 위한 환경일 터다. 그 기본을 잊는다.
한국 젊은 세대들이, 특히 남성들이 노동자의 권익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유다. 어차피 똑같이 노동하는 입장임에도 그래서 당당히 자기 월급을 한 단에 30만 원 이상 줄일 수 있는 주휴수당 폐지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자기 월급이 줄어드는데도 최저임금 인하를 외치고, 일하다 힘들어서 병가를 내고 싶어 하는 주제에도 52시간 근로제를 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껏 정규직이 되고서도 정규직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속세 폐지를 함께 외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는 안된다. 기업들이 너무 크게 부담을 느껴서 경영에 어려움을 느끼도록 해서는 안된다. 왜? 비슷하다. 자기는 노동자가 될 일이 없고, 설사 노동자가 되었더라도 오래 할 리가 없으며, 오해 하더라도 그런 사소한 일들을 신경써야 하는 하빠리 노동자는 되고 싶지 않으니까.
문재인 정부 당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노동자를 위한 정책들을 한 목소리로 비난하던 같은 청년세대들이 열광했던 대상이 무엇이었는가 더듬어보면 그래서 답은 더 명확해진다. 코인으로 수익을 얻는 것을 방해한다고 정부더러 사다리 걷어찬다고 그리 비난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인데 부동산 소유주들이 집값을 올려서 차익을 실현하려는 것을 방해한다고 역시나 한 목소리로 정부를 욕해대고 있었다. 여기서도 또 본능이 나온다. 아마 이들 세대의 화두인 모양이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도 이른바 영끌족이라 해서 정부에서 말리는데도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었다. 왜? 언제 직장 들어가서 일해서 큰 돈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더 쉽고 편하고 빠른 방법이 있는데 언제 자기도 부자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부자가 된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이상 노동자의 사정은 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계약직 보안원을 하는 또래의 남성들은 같은 2030 남성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계약직 방송인 일을 하는 여성 또한 여성주의자들에게는 같은 여성일 수 없었다. 그런 게 당연하니까. 그래야만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얼마전까지 2030 남성들이 그리 입에 게거품을 물어가며 재명세라고 금투세 반대애 올인했던 것이었다. 금투세만 사라지면 당장 주가가 올라서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도 당당히 주주로써 자본가의 대열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현실은? 한국 민주당이 미국 민주당보다 확실히 나은 부분이다. 엄밀히 따지면 자영업자에 더 가까울 화물차 기사들이나 택배 기사들, 심지어 연예인들에 대해서까지도 노동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장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태도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2030 남성들은 싫어한다. 그런 것들이 자신들을 노동자취급하고 더 위로 올라가려는 사다리를 걷어차려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에 대해 대부분 2030 남성들이 PC에만 집중해서 설명하려는 이유이기도 할 터다. 사실 트럼프가 처음 당선되었을 때도 비슷했었다. 그때 트럼프가 오바마의 후광까지 등에 업고 있던 힐러리를 이기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민주당의 텃밭이라 여겨졌었던 이른바 러스트벨트의 이반이었다. 즉 그동안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표를 주어 왔었던, 그래서 힐러리가 아예 선거유세도 몇 번 돌지 않았었던 러스트벨트가 트럼프에게로 돌아섰던 것이었다. 여성이슈 때문에? 성소수자가 문제라서? 유색인종 차별에 대한 반발로?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이유로 이번 선거에서도 상당수 민주당 지지층이 트럼프를 선택하면서 선거결과가 아주 일방적으로 나오고 말았다. 결국은 지금 트럼프가 취임도 전에 먼저 행동으로 옮기려 하는 바로 그것이었을 터다. 불법이민자의 추방. 왜? 그럼에도 다수의 미국 유권자들은, 특히 민주당에 표를 주었다가 트럼프에게로 돌아선 유권자들 다수가 결국에 노동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확실하게 관세를 물려서 값싼 외국의 제품들이 미국내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밀어내고 시장을 차지하는 것을 막아내고, 나아가 외국에 나가 있는 공장들을 다시 미국으로 되돌리며, 더구나 당장 내 일자리와 임금을 위협하고 있는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 물론 이조차도 노동자이기를 부정하는 한국 젊은 남성들이 보기에는 그저 외국인이 싫어서 그러는 것처럼 여겨졌을지 모르겠다. 히스패닉들이 같은 히스패닉 유색인종들이나 히스패닉 여성들,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그리 투표한 것이므로 반PC의 승리다. 아시아 원숭이 새끼들에 영화에 백인 안 나온다고 발광하는 수준이면 아주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긴 하다. 아무리 자본의 이익이 곧 자본에 투자한 자신의 이익이 되더라도 결국 대부분 평범한 서민들에게 가장 확실한 이익이란 곧 노동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으로부터 밀려드는 값싼 제품에 미국 기업들이 나가떨어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남의 나라 전쟁에만 올인하고 있는 바이든이, 그렇다고 뭐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하는 것이 없는 그 꼬라지를 보고서 대부분 미국 시민들이 느꼈을 감정에 대한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의 함정이랄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된다. 사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더이상 계급이란 없다며 자본가의 이익이 곧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논리가 꽤 설득력있게 퍼지기도 했었다. 노동자도 자본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어떻던가. 자본가 가운데도 대자본가와 대부분 노동자들과 밀착한 소자본가가 있다. 그러나 그 소자본가조차 결국에 노동자와 이익이 다르다. 정의당이 노동을 내다버린 이유이기도 할 터다. 민주당이 정의당의 자리까지 대신하고 있는 이유일 테고. 그럼에도 노동을 통해 먹고 사는 이상 대부분 사람들은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그놈의 PC, PC... 진짜 오만 곳에다 다 PC를 들이민다. 뭐가 PC인지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반PC적인 미국 교회들조차 최소한 저 병신들보다는 훨씬 더 PC적이기도 하다. PC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했고, PC를 지지하는 이들이 해리스를 지지했다. 맞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전부였는가. 하지만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보기에 불편한 것들. 그래서 오바마는 악의 근원이 되고 트럼프는 합리적인 대안이 되어야 한다. 그게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