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손권의 배신과 관우와 유비의 책임? 정사와 연의의 혼동

가난뱅이 2024. 11. 15. 00:43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관우가 좀 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손권과의 우호를 다졌으면 번성에서 뒤통수맞고 죽는 일은 없었지 않겠는가. 그래서 또 말하기도 한다. 유비가 손권에게서 빌린 형주를 제때 돌려주었으면 관우가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단 관우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었으면 손권이 뒤를 치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는 유비와 손권 사이에 빚어진 갈등의 원인을 호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관우가 손권에게 까칠하게 굴기 전부터 이미 유비와 손권 사이에는 상당히 첨예하게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간단히 손권에 자신의 동생 손씨로 하여금 유비의 후계자인 유선을 납치해 오도록 시킨 것이 유비가 유장의 부탁을 받고 파촉에 가 있던 무렵이었다. 당연한 일로 이때 손오로 돌아간 손씨는 다시 유비에게로 돌아오지 않았었다. 그래서 관우가 까칠해서 손권이 유비를 적대한 것이냐고.

 

그러면 손권이 유비와 갈등을 빚은 가장 큰 원인인 형주반환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보자. 유비가 언제 손권에게서 형주를 빌렸을까? 아니 손권이 유비에게 빌려줄 정도로 형주를 점유한 적이 있기는 한가? 손권이 형주가 원래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근거는 사실 다른 것 없다. 자기가 가질 수도 있었는데 근거지가 따로 없는 유비를 위해 알아서 가질 수 있도록 봐 준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강하와 강릉을 포함한 남형주의 군현들은 유비가 직접 군을 동원해서 항복을 받아내고 점령한 곳들이었다. 거기서 손권이 기여한 바는 말 그대로 방해하지 않고 지켜본 것 단 하나였다. 

 

더구나 그렇게 유비가 남형주를 차지하는 것을 두고만 보겠다고 약속하게 된 원인인 적벽에서의 군사동맹은 어떠했을까? 오히려 이 부분은 삼국지연의가 지나치게 손권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적벽대전 당시 손오가 동원한 군사가 대략 3만, 유비가 동원한 군사가 또한 대략 2만, 그리고 삼국지연의에서와 달리 직접 주유의 손권군과 같이 적벽에서 조조군과 싸우고 있기도 했었다. 소설에서처럼 겨우 한 줌 정도 되는 병력으로 숟가락만 얹었다가 퇴각하는 조조군의 뒤를 추격하는 역할만 맡았던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래서 적벽대전의 결과 유비만 좋았는가? 거기서 손권 역시 유비와 동맹을 맺지 않았다면 유종처럼 조조에게 항복하거나 아니면 혼자서 싸우다 망하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맞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적벽에서 조조를 이기고 났더니 유비가 자기 힘으로 차지한 형주도 자기가 빌려준 것이라?

 

