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혁명은 불필요한 혁명이었을까?
흔히들 러시아 혁명을 실패한 혁명이라 말한다.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와의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끝에 결국 20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소비에트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러시아혁명 자체가 실패가 예견된 무리한 몽상의 결과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당시로 돌아가면 어떨까?
러시아에서 농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던 것이 19세기말과 20세기 초, 러시아가 열강으로서 유럽의 여러나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워낙 땅도 넓고 인구도 많으니 유럽의 나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정작 국내의 산업기반이라는 게 처참하기 이를 데 없어서 20세기가 되도록 농노제를 유지하면서 그 농민들을 죽을 지경까지 쥐어짜서 겨우 나라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괜히 러시아의 젊은 귀족들 가운데서마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의자들이 쏟아져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러시아혁명 자체가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를 포함한 러시아를 이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되겠다 여긴 수많은 정파들의 연합에 의한 결과였고 보면 그 당시 러시아의 사정을 대충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이 열강이지 이렇다 할 산업도, 그 산업을 일구기 위한 자본도, 기술 또한 열악하기 이를 데 없어서 봉건적인 신분질서 아래에서 농민과 노동자를 쥐어짜가며 유지하던 체제가 혁명이 없었다고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어찌되었거나 레닌에 이어 스탈린을 지나면서 소련은 그래도 세계열강에 어울리는 산업력과 기술력과 군사력을 모두 갖추게 되었지 않은가. 국민들의 삶도 또한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었다.
그러면 말할 것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은 어쩌는가.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나갔던 그 수많은 억울한 희생자들은 어찌 생각해야 하는가. 그러면 혁명 이전 제정러시아에서는 정치범도 없었고 학살도 없었을까?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 카츄샤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던 시대의 배경이 바로 니콜라이 치세였다. 그래서 시베리아로 가던 도중 젊은 혁명가를 기차 안에서 만나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도 시베리아 정치범수용소는 악명이 높아서 그곳에서 죽어나간 젊은 혁명가들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기도 전에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아니 그조차도 없이 체포되고 고문당하던 도중에 죽어나간 이들 역시 스탈린 시대의 그것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러시아 사람들이 그 혹독하던 시절을 묵묵히 감내하며, 심지어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도 공산주의 소련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이들이 오히려 적지 않았을 정도였던 것이었다.
그만큼 혁명 이전 러시아의 상황 자체가 막장 중의 막장이었고, 그런 러시아의 내적인 한계가 결국에 러일전쟁의 패전이라는 치욕적인 결과마저 가져온 것이었다. 그런 러시아를 물려받아서, 더구나 공산주의의 확산을 우려한 기존 열강들의 포위와 차단 아래에서 오로지 소련에 기대서만 유지가 가능한 위성국들까지 먹여 살려가며 버텨낸 시간이 그래도 한 세기 가까이 되었던 것이었다. 출발지점부터 달랐다. 러시아와 미국은, 아니 러시아와 유럽의 열강들은, 심지어 이후 미국과 유럽과 일본 등 자본주의 진영의 강대궁들은 서로 적극적으로 교류도 하고 서로 지원도 하고 했었지만 러시아는 그마저도 없었다. 지금 딱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답이 나온다. 러시아 하나 막자고 온 유럽과 미국이 있는 돈 없는 무기 다 털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중이다. 그를 상대로 러시아는 중국과 북한에만 의지해서 전쟁을 치르는 중이고. 그렇게 한 세기 버텼으면 스탈린도 할 만큼 했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프랑스 혁명 이후 아무리 프랑스의 사정이 막장으로 치달았어도 혁명 이전의 프랑스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패망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프랑스 내부에서 혁명을 위한 시도가 이어졌고, 끝내 프랑스의 왕정이 무너지고 나폴레옹 3세의 제정에 이어 완전한 공화정이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고도 정작 이전보다 나아진 게 없으면 영국의 청교도혁명처럼 다시 이전으로 회귀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고 1990년대 들어 소련이 해체되었으니 러시아혁명은 출발부터 실패가 예정된 잘못된 혁명이었다. 지금 러시아가 그래도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큰소리치며 사는 것이 누구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혁명 이전 제정러시아는 강대국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여전히 소련의 유산은 유럽 전체를 긴장케 만드는 러시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소련의 해체만 볼 것이 아니라 러시아 혁명 이전과 이후, 그리고 소련해체 이후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혁명은 실패했는가. 러시아의 민중에게 있어 러시아혁명은 실패한 혁명이었는가. 다만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한 다른 공화국들 입장에서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할 것이다. 그 소비에트를, 그 중심인 러시아를 지탱하기 위해서 다른 공화국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절대 작지 않았으니. 괜히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기 시작하니 해방자라 여기고 호응하는 이들이 그리 많았던 것이 아닌 것이다. 아예 전쟁이 끝날 즈음에는 후퇴하는 독일군과 함께 피난을 떠나는 이들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우크라이나가 특히 심했다. 해방자인 줄 알고 독일군에 협력했더니 똑같은 슬라브놈들이라고 약탈하고 학살하고 강간하고... 나치즘이 병신이라는 이유다. 그때 조금만 시야를 넓혀 대처했다면 소련은 아예 안에서부터 무너져 사라질 수도 있었다. 가는 곳마다 적만 만들고 끝내 패망한 히틀러는 진짜 병신도 그런 상병신이 없다.
그러니까 러시아혁명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되는 혁명이었는가. 오히려 혁명으로 인해 피해만 더 커지고 말았는가. 의외로 한국 교육과정이 세계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하긴 한국의 근현대사도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그다지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았었다. 아마 1차세계대전이 아니었다면 자본주의 세계의 역사도 지금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공산주의자가 넘쳐나던 시기가 바로 2차세계대전 전후였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