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계량과 행동의 규준, 대중이라는 권력에 대해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리 말하곤 했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그냥 자식 죽은 거 아닌가? 가족이 놀러가다 사고로 죽은 것 아닌가? 세상에 자식 잃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사고로 가족 잃은 사람이 밖에만 나가도 넘쳐난다.
나는 처음에 노망날 때 다 된 늙은이 아니면 일베들이나 그러는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참사 당사자나 유가족들에 대해 대학특례를 적용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바로 태도가 돌변하고 있었다. 자식 죽은 게 벼슬인가? 시체장사한다.
이태원 참사 때도 다르지 않았었다. 역시나 그게 그럴 일이던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던가. 왜? 내 일이 아니니까.
아마 지금 2030남성들처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세대도 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누가 칼들고 협박했는가? 누가 비정규직하라 했는가? 누가 단기계약직으로 들어가라고 칼들고 협박이라도 했는가? 자기가 원해서 미화원 들어갔으면 뭔 짓을 당하든 감수하는 게 옳다. 자기가 감수하겠다고 그런 조건 받아들이고 보안원이든 시설관리든 하겠다고 했으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뭔 최저임금인상이고, 고용안정이고, 근로환경개선인가? 바로 그런 것이 2030남성들이 말하는 공정일 것이다. 그 연장에 있다.
그냥 슬픈 일 있어도 너희들끼리만 슬프라. 아픈 일 있어도 너희들끼리만 아프라. 다만 그로 인해 단 하나라도 내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 그래서 죽은 이들을 추모하자고 분향소 만들어도 그마저 성가시고 불편하다. 즉 너희가 어디까지 얼마나 슬퍼하고 아파하는지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한다. 왜? 자기는 2030 남성이니까. 대중이란 익명성 뒤에 숨어 있으니까. 집단이라는 폭력을 등에 업고 있으니까. 자기가 권력일 테니까.
하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는 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노동자가 파업이라도 하려 하면 기성세대들은 그리 말하고는 했었다. 아, 그때 기성세대들이다. 그게 뭐 그리 파업까지 할 일인가? 파업을 하더라도 그렇게 과격하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정작 자기가 당사자가 되어 파업 한 번 하고 나니 태도가 바뀐다. 다들 그럴만해서 그런 것이겠구나. 워낙 그분들 세대에서는 그런 정도는 묵묵히 참고서 일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런 정도라도 고맙게 여기고 열심히 일해서 지금껏 자식도 기르고 했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들 세대들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파업하고 시위도 하고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결과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이란 것이 정착되며 노조가 사실상 무력화되기에 이르렀다.
어떤 2030 병신들은 말한다. 노조가 뭐하는 곳인가? 노조가 왜 있는가? 노조가 있기는 한가? 그래서다. 노조의 투쟁을 외부에서 일방적인 잣대로 판단하다 보니 노조가 사실상 사용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크게 제한되어 버렸다. 일단 파업이라도 하면 손해배상소송으로 노조지도부는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패가망신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법을 지켜가며 조용히 무언가를 해 보기에는 사용자가 들어주지 않으면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아예 없다시피 한 것이다. 그나마 규모도 좀 있고 하면 노무감사라는 것도 있어서 정부의 눈치도 보고 하겠지만 그마저도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닥치고 감수하고 일해야 한다. 그래서 노조가 무력해진 것이다. 그 자신들이 바라는대로 조용히 남들 피해 안 주고 법 다 지켜가면서 무리없이 활동하다 보니.
그래서 그게 얼마나 그렇게 분노할 일인가? 모른다. 그렇게까지 과격하게 행동해야 할 만한 문제인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행동들이 과연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그래서 판단하지 못한다. 스스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주장하는 놈들도 가만 보면 결국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옮겨와서 읊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주장할 때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주장한다. 역시나 평생 할 일따위 없다 여겼던 파업에 직접 나섰던 어느 분의 경험담이다. 세상이 자기들 목소리따위 전혀 들어주지 않더라. 어떤 언론도 자기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기사로 내 주지 않더라. 용산참사 당시 철거민에게 모든 책임이 있었다는 오세훈의 주장에 대해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던 한겨레조차 혹시라도 민주당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인지 한 마디 비판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객관적으로 사실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정한 분노와 행동의 잣대는 과연 그에 부합하는 것인가?
남탕에서 목욕하고 있는데 여탕 고장났다고 여자 손님들도 같이 목욕하도록 하겠다면 과연 남자인 나로서 좋기만 하겠는가? 그걸 좋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편해서 짜증부터 나는 나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환불해 달랐더니 환불 못해주겠다 그러면 아마 나처럼 씨발 욕하고 그냥 나오는 사람 말고도 아예 목욕탕을 뒤집을 듯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목욕비가 꽤 비싸기까지 하면 더 그렇다. 그래서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 여자들이랑 같이 목욕하라 그랬더니 싫다고 짜증내는 내가 틀렸는가? 여자들이랑 같이 목욕하면 좋은 것이니 좋아라 반기는 그들이 옳은 것인가? 그래서 그러한 상황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수위로 판단하여 행동으로 내보여야 하는 것인가?
역시나 2030 남성들이란 것이다. 자식 죽은 게 벼슬이다. 시체팔이 장사한다. 일베만이 아니었다니까? 세상에 그렇게 일베가 많으면 일베가 아마 세계최대의 사이트였을 것이다. 현실에서도 바로 얼굴을 마주하고 그따위 소리 떠드는 놈들이 넘쳐났었다. 그런데도 일베탓만 한다면 그것이 곧 비겁이고 비열인 것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슬퍼하고 분노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그런 감정들을 공감하고 용인해주어야 하는가. 누가 칼들고 협박했는가? 다른 건 몰라도 2030 남성들이 파업한다고 나서면 꽤 재미있기는 하겠다. 지지할 마음은 절대 안 들지만. 웃기는 버러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