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재명의 중도보수 선언과 의미, 어려웠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며

가난뱅이 2025. 2. 23. 20:02

민주당을 진보라 부르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일단 첫째는 진보란 곧 좌파이며 사회주의이고 공산주의이니 민주당을 빨갱이로 몰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편에 있는 새끼들이 상상을 뛰어넘는 개새끼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에 썼었던 이념보수와 현상보수 가운데 그나마 합리적인 전자에 대해 후자가 좌파 빨갱이라 욕하는 것과 같다. 비슷한 예로 꽤나 이름있는 유튜버 가운데 하나가 오바마같은 극단적인 인사들을 싫어하는데 트럼프는 합리적이라 말하며 자신은 중립이라 말한 것과 비슷한 결이라 할 수 있다. 오바마가 좌파면 유럽 진보정당들은 인간계를 벗어난 존재들인 것일까?

 

한국 진보의 계보는 조봉암이 이승만에 의해 사법살인당한 순간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조봉암이 당시 민주당으로부터 갈라져나와 진보당을 만든 것부터 그놈들이 원래 지주출신들로 오히려 자유당보다 더한 한국사회의 기득권들인 이유가 가장 컸었다. 그래서 이승만이 대놓고 조봉암을 죽이려 할 때도 당시 민주당 인사들은 그를 말리려 하기보다 오히려 적극 동조하고 있었고, 조봉암이 죽고 그를 따라서 모였던 진보당 인사들이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간 뒤에는 결국 그들 역시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었다. 그러면 어째서 이후로도 장면이나 윤보선, 유진산 같은 이들이 이끌던, 그리고 이후에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중심이 되었던 민주당이 진보로 불리게 되었는가? 말한 그대로다. 민주당을 빨갱이로 몰려는 목적이 하나, 자유당 이후 공화당과 민정당에 이은 민자당까지 하나같이 독재권력을 위해 봉사하던 하수인들이었다는 이유가 또 하나다. 말하자면 정치적인 이유로 덧씌워진 이미지라는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아니 김대중이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된 이후에도 주위의 어른들을 보면 그를 두고 공산주의자 빨갱이라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전두환의 독재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조차 김영삼은 그래도 인정하는데 김대중에 이르러서는 좌파에 간첩이라고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었다. 이유는 독재정권을 긍정하는 이들에게 있어 김대중이란 자칫 박정희의 집권을 막아냈을지 모를 위협적인 인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지주와 토호들로 이루어진 당시 민주당의 정체성에서 한참 벗어난 근본없는 출신이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신분도 낮고 없이 살면 당연하게 공산주의를 추종하게 된다. 막연한 믿은 같은 것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것은 독재정권은 물론 제도권 야당에서도 김대중을 공격하는 아주 효과적인 무기가 되었었다. 김대중은 빨갱이다. 그래서 과연 김대중은 공산주의자거나 사회주의자였었는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펼친 정책들을 보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김대중이 기득권 권위주의 세력과 정면으로 맞서 왔었기에 좌파고 빨갱이다. 

 

더구나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더불어 권위주의 정권이 부정하는 민주주의와 천부인권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도 함께 싸워야 함을 의미했었다.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무시당하고 부정당하던 소외된 약자들을 위해서도 그들은 기꺼이 손을 내밀어야 했고 그런 행동들까지 빨갱이로 몰리는 또 하나 이유가 되었다는 뜻이다. 가난한 이들, 힘없는 이들을 위해 손을 내밀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는 자체가 곧 공산주의고 사회주의다.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들을 위해 그들의 권리를 함께 주장하며 싸우고자 하는 모든 행동이 좌파고 빨갱이인 것이었다. 즉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와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권리들을 대놓고 부정하는 놈들이 기득권으로서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니 근대사회라면 당연히 지켜져야 할 그것들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진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천부인권과 시민으로서의 권리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민주당이 극단적인 집단으로 여겨지는 또 하나 이유가 되고 있을 것이다.

 

가난한 놈들은 가난한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 노동자와 농민은, 어촌과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은 역시 자기들의 주제에 맞게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옳은 것이다. 감히 서울에서도 잘사는 강남의 주민들과 동등하게 대학에 들어가려 해서도 안되고 취업의 기회를 누리려 해서도 안된다. 더 값싼 전기를 위해서 원자력발전소는 당연히 지방에 지어져야 하는 것이고, 서울을 향해 송전로를 까는데 감히 저항하는 놈들이 있어서도 안된다. 더 오랜 시간 더 가혹하게 일하도록 해서 도태되는 놈들도 당연히 내버리고 가는 것이 옳다. 더 적은 최저임금으로도 더 오랜 시간을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테니 그것이 공정이다. 의외로 지금 젊은 세대들이 당연하게 여러 커뮤니티들에서 떠드는 소리들이다. 그깟 일을 하면서 돈을 더 받으려 해서도 안되고, 더 나은 처우를 기대해서도 안되며, 감히 고용을 보장받으려 해서도 안된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게 되는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공정과 상식을 추구하는 이들의 주장들일 터다. 이런 주장들이 중립이 되고 상식이 되는 사회에서는 따라서 당연하게 민주당은 좌파가, 그것도 급진적인 진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흔히 민주당을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집단으로 몰아가는 주장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들 기준에서 민주당은 꽤나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그러한 집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주장들은 과연 옳은가.

