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조조의 서주대학살이 욕먹는 이유? 어느 반유교, 반PC의 초상

가난뱅이 2024. 10. 25. 11:02

역사에서 살아있는 동안 몇 천, 아니 몇 백 단위로만 학살을 저질러도 오만 욕을 쳐먹는다. 역모와 같은 죄를 저질러서 법에 따라 연좌하여 벌을 주는 경우에조차 상황에 따라서는 평가가 안 좋은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사람을 너무 함부로 죽였다. 권력을 가진 자가 자기 권력을 남용하여 너무 쉽게 사람을 죽였었다. 그래서 정도전도 다른 건 몰라도 이숭인과 스승이었던 이색의 죽음에 관여된 것으로 여겨지곤 해서 꽤나 욕을 들어먹고 했었다.

 

왕 한 번 되어보겠다고 아버지의 신하들은 물론 서모와 서형제와 친형제, 그리고 단종에게 충성했던 신하들과 심지어 단지 그 모의가 있었던 지역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죄다 죽여버린 수양대군이 말년에 벌을 받아 문둥병을 알았었다는 민담도 그런 한 예가 될 것이다. 그 결과 수양대군의 후손으로 왕위에 오른 숙종에 의해 대부분 수양대군에 의해 죽어간 이들이 수 백 년이나 지나 신원되고 있기도 했었다. 아니 그 전에 당대에조차 세조에 의해 발탁되어 관직에 오른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통해 돌려깠다가 부관참시까지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조 때도 경연에서 세조의 즉위에 반대하다가 죽은 사육신을 두고 신하들과 왕이 논쟁을 벌이고 있기도 했었다. 혈연에 의해 세습되는 전제왕조 조선에서 있었던 일이다.

 

물론 유럽에서였다면 사정이 달랐을 수도 있다. 아주 최근까지도 유럽에서 백성들이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나면 일단 잡아다 목부터 매달고 보았었다. 직접 잡아죽이진 않더라도 아주 있는 것을 탈탈 털어 더이상 살지 못할 지경으로까지 내모는 것도 서슴지 않았었다. 신도 없어서 맨발로, 더구나 옷이라고 해봐야 넝마나 겨우 걸친 채 힘겹게 일상을 살아가던 농노의 모습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고용된 병사들의 급료와 보급을 아끼고자 기꺼이 자기 영지를 약탈지로 내놓는 경우마저 있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지배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제물로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근대화 이후 동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유교란 곧 악이었을 테니.

 

삼국지의 인물들 가운데 유독 조조을 좋아하는 대부분 경우들이 그같은 유교적 가치와 질서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들이다. 고루한 유교적 관습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능력껏 호쾌하게 모든 것을 이루어가는 모습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기도 할 터다. 그런 점에서 군주가 백성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는 고루한 관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서주대학살은 충분히 재평가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반공을 위해서 이승만과 조병옥은 제주도민을 아예 몰살시킬 결심으로 군사를 보내 토벌케 했었고, 역시나 빨갱이를 때려잡겠다고 신군부와 진압군 병사들은 광주에서 아무 죄의식없이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었던 것 아닌가. 요즘 또 반PC가 대세이다 보니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는 가치가 그리 쓰잘데기없이 여겨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제주도와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나라를 빨갱이에게 넘겨주자는 것이 또한 요즘 2030 남성들 사이에서 흔히 들리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조조가 서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당시에도 '잔륙'이라는 표현으로 그 참혹함을 거침없이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하고는 한다.

 

조조가 서주에서 수 십만의 백성을 학살한 데에는 그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위적인 목적과 목표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주의 대학살은 조조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조위로부터 정통성을 물려받은 서진에서조차 황제에게 바칠 사서를 편찬하며 그건 잔륙이라, 즉 잔학한 도륙이었다 단정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누구도 서주에서 저질러진 학살에 대해 차라리 은폐하면 은폐했지 대놓고 옹호하는 경우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조조가 서주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연주에서 진궁이 불러들인 여포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뒤를 쳤던 인사 중 하나인 장막은 조조와 오랜 친구이기도 했었다. 명망이 높아서 당시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천하를 떠돌던 진궁과 여포 등이 그에게 의지해 찾아오기도 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장막 혼자서만 군사를 일으켰었는가? 정욱과 순욱을 제외한 연주의 거의 모든 성과 고을이 조조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덕분에 유비는 고작 공손찬 휘하에서 활약 좀 했던 인물이 공융을 구원하고 조조와 맞서 도겸을 도왔다는 이유로 전국적인 인물로 떠오르고 있었다.

