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관우와 장비가 중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이유? 서로 다른 정서의 차이에 대해

가난뱅이 2024. 11. 13. 14:17

간단히 같은 중국의 사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을 보더라도 당대의 호걸이라 하는 인물들은 자기가 호걸임을 드러내기 위해 안달인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굳이 멀리서 유명한 호걸이 찾아오니 굳이 빚을 내서까지 술과 안주를 대접하고, 그를 위해서 괜히 주위와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런데 또 그 사정을 들으면 모두가 그럴 만했다며 칭찬해주기도 한다.

 

중국 무협드라마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다. 우연히 강호의 영웅이라 할 만한 두 사람이 술집에서 만난다. 호기로움을 과시하고자 서로 술잔을 나누는데, 굳이 또 여기서 술을 한 잔 마실 때마다 술잔을 창밖으로 던져 깨뜨리고 있다. 뭐 그러다가 아예 동이째로 들고 마시는 건 나도 술집에서 한때 많이 해 본 추잡한 짓거리 중 하나다. 설사 서로 반드시 죽여야 하는 원수일지라도 그처럼 영웅다움을 과시하는 장면에서만큼은 겸손을 강요하지 않는다.

 

워낙 검약과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고 지켜왔던 우리와 달리 중국에서는 부자가 돈자랑하고 권력자가 힘자랑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오히려 권장할만한 것으로 더 여겨지고 있었다. 돈이 있는데도 없는 척하고, 권력이 있는데도 아닌 척하고, 지위가 높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이야 말로 겉과 속이 다르고 다른 속내를 감추는 음흉한 행동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놓고 자기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이야 말로 호방하고 영웅적인 행동이라 여겼었다. 돈이 있는 놈이 그 돈으로 돈자랑을 해야지 그것 뒤에 감춰두고 뭐하겠느냐는 것이다.

 

돈 많은 부자가 그 돈을 기방에서 펑펑 쓰면 기루 주인이나 기녀들이나 일하는 점소이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다. 나아가 자기 돈과 지위를 앞세워서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해소해주는 것도 자신의 돈과 재력을 과시하는 만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역시나 수호전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이다. 돈도 좀 있고 지위도 좀 되는 인사가 호걸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중간에 끼어들어 술과 고기를 사주고 금전도 집어주고 옷과 재물도 안겨주어 화해토록 주선한다. 돈지랄인데 이게 또 재물을 아끼지 않고 호걸들을 우대한다며 평판이 좋아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돈이 있어도 없는 척 간결하고 단촐한 것을 지향하는 우리와 달리 개방 이후 중국의 부자들은 대놓고 자기 돈 많은 것을 과시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더 선호하기도 했었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보이는 오만함이나 장비가 보이는 난폭한 성격에 대해 정작 중국사람들 가운데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보기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관우나 장비 정도 되면 오히려 그러는 것이 맞다. 아마 실제 관우한테 쥐새끼라 모욕을 당한 손권도 화는 났겠지만 그만한 인물이기는 하다며 속으로 납득했을 것이다. 실제 관우의 뒤를 치면서 정작 손권은 관우나 유비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었다. 끝내 관우를 참수하면서도 그를 굳이 모욕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당시에 깨끗하게 적장의 목을 베어 죽이고 장사를 지낼 때 예우를 갖추는 것은 상대를 지극히 존중하는 행동이었었다. 관우가 그래서 방덕을 죽였을 때에도 예우를 다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방덕의 아들인 방회가 관우의 일족을 죽인 것 때문에 부모의 복수를 했다는 칭찬보다 졸렬했다는 비난만 더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형주 같은 요충을 맡으려면 관우 정도 오만함이, 그러니까 자기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손오의 말기에 양양에서 대치했던 육항과 양호의 관계도 서로를 존중할지언정 자신을 함부로 낮추는 듯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거기서 한 방면을 책임지는 인물이 섣불리 자신을 낮췄다가는 오히려 얕잡힐 위험이 있다. 손권이 도와주겠다 한다고 이미 자기가 주도하고 있는 전장에 구원군을 들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삼국지 어디에 자기 주군을 제외한 다른 세력의 인물에게 함부로 자신을 낮추는, 그래도 영웅이라 할 만한 인물이 보이는가 말이다. 그런 유형의 인물들은 대개 소인배거나 표리부동한 기회주의자거나 혹은 배반자다. 다만 그렇더라도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나 상관에 대한 예우는 확실히 해야 한다. 그마저 없으면 그건 그냥 싸가지없는 것일 테고.

 

그리 술취해서 사람 패고 돌아다녔다는 장비를 중국 민간에서 더 좋아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수호전에서 그런 장비의 캐릭터를 모티브로 이규같은 더 막나가는 캐릭터를 만들어 등장시켰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이규도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가 그야말로 폭발했었다. 술에 취하면 그냥 닥치고 절의 나무까지 뽑아버리던 노지심이, 그럼에도 자신과 대등하다 여겨지는 임충이나 양지, 그리고 송강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 등도 그런 연장에 있을 것이다. 송강도 가만 보면 진짜 이런 관종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 보는 앞에서 하는 행동에 꽤나 많은 신경을 쓴다. 시진은 원래 그것을 즐기던 인물이었고. 뭐 산적두목들과 우정을 다지다가 아예 관군과 척을 지고 도적떼가 되어 버리는 사진도 있었지만.

 

한 마디로 그냥 정서가 다른 것이다. 당장 미국만 해도 돈만 충분하면 개인저택에 개인비행장을 만들든 말든, 호화로운 요트에 여자들을 갈아치워가며 호사스럽게 놀든 말든, 우리야 대통령후보까지 된 전직 변호사가 요트도 탔었다고 오만 지랄들이 쏟아지지만. 그래도 현직 변호사인데 안경테 좀 비싼 것 썼다고 지랄할 건 무언가. 그러니 관우와 장비가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째서 조조를 간사하다고 싫어하고 하는 것인지도. 가장 유교와 거리가 먼 것이 그래서 중국인이라 하는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이라도 따라야 이 사람들도 좀 멀쩡해지지 않을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