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번성공방전과 관우-조인이 포위되기 전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조인은 삼국지를 아는 대부분 사람들이 인정하는 위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몇몇 전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패배한 적이 없고, 심지어 조조와 육손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진 적 없는 유비를 야전에서 격파하기도 했다. 더구나 형주는 요충이라 그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을 리 없다. 다시 말해 관우가 전력에서 절대적인 우세라 번성에 틀어박혀 아예 나가 싸우지도 않은 것은 아니란 뜻이다. 우금의 7군이 수몰되기 전에도 이미 조인은 번성에 고립되어 있었고 관우의 포위에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삼국지를 읽다 보면 진짜 뜬금없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유비가 열심히 한중에서 조조와 싸워 마침내 승리를 거두고 한중왕까지 되었는데 느닷없이 관우가 조인이 있는 번성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의 내용만 보자면 조인의 군대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고, 관우가 기습으로 방비하기 전에 친 것처럼 여겨지는데 그 동네가 그렇게 방심하고 말고 할 만한 곳이 또 아니다. 오와 위와 촉이 대치하던 최전선이었고, 더구나 번성을 지나 완을 지나면 바로 허도에 이를 정도로 조위로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요충이었다. 괜히 관우가 번성을 포위하고 우금까지 포로로 잡으니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며 조조마저 도읍을 버려야 하는가 고민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처음부터 계획하고 관우가 조인을 쳤다기에는 본진이랄 수 있는 유비 진영이 전혀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도 걸린다. 관우가 조인을 이기고 번성을 점령하면 그 다음에는 어찌할 것인가. 번성에서의 대치가 길어질 경우 촉에서는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할 것인가. 그러니까 번성을 포위하고 서황과 싸우는 동안 그 기간이 꽤 길었음에도 정작 유비는 그다지 그를 지원하고자 하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마 관우 혼자서 조조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니면 관우가 혼자서 독단으로 유비의 명령과 상관없이 일단 조인한테 싸움부터 걸었던 것일까?
그렇다기에는 또 손오의 움직임을 걱정해서 봉화대만 그 경계에 수도 없이 깔아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손권을 믿을 수 없는데 군사를 일으켜 조인을 공격하는 것은 물론 장기가 본진을 비워가며 포위전을 이어간다. 유비까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익양에서 손권과 대치한 것이 불과 얼마전이란 것이다. 결국 유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조인의 선제공격에 의해 우발적인 교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 조인이 쳐발리면서 번성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조인의 공격은 조조가 한중에서 유비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한중에서 유비를 이기려면 혹시라도 강릉에 주둔중인 관우가 양동이든 응원이든 군을 움직이는 것을 미연에 막았어야 하니까. 조조가 허도를 비우고 한중에서 유비랑 싸우고 있는데 혹시라도 관우가 형주에서 진군하거나, 아니면 형주의 군사를 한중으로 보내면 어떤 식으로는 조조군에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성에 조인이 있으니 그를 통해 관우를 견제하는 것도 필요한 조치이긴 했을 터다. 그런데 그것이 꼬이면서 역으로 조인이 번성에 쳐박히게 되었다.
사실 이게 웃긴 것이 삼국지연의에서 조인이 쩌리취급당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번성공방전이라는 것이다. 관우를 상대로 싸움 한 번 안 해보고 바로 번성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그런 조인을 재평가해야 한다면서 심지어 관우의 위에 올리려는 시도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어지는 것인가. 관우 위에 위의 무장 누구를 올리려 해도 그들 가운데 조인보다 군공이 확실히 앞선다 할 만한 인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예 싸움 한 번 없이 번성에 틀어박혔어도 꼴이 우스운데, 심지어 이미 야전이 있었고 거기서 깨져서 쫓겨들어간 것이면 더 상황이 안쓰러워진다. 즉 당시 관우의 명성이 조조마저 두렵게 만들 정도였던 이유가 비단 우금의 7군을 수몰시킨 한 가지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앞서 말한대로 관우의 번성포위가 지극히 우발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촉의 유비 본진에서도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따라서 관우가 번성을 포위하는 내내 유비의 본진에서 어떤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조조는 우금과 서황을 연이어 구원하게 보냈었고 손권 역시 여몽과 육손으로 하여금 차근차근 뒤를 칠 준비를 마치고 있었는데 미리 계획되었다기에는 너무 안이하고 무력하다. 그 결과 남형주의 몇 개 고을만을 거느린 채 그 자원만으로 번성을 포위하고 이어 구원을 오는 조위의 군대와도 싸워야 했던 관우가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뒤에서 제때 보급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하필 그 역할을 맡은 사인과 미방이 배반하고 손권에게 붙고 있었다. 이 모든 장면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당시 상황은 하나다. 마치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한 쪽이 먼저 시비를 걸어 싸움이 붙었는데 그 결과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한 쪽에 일방적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래도 한 쪽 방면을 책임지는 지휘관이 싸움도 포기하고 성에 갇혀서 도망쳐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했을 정도로. 실제 당시 조인의 상황이 얼마나 불쌍했었냐면 주위에서 이대로 성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조언하고 있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남군에서 주유에게 포위되었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결론은 전술적인 승리가 반드시 전략적인 승리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때로 국지적인 도발이 전면적인 전쟁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왕에 야전에서 이겼으니 추격을 해야겠지. 성에 들어가 틀어박혔으니 포위도 해야 했을 터다. 그러다보니 구원을 온 우금까지 이겨 버렸네? 어찌어찌 계속 이겨나가는 동안 뒤에서는 그를 잡기 위한 계획들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 모든 일들이 계획에 없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정작 그를 지원해야 할 촉의 본진에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었고. 그래서 상용에 있던 유봉과 맹달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인데 그들마저도 손을 쓰지 못하도록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럴 수 있도록 그림을 만든 점에서 여몽과 육손이 대단하다 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과연 조인을 관우의 위에 놓아야 한다? 아니 조인보다도 평가가 낮았던 위의 명장들을 관우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 글쎄... 관우가 어떤 장수였는가는 그냥 번성공방전 하나만 보면 대충 답이 나올 것이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통제 못해 그렇게까지 몰고간 점은 대국적인 시야가 충분히 넓지 못했다 비판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