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 웃음도 나오지 않았었다. 이 무슨 지랄들인가. 대상만 남성일 뿐이다. 성이 무엇이든 타인의 알몸을 몰래 촬영해서 멋대로 인터넷등에 유포한 자체는 여성들이 겪는 몰카사건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심지어 그렇게 유포된 사진에 달린 댓글들은 아예 인격살인 수준이었다. 당연히 잡아야 했고 처벌해야만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런데 가만 하는 소리 들어보니 아주 이해못할 것도 아니더라. 나름 주워들은 게 있기는 하다. 경찰이 성범죄 신고를 했을 때 얼마나 미적거리는지. 그나마 스토킹이나 몰카 등에 대해서 얼마나 소극적으로 나서는지. 뻔히 자기 알몸이며 남들에게 보일 수 없는 은밀한 사진들이 인터넷 등에 유포되는데 정작 범인이 뻔한 상황에서조차 제대로 수사마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에 비하면 이번 사건은 얼마나 범인의 체포까지 신속하게 이루어졌는가.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적극성 또한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여성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성이기에 더욱 쉽게 대중에 노출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사실 남성의 알몸을 커뮤니티에 공개적으로 올리는 자체가 거의 드문 경우이기는 하다. 대중적인 커뮤니티에서도 여성을 몰카한 사진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기는 하지만 대개는 그런 식으로 노골적인 사진보다는 보다 은밀한 상상을 자극하는 종류의 사진이 더 많을 정도다.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그런 사진들은 아예 상업적으로 거래되거나 아니면 은밀히 알음알음으로 개인에 의해 유포되지 이런 식으로 공공연히 공개된 커뮤니티에 올라오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여성과 남성의 노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다른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이 가슴이라도 노출하면 난리가 난다. 여성의 겨드랑이며 엉밑살이며 은밀한 부위에 대한 페티쉬 역시 상당히 광범위하다. 그에 비하면 대부분 남성사진은 아예 성기를 제외한 전신을 그대로 노출한 경우가 적지 않다. 남성을 몰카한 사진으로 관심을 끌려면 최소한 그 대상이 박보검 정도는 되거나 아니면 이번처럼 노골적인 노출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바로 법으로 단죄해야 하는 범죄로 이어지게 된다. 간접적인 노출과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 공분을 불러오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 여성들의 몰카사진이나 영상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는 반면 이번 남성모델에 대한 몰카는 공공연히 유포되었다. 그 대처와 처벌이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한 마디로 경찰이 무능을 넘어 얼마나 이같은 사건에 무심했고 무성의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그동안도 여러 성범죄에서 경찰의 무심하고 무책임한 행동들이 오히려 피해자들에 더 큰 상처를 남기곤 했었다는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대한민국 사회 일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이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런 연장에서 그나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지면 그제서야 비로소 자랑하는 수사력을 모아 바로 범인을 잡아 미디어 앞에 노출시킨다. 그러니까 평소에도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다. 홍대몰카사건의 피의자를 처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여성들에 대한 몰카사건에도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달라.


이만한 사건에서만 그나마 능력을 드러낸다. 아예 무능한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열받는다. 비유하자면 똑같이 돈을 도둑맞았는데 내 돈은 언제 찾아줄지 기약도 없으면서 옆집 돈만 바로 범인까지 잡아서 모두 되찾아 돌려준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왜 내 돈만? 어째서 내 돈을 훔쳐간 도둑놈은? 그런 점에서 어쩌면 화가 날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오죽했으면.


문제는 따라서 경찰이다. 남녀를 차별한 게 아니다. 사회적 이슈의 여부를 차별한 것이다. 대중의 관심 정도를 차별한 것이다. 남성에 대한 몰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아예 사회적으로 관심 자체가 없었다. 경찰의 비루함이 오히려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만 부추긴다. 정작 더 나쁜 놈은 따로 있는데도. 누가 선동했는지 진짜 바보거나 아니면 악랄하거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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