 

19세기 통일독일제국의 재상이던 비스마르크가 적극적으로 사회보장정책들을 도입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나라로 존재했다가 하나의 나라로 뭉치게 된 독일과 독일국민들을 빠르게 단합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들까지도 빠르게 독일이라는 이름 아래 뭉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독일이라는 나라를 직접 느끼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가난한 이들도, 소외된 이들도, 사회적인 약자와 소수자들 역시 결국 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라면 자신들을 이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좌파여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거나 사회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의 단합과 안정을 위해서라도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배려는 필수적일 수 있다. 괜히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혜민서를 만들고 환곡을 내놓은 것이 아니란 뜻이다. 국민이란 국가란 이름 아래에서 모두가 동등해져야 한다. 대등해지고 평등해져야 한다. 그리고 진보는 여기서 국가라고 하는 권위마저도 지운 채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권리로써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 김대중이 당선되고 민주당이 집권한 이후 펼친 정책들을 보더라도 그런 것이 아주 대놓고 두드러지고 있었다. 사실상 당시 서방세계에서 유행하던 신자유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것들마저 그러나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에 좌파고 빨갱이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민주당이 좌파에 빨갱이로 매도당하다 보니 한국 정치지형에서 보수와의 사이를 가리키는 중도의 의미가 상당히 왜곡되고 말았다. 말한 그대로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히 누려야만 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평등과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천부인권을 부정하고 배척하는 논리들마저 어쩌다보니 중립의 위치에 서게 되면서 사회가 보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끌려가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민주당이 근대국가로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에 대해 주장하고 행동으로 추진할 때마다 민주당을 급진적인 진보라 여기는 인식으로 인해 중립은 더욱 오른쪽으로 더 치우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 사회는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 젊은 세대들에서 이전보다 더 극단적으로 과거의 권위주의를 답습하려는 듯한 주장들이 중립의 이름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구도를 끝내야겠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이 내란을 획책하고 보수를 참칭하던 세력들이 그를 옹호하고 있는 현재는 민주당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정치적인 필요와 목적에 의해 덧씌워진 진보라는, 정확히 좌파에 빨갱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민주당으로부터 걷어내자. 민주당의 원래 정체성을 제대로 찾아서 바로 자리를 잡았을 때 현재의 왜곡된 정치지형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중도를 지향했을 때 과거 보수정당은 더 오른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아니 정확히 원래의 자리를 되찾게 될 것이고 왼쪽으로도 더욱 넓게 진보가 들어설 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이재명이 이제와서 굳이 민주당이 중도보수라고 새롭게 천명한 이유일 것이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발언일 터다. 김대중 때부터 이미 민주당은 언제나 보수일변도였고, 그들이 내세운 모든 법안이나 정책들이 그러한 보수의 가치에 입각한 것들이었으니까. 단지 당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과 국민의힘들이 보수를 참칭했기에 떠밀리듯 진보가 되었을 뿐.

 

그래서 더 웃긴다는 것이 민주당이 중도보수라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했다고 반발하는 놈들 가운데 정작 실제 법안이나 정책으로 진보적인 무언가를 실천하거나 추구한 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인영? 박지현? 그리고 또 누가 있더라? 지금 민주당에서 당원들에 의해 떠밀려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원리 보수정당과 더 가까웠던, 오히려 민주당 안에서도 보수라 불리던 이들이었다. 여성주의자라고 모두 진보가 아닌 것이다. 여성주의 가운데도 권위주의적인 여성주의는 오히려 보수에 더 가깝다. 대우를 받아야 하는 자격이 있는 여성들만을 위한 여성주의는 이미 조선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부인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문화는 이미 중세에서부터 있어 왔었다. 다만 그것이 보편적인 자연인으로서의 여성이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여성주의는 여성인 노동자와 약자, 소수자들을 존중하는 여성주의인가. 지들이 언제부터 진보였다고 진보운운인가?

 

오히려 지금 중도보수를 자처하는 민주당이야 말로 김대중 이래로 가장 진보에 가까워진 민주당일 것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일 때도 정작 열린우리당은 노무현보다 더 오른쪽에서 한나라당과 함께 노무현의 개혁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낙연의 민주당 역시 문재인보다 더 오른 쪽에서 문재인 정부를 국민의힘 쪽으로 끌어오고 있었다. 김한길의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상 새누리당의 2중대나 다름없었으니. 그래서 이재명이 더 모두의 증오와 경멸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할 터다. 그렇다고 이재명마저 진보라고 하기에는 원래 기본소득이란 복지에 나라가 돈과 인력을 쓰기 싫으니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보수의 정책이었을 것이다. 이재명이 가장 자랑하는 정책 중 하나인 지역화폐 또한 철저히 자본주의의 가치에 충실한 케인즈주의적인 정책이었을 터다. 그래서 과연 이재명의 정책 가운데 진짜 진보라 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 것인가.

 

트럼프를 합리적인 중도라 말하며 오바마를 급진좌파라 주장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당연하게 지금 민주당도 진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미국 민주당조차 스스로를 진보라 말하기보다 자유주의 정당이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리버럴은 진보가 아니다. 리버럴은 말 그대로 자유주의다. 19세기 막 귀족중심의 봉건적인 질서에서 벗어난 부르주아의 이념에서 이어진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PC도 사실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진보가 된다면 보수란 과연 어떠한 가치일 것인가? 한국 2030 젊은 남성들이 주장하는 중립과 합리가 그 답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의 선언은 필요했던 것이었다.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가? 이제야 겨우 출발점에 섰다. 그러니까 이 사회가 진정 추구하고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란 무엇인가? 실제 보수의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참 어려운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