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임종석과 전대협 출신들의 본전생각, 수박과 2찍 진보의 이유

가난뱅이 2025. 2. 8. 20:25

오래전 대학시절 학생회장도 했었고 언론에서도 떠들썩했던 큰 시위도 주도했었다는 사람과 잠시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시의원에 출마했다가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도의회 출마한다는 선배 쫓아서 선거운동한다고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었다는 것 같았다. 하긴 박종철이 숨겨주다 목숨까지 잃었던 박종운인가도 부산에서 열심히 출마하고 있었다던가? 어쩌면 그 세대들이 가지는 공통된 의식 같은 것일 게다.

 

시대가 한 번 바뀌었다. 권력이 한 번 뒤집어졌다. 그러면 그 과정에서 역할을 한 사람에게 한 자리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역사상 프랑스대혁명도 러시아혁명도 중국혁명까지 어찌되었거나 혁명을 주도한 이들이 나중에 권력도 잡고 사회의 주류도 되고 했던 것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면 권력이 교체되었듯 그 주류집단 역시 바뀌는 것이 옳다. 그래서 사실 1987년 이후로는 그것을 목적으로 학생운동하는 놈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그런 운동권 가운데서도 다른 대학생들로부터 떠받들려지던 학생회장들급이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니 이제 자기들의 시대가 와야 한다 여기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서 이 사회를 한 번 제대로 바꿔보자. 그만한 포부도 있고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있고 무엇보다 그래야만 하는 자격까지 있다. 그래서 그리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놈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괜히 한 번 좌절했다고 바로 돌변해서는 입장을 바꾸는 놈들도 있었던 것이고. 대표적으로 김문수와 이재오가 그렇다. 민중당 만들어 나왔다가 개박살나고는 신한국당 들어가서 제대로 쓰레기들 되어 버렸다. 그냥 딱 김문수, 이재오 떠올려보면 된다. 정의당이나 민주당내 전대협 출신들이나. 그러니까 자기들이 그동안 해 온 일이 있는데 왜 이것밖에 대우를 못받는 것인가? 배신감이고 분노다. 그리고 그런 울분을 쉽게 참지 못한다는 것에서 그들의 오만함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석이 김민새가 되었던 이유였다. 당시 김민석은 서울대 출신에 전대협 초대의장으로 사실상 김대중 정부의 황태자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인물이었었다. 당장은 아직 젊어서 무리지만 적당히 커리어도 쌓고 하다 보면 언젠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대통령까지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여기고 있었다. 주위의 평가도 그랬고, 그에 따른 당내 정치인들의 대우도 그랬고, 그런데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에게 깨지고 나서 대선을 앞두고 어디 듣보잡 부산출신 고졸 인권변호사 나부랭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꼬라지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차마 그 꼬라지를 두고보지 못하고 다른 민주당 정치인들과 함께 자격있는 사람으로 후보를 바꿔보려 당적까지 옮긴 것이 낙인이 되어 불과 얼마전까지도 김민새라 불리며 정치낭인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김민석의 감정을 헤아린다면 지금 임종석이 저러는 이유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과거 동교동계가 민주당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었다. 자기들이 김대중을 곁에서 모시고 같이 고초를 겪어가면서 일으키고 지켜온 민주당인데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것들이 엉덩이를 깔고 눌러앉아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니 그게 마음에 들겠는가 말이다. 김영삼 따라간 상도동계와의 차이가 그것이다. 보수정당안에서 민주당계는 그냥 객식구였다. 말이 합당이지 자기들이 김영삼 따라서 기어들어간 것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민주당은 원래 동교동계가 김대중과 함께 만들고 지켜온 정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 지분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니 속이 뒤틀릴 밖에. 말하자면 본전생각이다. 당연히 내가 주인이고 대우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그래서 동교동계고 운동권출신들이고 민주당 구당권파들이고 자칭 진보들이고 하나같이 노무현과 문재인을 그리 싫어했던 것이었다. 당연하게 같은 이유로 그들은 이재명도 무척 싫어한다. 차라리 그보다는 자신들이 온몸으로 부딪히며 맞서야 했던 과거 군사독재 세력들이 그들에게는 더 가깝다.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보다 차라리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더 낫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부터 그런 맥락인 것이다. 이재명에게는 그토록 엄격한 놈들이 정작 윤석열의 친위쿠데타에 대해서는 따위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우상호부터, 내란진압이 아직 한창인 상황에서 이재명 공격에만 열을 올리는 임종석과 고민정까지. 고민정도 크게 다르게 생각할 필요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에서 일하며 측근에서 함께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지지자들로부터도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수박이 달리 수박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를 당연한 권리로 여길 때 당원과 지지자를 무시하고 독단을 저지르는 수박이 되는 것이다.

 

김경수 역시 그렇게 이해하면 편할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했다. 자기가 그렇게 부당하게 정치적인 수사와 재판 끝에 죄인의 몸이 되어야 했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이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따로 없다. 거기서 그럼에도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당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정치인으로서의 그릇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현실에 그리 많을 수 없을 테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같아서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옆에서 불을 지피고 장작을 넣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자신까지 생겼을 것이다. 아니면 그래야만 하는 다른 필연적인 이유가 있거나.

 

사람들이 도박을 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본전생각일 것이다. 이미 잃은 돈을 다시 찾으려 하니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서라도 다시 도박에 뛰어들고 만다. 아예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면 모르겠는데 그 과정에서 몇 번 따 보기라도 했다면 더 헤어날 수 없다. 정치인이 패가망신해가면서까지 자기가 이룬 모든 것을 들여 매번 선거에 출마하고 하는 이유다. 그래야 덜 억울할 테니까. 당장의 억울함과 분노가 영광과 환희로 바뀔 수 있을 테니까. 그럴 자신까지 있다. 내가 전대협출신들을 싫어하는 이유일 터다. 사실 따지고보면 전대협도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그나마 안전해지고 난 다음에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 전에는 그런 식으로 대학생들이 전면에 나서서 행동했다가는 바로 잡혀갔다. 그래서 우상호처럼 딱 얼굴마담 하기 좋은 놈으로 골라서 학생회장 시키고 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도 그 보상을 바라고 여전히 저 지랄들 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할수록 더욱 그렇다.

 

어찌보면 김민석은 일찌감치 한 번의 큰 좌절을 통해서 새롭게 깨어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지금의 김민석은 과거의 김민석과 다르다. 덕분에 최근 김민새라 부르는 민주당 지지자도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이재명 이후의 차기를 이야기할 때 함께 거론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이기까지 하다. 김민석도 지금 모습만 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 무슨 뜻이겠는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기에 잘하면 그때는 과거의 전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지 못하니까 중도층 어쩌고 괜한 남의 지지자들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지지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스스로가 너무 잘 아니까. 하지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오만하다는 이유다. 자신들에게는 자격이 있다. 그것은 권리다. 수박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