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분열, 이념보수와 현상보수?
진보도 마찬가지겠지만 보수라고 하는 것은 크게 이념보수와 현상보수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념보수란 말 그대로 보수라고 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장주의라거나 자유주의라거나 국가주의라거나 혹은 민족주의와 같은 자신의 양심과 이성에 비추어 옳다고 여기는 바를 궁리하고 탐구해서 오롯하게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현상보수라는 것은 자신이 실제 경험하고 체험한 현실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안주하려는 것이다.
이념적으로는 부의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가 정작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어린 것들이 감히!'라고 한다면 바로 그가 현상보수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념적으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주장하고 그에 따른 공동체의 단합을 부르짖으면서도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인종이나 성별, 연령과 상관없이 어떤 파격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현상진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현실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류일 것이다. 항상 공동체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스스로 권위와 위엄을 보이면서도 정작 사람들을 대하는데 있어서는 격의없고 관대하다. 그에 반해 전자를 흔히 위선자라거나 혹은 진보꼰대라 부르며 비웃기도 한다.
굳이 정의하자면 공동체를 위한 가치와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신념 정도일 텐데, 문제는 이것이 항상 그렇게 딱 나뉘어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집단을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모순이기도 하다. 내가 좋으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고 나에게 옳으면 모두에게 옳은 것이다. 공동체를 위해 좋으면 개인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고 공동체를 위해서 옳다면 개인에게도 옳은 것이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PC주의일 것이다. 공동체를 위해서 물론 다양성과 관용과 이해가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행동양식마저 그에 맞춰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반대는 무엇인가? 지금 세계가 트럼프를 위험하다 여기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바로 나치즘이다. 파시즘이다.
파시즘의 논리는 다른 것 없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안정되어 있던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있으니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금 이전의 안정된 사회로 돌아가자. 그동안 아무일없이 다들 잘 살고 있었는데 저놈들로 인해 온통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사는 것도 힘들어졌으니 저런 놈들 모두 몰아내고 우리들끼리 이전처럼 잘 살아보자. 그래서 히틀러부터 시작해서 파시스트들은 언제나 가장 영광스러웠던 어느 시점을 이상화하여 그를 미래에 추구해야 할 가치처럼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화된 과거는 또한 지금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이어져 있기에 당연히 대중을 설득하기에 좋았다. 예전에는 좋았었는데 지금은 왜 이 모양인가?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열강 독일제국이 어째서 지금은 패전국이 되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에 시달리며 승전국들의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인가?
한국 보수지지자 가운데 다수가 실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의 보수정당이란 과거의 고도성장기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에게는 자신들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인 것이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또한 지금의 암울한 현실을 잊게 만드는 더 나았던 시절의 이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보수정당이 얼마나 더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더 잘하고 못하고도 중요하지 않다. 현실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현재가 중요한 것처럼 그 이상적인 시절을 현재로 옮겨온 자체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의 정의이고 가치이고 신념이고 윤리다. 그리고 그것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로 확장한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제도와 체제마저 그에 맞춰야 한다.
한국 보수주의자 가운데 상당히 극단에 치우쳤다 여겨지는 조갑제나 정규재 등의 지식인들이 현재 가수를 이루고 있는 보수지지자들과 전혀 결이 다른 발언을 들려주고 있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보수로써 당연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시장주의를 추구한다면 마땅히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용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반헌법적인 계엄에 이은 민주주의의 유린과 현정질서의 파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때려잡아야 하고 사회주의자들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 그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인정해서 안된다. 그것이 보수주의라는 이념이다. 반면 다수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정당과 그 정당의 대통령이 그러겠다고 하니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지지자들이 당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을 따라다닌다. 정규재의 평가는 옳다. 어째서 그런가? 그들의 보수라는 것은 이념이 아닌 어떤 현실의 현상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종교에 더 가깝다.
사실 이 글은 원래 조던 피터슨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이론과 논리들에 대해 비판해 볼 의도로 구상한 것이었다. 어째서 전혀 보수주의자같지 않은 그가 실제로는 보수주의자인 것인가. 보수주의적인, 더구나 극우라고 할 만한 어떤 이념이나 주장도 직접 추구하고 있지 않음에도 결과적으로 극우적인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전형적으로 자신이 믿는 현상에 근거와 논리를 끼워맞추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금껏 살아왔던, 그래서 진정으로 믿고 있는 현실의 특정 현상에 대해 그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모든 논리들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가 근거들을 짜깁기해서 만들어 놓은 거대한 논리의 퀼트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럴싸한데 정작 전체를 보면 뭔가 허전하다. 뿌리가 없다. 그래서 나오는 논리가 원래 그랬다. 그 지지자들이 하는 말도 원래 그랬었다. 그래서 현상보수다. 이념적으로 치밀하게 궁리하고 탐구해서 추구하는 이념이 아닌 그냥 현상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트럼프라고 하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절의 미국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정작 트럼프가 지금 하는 일들은 과거의 가장 영광되었던 미국과 한참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근거가 부실하니 실제 행동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튼 결국 젊은 다수 남성들이 입으로는 국민의힘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행동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잘못해서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 때문이라 주장하기도 하는데 절대 아니다. 그들 자신도 국민의힘이 더 잘못하는 것을 안다. 더 못하는 것도 알고 더 나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위선보다 악이 낫다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위선적이지만 국민의힘은 솔직하게 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국민의힘을 지지하기 위한 논리로써 양비론을 펼친다. 방향과 정도를 무시한 채 둘 다 잘못했으니 똑같다 말하고 결국 페미니즘을 이유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트럼프가 뭘 잘못하는, 국민의힘이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르든 결국 문재인과 민주당도 똑같다. 똑같이 않더라도 그마저 위선에 의해 나온 것들이다.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지지할 이유를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정당화한다. 그래서 더 한심한 것이기도 하다. 지지하면 그냥 지지하는 것이지 왜 그렇게까지 구차하게 핑계를 대는 것인가.
누구 때문에 누구를 지지한다. 누가 잘못해서 누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누가 더 잘했다면 누구를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 거짓말이다. 지지할 만해서 지지하는 것이고, 지지하고 싶어서 지지하는 것이며, 지지해야 해서 지지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이면 상관없는데 자신들도 이미 아는 것이다. 자신들이 대안으로 선택한 그들이 더 낫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누가 더 잘한다기보다 그저 어느 일방의 잘못만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심지어 매우 디테일하기까지 하다.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 기억에 담고 기회가 될 때마다 끄집어내어 확인한다. 얼핏 민주당을 지지할 것처럼 보이는 말들은 다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 실제 진실은 그들의 행동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국민의힘과 그 지지자들의 현실과도 이어진다. 이념을 위한 보수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조갑제랑 정규재는 진짜 내가 극혐하던 인사들이었는데... 그럼에도 확실히 이런 상황이 되니 어째서 그들이 지식인인가를 알게 된다. 바로 이런 게 보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