이게 뭐와 같냐면 가츠라 태프트 조약에서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을 먹는 것을,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먹는 것을 각각 양해하기로 했었는데 나중에 상황이 바뀌니까 일본이 느닷없이 필리핀도 내가 먹을 수 있는데 봐준 것이라며 내놓으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손권의 주장처럼 유비가 차지하지 않았으면 조조가 쫓겨간 틈을 노려서 손권이 군사를 움직여 대신 차지할 수도 있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가능성일 뿐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유비가 내내 손권의 저같은 무리한 주장에 익양에서 군사적인 대치까지 했었음에도 결국 대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천하의 대부분을 차지한 조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손권과의 동맹이 무엇보다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릉대전에서 조위를 쳐야지 손오를 공격하는가고 조운과 제갈량이 반대하고 나섰을 때 씨알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손권에게 내내 양보하면서 기껏 점령한 땅까지 절반이나 내주었는데 돌아온 건 통렬한 뒤통수였다. 그런데도 다시 천하의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인내해야 한다 말한다면 과연 누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혼자서는 어떻게해도 조조를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으니까. 필생의 꿈이었던 조조의 타도와 한왕조의 부흥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손권과 힘을 합쳐야만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 손권이 오히려 조조와 손을 잡고서 한창 조조와 싸우고 있던 관우의 뒤를 치고는 아예 형주 전체를 날름 삼켜 버렸다. 거기서 참을 수 있으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닌 것이다. 관우더러 손권의 감정을 자극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손권은 그 전부터 계속 유비를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대의를 위해서 유비는 인내하며 무리한 요구들을 하나하나 들어주었던 것이었고. 그런 사정을 아는 관우가 과연 손권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 것인가. 그게 가능한 인재는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서도 아마 두 손으로 겨우 꼽을 정도일 것이다. 한 방면을 책임질만한 무재를 겸비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이게 정사와 연의가 뒤섞인 결과인 것이다. 어떤 것은 정사를 따르고 어떤 것은 연의를 따른다. 그리고 대부분 똑똑한 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촉한정통론에 반대되는 방향을 쫓는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야말로 유비가 망할대로 망해서 한 줌 정도나 되는 병력을 겨우 거느리고 있었을 뿐이니까. 당장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숙이 마침 동맹을 제안해왔기에 손권의 도움으로 겨우 구사일생할 수 있었다. 적벽대전도 사실상 손권 혼자 치른 전쟁이었고, 유비는 겨우 뒷처리만 하다가 싸움이 끝나고 어부지리만 얻었다. 이 역시 제갈량을 띄우느라 주유를 바보로 만든 연의의 부작용 중 하나일 것이다. 비겁하게 적벽에서 손권이 힘을 다 빼도록 지켜보다가 손권이 남군에서 조조의 군사들과 드잡이하는 틈을 노려 빈집털이를 한 것이었다. 그런 과정들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형주는 원래 손권 것이 맞았다. 유비가 비겁하게 빈집털이로 손권의 정당한 몫을 훔쳐간 것이다. 하지만 정사의 기록대로라면 이건 진짜 생떼가 따로없다. 그런데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참았으니 유비가 진짜 대인배는 대인배다.

 

그래서 내가 여몽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노숙보다 여몽을 더 높이 평가하는 손권을 유선보다 아래로 두는 것이고. 사실상 거의 유일한 기회였었다. 이미 천하의 판도를 결정한 상태에서 조위에 역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그나마 만만한 유비의 뒤를 쳐서 형주 하나 얻는 것으로 끝내 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그로 인해 어제까지 동맹이었던 유비와 큰 전쟁까지 치러야 했었고, 자칫 육손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손오 전체에 큰 피해를 입힐 뻔하기도 했었다. 실제 유비가 처음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을 때 손권 역시 꽤나 긴장해서 달래기 위한 사신을 보내고 있었던 터였다. 육손이 잘 막아서 이릉대전으로 끝난 것이지 거기서 조금만 삐끗했으면 얻은 것 없이 잃는 것만 많았을 것이었다. 그러고보면 손권이 이후에도 고구려나 요동과의 외교에서 비슷한 짓을 많이 하기는 했었다.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과정 자체만 놓고 보면 손권의 여러 병신짓 중에 하나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었다.

 

아무튼 워낙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이 유비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감 때문인가 뭐만하면 죄다 유비쪽 책임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중요한 것은 관우가 번성에서 조인을 포위하고 우금을 포로로 잡았을 때까지 아직 손권과 유비는 공식적으로 동맹관계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동맹관계인 채로 계략을 꾸며 조조와 내통하는 한 편 미방을 포섭하고 있기도 했었단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단 한 번도 자기 땅이었던 적이 없는 형주를 유비로부터 돌려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모든 책임까지 관우와 유비, 심지어 제갈량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으니. 관우와 유비만 잘했으면 손권도 배신하지 않았었다. 그 전에 이미 손권은 동생 손씨로 하여금 유선을 납치케 했었다. 명백한 사실이다. 유비가 분노를 참지 못한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