 

유비가 신야에서 도망칠 때 10만에 이르던 백성들이 조조 치하에서는 살 수 없다며 정든 고향을 버리고 무작정 따라나선 것이 그저 유비가 좋아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관우가 번성에서 조인을 포위하고 우금을 격파했을 때도 조조가 허창을 버리고 천도할 마음까지 먹었을 정도로 각지에서 그에 호응하는 군사들이 일어나고 있었기도 했다. 우금이 뭐했다고 오자양장에 꼽히는가 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실제 조조의 휘하에서 전공을 세운 대부분 무장들에게 주요 전장은 외부의 다른 제후가 아닌 내부의 반란군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민심의 이반이 조조가 생전에 황제가 되지 못하고 조비에게, 그마저도 유비가 손권부터 조지겠다고 나섰다가 이릉에 참패하지 않았다면 꽤나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지 모를 정도로 내내 조위를 위협하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결국 조조의 천하통일을 결정적으로 막아섰던 적벽대전마저 원래 서주출신이던 제갈량과 노숙의 사실상 합작품이지 않았던가. 그것이 바로 명분을 잃는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조조는 한 왕조를 개창하고 그 정통성이 남조로까지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동아시아의 전통사회가 무너지기 전까지 망탁조의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걸 아주 면밀하고 정교한 전략에 의한 결정에 의해 저지른 것이라고?

 

그래서 과연 서주가 그들이 주장하는 그대로 조조에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약해진 것이었는가? 그런데 정작 유비가 도겸으로부터 물려받고 조조에 의해 내려진 칙명을 받아 당시 유력 군벌 가운데 하나인 원술을 상대로 대치할 정도까지는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여포가 조표와 함께 장비를 몰아내고 하비를 차지한 탓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나야 했었지만 당시 황제를 자처하기까지 했던 원술에게 그다지 밀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 뒤로는 아다시피 하비에는 여포가 소패에는 유비가 각각 자리잡고서 서로 대치하는 상태였었고, 조조가 여포를 토벌하러 왔을 때는 소패의 유비까지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조가 너무 사람을 죽여서 서주에 사람이 없어 여포가 박살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때는 조조의 세력이 그만큼 커져 있었고, 서주도 여포가 온전히 차지하지 못했기에 그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설사 서주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여포든 유비든 다 때려잡고 다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고 지금 기준으로 욕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 것도 아닌데 굳이 의미를 부여하여 그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를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앞에서도 말한 것이다. 그냥 유교가 싫은 것이다. 유교에 의해 지배되던 동아시아가 싫었던 것이다. 유럽의 유명한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돌아다니는 것이 그리 호쾌하게 보였던 것이었다. 죽기 싫었으면 죽을 짓을 하지 않았으면 된다. 그러고보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대해서도 그리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카이사르와 강희제도 갈리아인들과 오이라트부에 대해 잔인한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외부의 적이다. 자기 지배 아래, 다른 말로 보호 아래 있는 백성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자기네가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했다고 반성하는 걸 얼마나 보기는 했는가. 그나마 알량하게나마 반성하는 사람이 보이기도 하는 자체가 문명이 그만큼 성장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제 와서 조조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주장들이 공공연히 떠돌아다닌다?

 

당시 조조는 후한의 황제도 아닌 일개 신하였었다. 그리고 아직 헌제를 모시기 전이라 황제의 명에 따라 군사를 일으켰던 것도 아니었다. 즉 이후의 전쟁들과 달리 황제의 명으로 죄를 지은 신하를 토벌하는 성격조차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조는 또한 후한의 황제로부터 벼슬을 받은 황제의 신하였다. 한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에게는 마땅히 자신의 지배 아래 있는 백성들을 온전히 보살필 책임이 있었을 텐데, 하물며 그 신하인 조조가 황제의 명도 없이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녔던 것이었다. 황제가 그랬어도 욕을 들어 쳐먹을 일인데 일개 신하가 사사로이 군을 일으켜 그 지랄을 저질러 놨다. 그런데 그게 유교니까. 고리타분한 유교의 가르침이니까. 그냥 통쾌하게 마음에 안 들면 다 죽이고 돌아다니는 게 더 합리적이고 멋있지 않은가. 게임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게임에서도 내가 먹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약탈하고 불지르고 말려버린 다음 후퇴하기도 한다. 토탈워가 안 좋은 점 가운데 하나다. 코에이 시리즈에서 그 짓 했으면 게임진행이 어려워질 정도로 많은 페널티가 주어진다. 역시나 토탈워 만든 개발진이 동아시아의 역사에 깊은 고려가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튼 별 것 아닌 허튼 소리들에 다시 괜히 열받아 버리고 말았다.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제주에서도 아예 도민들을 씨몰살하려던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목소리들을 너무 많이 들었던 때문인지 모르겠다. 딱 비슷한 것들이다. 노조가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과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것을 빨갱이라 욕하는 바로 그 부류들인 것이다. 요즘 유독 그런 소리들이 많이 들리는 것도 아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반PC와 반유교주의가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사람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죽여도 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공정이고 상식이고 정의다. 참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