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무너지는 유럽모델, 이전 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주장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렇게 일해서 어떻게 다른 나라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에 대해서도 역시 흔히들 그리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저런 식으로 일하니 망하지."
여기서 저런 식이란 월급도 많이 받고 고용도 보장되면서 일하는 시간도 짧고 휴가도 많이 쓰는 일을 말한다. 노동자 입장에서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런데 세계화란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과도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디서는 더 적은 돈을 받고서 더 긴 시간을 일하면서 제품을 생산한다. 어디서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도 더 적은 시간만 일하면서 제품을 생산한다. 제품 하나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시간도 다르고 따라서 납기를 맞추는 정도도 서로 다르다. 그러면 소비자 입장에서 어떤 제품을 더 구매하여 쓰게 될 것인가.
그래서 노동자 자신도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한정된 임금으로 더 싸게 더 좋은 제품을 쓰려면 자신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더 긴 시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노동자의 존재는 당장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그동안 세계는 분업화라고 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었다.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더 적은 시간만 일해도 되는 첨단의 산업들은 임금이 높은 선진국이, 그렇지 못한 더 싼 비용만으로 생산해야 하는 제품들은 개발도상국들에서, 그러면 위와 같은 모순도 해결하면서 모든 노동자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개발도상국이 점점 더 발전해서 기존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중국은 여러 선진국들의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을 억제하는데 아주 혁혁한 기여를 해 왔었다. 중국이라는 존재 때문에 임금도 함부로 올리지 못하고, 그럼에도 중국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한정된 임금 안에서도 최대한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기술이 선진국 만큼이나 발전한 중국이 아예 선진국들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들마저 넘보며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여전히 임금도 노동시간도 선진국들보다 한참 더 열악하기에 가격경쟁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지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산 제품들이 전처럼 싸지도 않다. 그래서 유럽형 복지모델이 허구라는 말들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유럽처럼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적은 시간을 놀 것 다 놀아가며 일하면 망한다.
원래 무역장벽이라는 것은 첫째가 위정자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했던 것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자국의 생산자들이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외국의 생산자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었다. 나라마다 조건이 다른데 어딘가는 더 유리할테고 어딘가는 더 불리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라도 인위적으로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산자라는 것은 단순히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만이 아닌 노동자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더욱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이 곧 생산수단이기에 자칫 이와 같은 무한경쟁에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가 쉽다. 당장 나라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적은 돈을 받고 더 많은 시간을 더 열악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스스로도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세대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수출을 못하면 나라 경제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수출을 하려면 단가를 어떻게든 낮춰야 한다. 그렇다고 경영진들에게 돌아갈 연봉이며 성과급을 건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주들에게 배당해야 할 배당금을 아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다시 돌고돌아 마르크스로까지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동자를 더 쥐어짜자. 그래야 수출도 하고 나라경제도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언론이 기업들을 대변하여 열심히 떠들어대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스로도 노동자가 되어야 할 2030 남성 가운데서도 더 편하게 덜 일하면서 더 받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이전 수준으로 노동환경을 되돌리려는 주장들마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환상이다. 현실은 중국이다. 대한민국이 살려면 이대로는 안된다.
물론 2030 남성들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4050 자영업자들도 그러고 있고, 6070 집에서 노는 노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마냥 놀 것 다 놀면서 받을 것 다 받으면 나라경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실 이게 기업과 언론들이 내세우던 전가의 보도인 노동생산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한 결과물이 저 모양인데 돈 더 받고 더 놀 생각이 드는가? 그래도 이전까지는 그럼에도 잘 돌아가고 있는 유럽의 모델이 그에 대한 반박이 되어 주고 있었지만 유럽 경제까지 죽을 쓰면서 더욱 그런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삼성전자가 살아나려면 주 52시간근로제에 예외를 두어야 한다. 더 긴 시간 죽도록 일하게 만들어야 기업의 경쟁력도 올라간다. 결국 무엇 때문인가? 그런 모델이 현실에 존재하고 심지어 더 잘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를 닮아가자. 그를 따라가자.
그동안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미국 노동자들이 민주당이 아닌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돌아선 이유일 것이다. 공화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다. 자신들을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 말한다. 가난한 불법이민자가 더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고, 값싼 중국 제품들도 이전처럼 무제한으로 들어와 자신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겠다 말하고 있다. 최저임금 올려봐야 불법이민자가 있고 중국산 저렴한 제품들이 있는 이상 자신들의 일자리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현실이 더 나아지기는 힘들어진다. 그런데 과연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그토록 노동자를 대변하는 척하던 2찍 진보들조차 정권이 바뀌고서 노동자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세가 그런 것을 아니까. 갈수록 나라경제는 어려워지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결국 남은 것이라고는 어떻게 그나마 있는 노동자를 쥐어짤 것인가 하는 것 뿐이다. 자기와 상관없을수록 더 그렇다. 장차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거나 아니면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그도 아니면 코인이나 부동산, 주식이 대박나서 건물주로 살아갈 이들 또한 그래서 더욱 그러한 주장들에 동의하게 된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사실 결국 원인은 중국이 생각보다 더 많이 성장했고, 기술적으로도 훨씬 더 발전해 있으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정도로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라는 건데, 세계화시대에는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유럽 국가들이 슬금슬금 무역장벽을 다시 세우려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벽을 세우지 않으면 저 재앙과도 같은 현실을 막을 방법이 없다. 대신 그럴 경우 자본은 이전과 같은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폭스바겐의 독일내 공장 폐쇄와 대량해고는 그 전초전과도 같다. 장벽을 세우고서도 유럽경제는 건재할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바로 이것 때문에 노무현 때도 그리 FTA에 반대하고 했던 것이었는데. 과거 세계의 진보연대가 세계화에 반대하며 시위하고 그랬던 이유가 이것이었었다. 결국 세계화로 인한 피해는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노동자의 현실을 과거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다. 다시 되돌리기에는 역시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이전처럼 중국산 저가 공산품 없이 아무일없었던 것처럼 살 수 있겠는가. 세상에 마냥 좋기만 한 일따위 없다. 대가를 치러야 하는 때다. 안타깝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